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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A Oct 11. 2021

서른넷, 나는 골다공증입니다.

홈메이드 연근튀김





내 나이 서른넷, 골다공증 진단을 받고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 이후 수화기 너머로 말하는 의료진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다. 작년 하반기엔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가슴을 내려앉게 하는 의사의 말도 들어봤다. 그래서인지 젊은 나이에 골다공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서글프기보다는 그저 지친 마음이 더 컸다. 이젠 아픔이 그만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작년 여름, 집 근처 산부인과에서 자궁내막증과 선근종으로 수술을 받던 도중 원인모를 복수가 발견되었고 그것이 암세포일 가능성이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그 길로 대학병원으로 옮겨 암 확인을 위한 여러 검사와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현재로서는 암의 원인으로 여길만한 무언가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다시 오르내리기를 수차례 반복한 시간들이었다. 다만, 이후 1년 간의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혹시 생길지도 모른다는 부작용인 골다공증이 정말로 내게 찾아온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애초에 마르디 마른 저체중의 체형에, 몇 년 전부터 건강검진을 통해 골밀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평소 운동과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으며, 건강식도 영양제도 살뜰히 챙겨 먹지도 않은 터였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 일시적 폐경에 가까운 호르몬 치료를 받다 보니 골다공증이 내게 찾아온 건 어찌 보면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저 예상하던 것과, 아직 서른의 중반이 채 되지 않은 내가 실제로 '골다공증이니 이대로 두면 안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체감은 너무나 확연하게 달랐다. 

 

그렇게 골다공증 치료와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약만 먹어주면 빠르게 다시 회복될 줄 알았다. 일주일에 한 번 아침 공복에 먹는 뼈다귀 모양이 그려진 약을 (아이러니하게도 귀여운 모양) 넉 달 동안 먹었다. 

약을 먹은 뒤 위가 뒤틀리기도 하고 어지러움에 이명까지 겹쳐와 힘들 때가 많았지만, 구멍이 나기 시작한 뼈가 다시 촘촘해지고 튼튼해질 수만 있다면 참아야 했다. 하지만 그새 많이 지쳐버린 내 뼈엔 큰 차도가 없었고 결국 주사치료를 시작했다. 6개월에 한 번씩 맞는 주사. 아래 뱃살을 살짝 꼬집어 피하지방에 한방 꾹 놓는 주사다. 따끔했다. 맞은 뒤엔 몸살 기운이 느껴졌다. 작년부터는 각종 영양제도 종류별로 챙겨 먹기 시작했다. 운동을 일절 하지 않던 내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나서는 하루 한번, 많게는 두 번까지도 햇볕을 쬐고 동네 걷기를 하게 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게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소 키우는 사람 치고 일생에 소를 딱 한 마리만 키우고 때려치우지는 않으리라. 내 평생 적어도 소 아흔아홉 마리쯤은 키울 테니 이번에 소를 잃은 대가와 그로 인해 뼈저리게 (진짜 뼈가 저리게 배운 셈이다..) 느낀 교훈은 잊지 않고 결코 반복하지 않을 테다.   

골다공증에 좋다는 음식도 찾아먹기 시작했다. 각종 생선과 두부, 콩, 고기, 우유, 다시마, 시금치, 멸치 등등등, 가족 모두의 관심으로 그리고 나 스스로도 (강제 & 반 강제적으로) 좋다는 것들의 섭취량을 늘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잘 먹어도 늘 기력이 없고 체중도 불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근본 원인에 좀 더 접근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다량의 칼슘과 각종 영양분을 고루 섭취한들, 정작 내 몸이 흡수를 잘해줘야 이게 비로소 효과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연이은 수술과 인위적인 호르몬 치료, 그간의 여러 가지 스트레스들이 쌓이고 쌓여 이미 몸은 약해져, 영양분을 떠먹여 줘도 제대로 흡수를 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해서, 혈액순환에도 좋고 몸 전체의 기를 돋워 줄 음식들을 찾아 먹다 보니 마치 지금의 내 뼈 상황과 같을지 모를 구멍이 송송 난 모양새를 가진 연근에 꽂히게 되었다. 실제로도 연근이 기력 회복에 탁월하다 하니, 이보다 더 찰떡인 음식이 어디 있으랴. 이왕 먹는 것 약처럼 의무감으로 먹기보단, 나도 가족들도 맛있게 먹어보잔 생각에 부엌에 기름 좀 튀면 뭐 어때, 과감히 튀기기로 결정한다.




* 주 재료: 연근 1개 (200g), 식초 1T + 물 (연근이 잠길 정도). 
* 튀김 반죽: 쌀튀김가루 + 얼음물 (1 : 1의 비율), 찹쌀가루 약간.


1. 깨끗하게 세척한 연근을 얇게 썰어 식초 1T를 넣은 물에 5분 내지 10분 정도 담가 소독 (갈변 예방, 연근 특유의 아린 맛을 제거) 후, 헹궈 물기를 제거해준다.

2. 쌀튀김가루 : 얼음물 = 1 : 1 정도로 섞어 반죽을 준비한다 (반죽에 얼음을 넣어주면 좀 더 바삭하게 튀겨진다는 학계의 전설을 따라본다).

3. 연근에 먼저 찹쌀가루를 묻혀준다 (많이 묻히기보다는 얇게 코팅하듯이 묻혀주는 게 좋다).

4. 그다음, 준비한 튀김 반죽을 묻혀준다 (반죽도 최대한 얇게 묻혀준다). 

5. 강불에 예열한 기름 (굵은소금을 몇 개 넣어서 지글지글 끓어오르면 적당한 온도가 된 것)에 넣고 튀겨준다 (2차로 다시 튀겨줄 것이기 때문에 적당히 익혀줘도 괜찮다).

6. 한 김 식혀준다.

7. 2차로 노릇노릇하게 튀겨 한 김 더 식혀준다.







어릴 적엔 연근 맛을 잘 몰랐다. 슴슴하면서도 서겅서겅한 식감에, 연근을 썰면 나오는 약간의 끈적한 진액까지 모든 것이 내 입엔 낯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런 낯선 이유들이 오히려 연근을 좋아지게 했다. 노릇하게 잘 튀겨진 연근을 한참 동안 정신없이 집어먹고 배를 두들기고 있다 보니, 그제야 연근의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는 그 모습에, 내 뼈에도 지금 이렇게 구멍이 나고 있었건가 싶어 이내 안쓰러워졌다. 그리곤 처음으로 내 몸에게 참 많이도 미안해졌다.


미안해, 애당초 내가 너(뼈)를 돌볼 생각을 하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해, 이렇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해서 그 자체로 미안해.
미안해, 네(뼈) 몸에 구멍이 날 동안 나는 힘들단 이유로 너를 깊이 생각지 않고 지내와서 미안해.  

고마워, 나의 무신경 속에서도 그동안 이만큼 잘 버텨줘서 고마워.
고마워, 지금 이 순간도 나를 위해 열심히 튼튼해지고 있는 그 자체로 고마워.
고마워, 이제라도 너를 돌아보고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마워.

엄마 뱃속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건강은 이제 내 몫이라고 (내 건강 때문에 많이 속 끓인 엄마가 이젠 그만 자책하시기를). 근 일 년간 건강만으로도 부모님 속을 너무 상하게 해서 이제는 나도 정신을 차려보려고 해. 그 첫발을 너 (뼈)를 튼튼하게 되돌려놓는 것으로 시작해 볼 거야. 도와줄 거지? 


내 뼛속 구멍을 다시 꽉꽉 채워보리라.






Bona가 준비한 오늘의 요리, Bon appétit [보나베띠]: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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