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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A Oct 19. 2021

순하디 순하니, 좋지 아니한가.

홈메이드 궁중떡볶이 (떡 잡채)





떡볶이에 관한 몇 가지 추억이 있다. 유년 시절 집 근처 골목에 자리한 열 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서 팔던 짜장 떡볶이가 그 첫 번째이다. 매운맛은 전혀 없었지만 짜장의 달짝지근한 맛이 떡에 가득 배어든 순하디 순한 떡볶이,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떡볶이였다. 특히, 떡볶이의 단짝인 단무지를 직접 담가 내어 주셨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가게 앞에는 커다랗고 붉은색의 고무대야 안에 무가 한 무더기씩 절여져 있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학교 앞 문방구 겸 분식집에서 팔던 작은 종이컵에 담아주던 떡볶이 (일명 컵뽂이)와 나무 꼬치에 떡을 네댓 개 꽂아 기름에 살짝 튀겨낸 다음, 매콤 달콤한 양념을 듬뿍 발라주던 떡꼬치가 있었다. 맛과 식감이 확연히 다른 두 메뉴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었기 때문에, 가게 앞에 다다랐을 땐 오늘은 무얼 먹을지 신중을 기해 골라야만 했다. 중*고등 시절엔 일명 떡튀순 (떡볶이+튀김+순대) 혹은 김떡만 (김밥+떡볶이+만두)의 조합으로 떡볶이를 즐기곤 했었다. 떡볶이와 함께 맛볼 분식집의 메뉴들은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어떤 조합이든 떡볶이는 빠질 수 없는 학창 시절의 단골 메뉴였다. 대학시절엔 유독 매운 떡볶이를 찾아먹곤 했다. 한창나이의 객기였을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피 X을 싸면서도 매번 새로운 매운맛을 찾아 신나게 먹었더랬다.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나서부터는 프랜차이즈 떡볶이로 영역을 넓혀 고루 섭렵하기 시작했다. 한층 다양해진 소스와, 떡과 어묵이 전부가 아닌 각양각색의 재료들로 화려해진 비주얼의 떡볶이를 골라먹는 재미가 있었다. 떡볶이는 그렇게 나의 기억과 지나간 시간 속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요즘 내가 애(愛) 정하는 떡볶이는 궁중떡볶이 일명, '떡 잡채'다. 요리에 재미가 붙고 건강을 생각해가며 음식을 해 먹게 되면서부터는, 그동안 즐겨먹던 맵고 달고 짠맛이 강렬한 프랜차이즈 떡볶이는 지양하게 되었다. 때문에, 기름기 넘치는 요즘의 신(新) 토핑들 (예로, 차돌박이, 삼겹살, 곱창 등등 다 거론하기 힘들 만큼 다양해졌다) 대신, 자연스레 맛도 좋고 건강을 생각한 재료로 만든 떡볶이를 찾게 되었다. 예전엔 집에서도 프랜차이즈 떡볶이를 흉내 낼 수 있는 레시피들을 다양하게 시도해봤지만, 결국 마지막은 조미료라는 하나의 재료로 통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나 역시 조미료를 반드시 쓰지 말아야 한다거나, 꼭 몸에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도, 정작 재료의 맛이 제대로 우러나오지 않았을 때 반드시 필요한 고마운 존재가 바로 조미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맛에 익숙해지다 못해 조금은 실증도 나버린 내게, 순하디 순한 떡 잡채에서 느껴지는 재료 본연의 맛은 오히려 내 무뎌진 맛세포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다양한 채소들과 버섯, 고기를 살짝 볶아 간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으로 떡과 함께 조려내 달짝지근하면서도 은은한 간이 기분 좋을만치 배어든 떡 잡채, 이름하야 '순하디 순한, 떡볶이'다. 





* 주 재료: 가래떡 (300g), 소고기 (100g), 표고버섯 (50g), 당근 (50g), 양파 (200g), 미나리 (60g), 대파 (50g), 물 100ml.
* 양념: 진간장 2T, 황설탕 1T, 간 마늘 1T, 참기름 1T, 후추 톡톡, 통깨 1T, 굴소스 1T, 맛술 1T.


1. 진간장 2T, 황설탕 1T, 간 마늘 1T, 참기름 1T, 후추 톡톡, 통깨 1T, 굴소스 1T, 맛술 1T를 섞어 양념장을 준비해준다. 

2. (냉동해둔) 가래떡 (300g)을 실온에서 해동한 다음 먹기 좋게 세로로 잘라주고, 양념 2T를 넣어 밑간 해준다.

3. 표고버섯 (50g)을 적당한 두께로 썰어, 양념 2T를 넣고 밑간 해준다.

4. 소고기 (100g)를 손가락 세 마디 정도 길이로 썰어준 다음, 양념 2T를 넣고 밑간 해준다.

5. 올리브유 1T를 두른 웍에, 밑간 한 소고기와 표고버섯, 그리고 채 썬 당근 (50g)을 넣고 먼저 볶아준다.

6. (고기와 당근이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물 (100ml), 양념 (취향껏, 간에 맞게 조금씩 더 넣어준다), 떡을 넣고 함께 조린다 (약 3-4분가량: 떡이 말랑해질 때까지).

7. 양파 - 파 - 미나리 순으로 넣어 '살짝 숨이 죽을 정도로만' 볶으면 완성된다 (약 2분 내지 3분가량).










다양한 소스에 둘러싸여 어쩌면 재료 본연의 맛은 제대로 느낄 수 없던 요즘의 떡볶이에 반해, 떡 잡채는 재료가 주인공이 되고 소스는 그저 재료의 맛을 끌어내 서로 간의 어울림을 도와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쌀로 만든 쫄깃하고 고소한 가래떡에, 냉장고 속 대표 삼색 채소인 양파와 대파, 당근의 조합이 더해지고, 영양과 식감을 동시에 책임져 줄 버섯과 소고기가 합류한 데다, 특별히 아삭함과 향긋한 내음을 담당해줄 미나리까지. 재료가 주인공이 된 음식은 먹는 내내 재료 속 숨겨진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좋다. 젓가락에 짚히는 재료의 구성에 따라 그 맛도 미묘하게 달라지니, 먹는 순간순간이 새롭기만 하다.  


한때는 자극적이고 고칼로리의 떡볶이만 골라서 먹기도 했다. 먹을 때는 엔도르핀이 마구 솟구쳐 와구와구 먹다가도 이내 그날 저녁부터 위와 장이 기다렸다는 듯 언성을 높여 격분하기 시작했다. 몸이 아는 것이다. 자극적인 음식, 이제는 좀 작작 먹어대란 경고를 하는 것이다. 알면서도 가볍게 무시해왔던 지난날을 반성하듯, 요즘은 요리에 건강이라는 목표를 담아 재료부터 양념 간의 세기까지 신중하게 고심해 본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한번 와장창 먹고 나면 한동안은 쳐다보지 않게 되는 자극적인 떡볶이가 아닌, 먹을 때의 입과 먹고 난 뒤의 속이 모두 편안해 몸이 계속 찾게 되는 '순하디 순한 궁중떡볶이 (떡 잡채)'가 이제는 더 좋다. 


이렇게 떡볶이와의 인연(緣)은, 흘러가는 내 시간 속에서 늘 새로운 형태로 계속되어 간다.      


순하디 순한 맛 좋은 궁중떡볶이 (떡 잡채) 한입 하고 가세요.







Bona가 준비한 오늘의 요리, Bon appétit [보나베띠]: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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