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하나에 담긴 사람의 마음

시료는 작았지만, 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은 작지 않았다.

by 지수로그

그날도 여느 때처럼 샘플을 받았다.
바이알, 이동상, 컬럼..
익숙한 정보들 속에서 일은 빠르게 시작됐다.

정확하게 주입하고,
조건을 맞추고,
기기를 돌리는 데 익숙했다.

내가 다루는 건 ‘시료’였고,
나는 그걸 ‘정확히 분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크로마토그램을 확인하던 중
문득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이 수치 하나가,
누군가에겐 제품 품질을 확인하는 기준이고,
누군가에겐 공정 검토 자료일 것이며,
누군가에겐 치료 기회를 위한 단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샘플은 작은 유리 바이알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 기대와 목적이 담겨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정확하게만 하면 된다’는 내 태도가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실험 조건을 지키는 사람인 동시에,
결과를 누군가에게 건네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분석이 조심스러워졌다.
수치는 여전히 숫자였지만,
그걸 대하는 마음은 달라졌다.


분석자의 책임은 ‘틀리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누구를 위해 이 수치를 만들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면
그 일은 전보다 더 조심스럽고 깊어진다.

샘플 하나에 담긴 마음을 읽으려는 순간,
나는 단순히 데이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 데이터를 누군가에게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