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려움에 대하여
남편은 이제 어디 괜찮은 공간을 얻게 하고, 따뜻한 집에서 딸과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
흰 강아지를 키우다 눈물자국이 나면 잘 닦아주어야지.
<시선으로부터>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식빵을 우걱우걱 씹던 입은 일그러지고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며 단 0.01초 만에 눈물이 차올랐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 듯하다. 대체 왜, 어떤 부분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지?
오늘은 백만 년만의 휴가다. 11월부터 1월까지가 직장인으로서 나의 일 년 중 가장 바쁜 때다. 한 시간마다 소등되는 사무실에서 홀로 다시 전등을 켜며 버티는 밤들. 대체로 연말은 조직 개편과 인사 시즌이기에 이때 일하는 사람들을 "프로답지 못하다"라고 우스개 소리로 놀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쓴웃음으로 대꾸할 뿐, 내 업의 특성상 연말 야근 릴레이는 저항할 수 없다.
그렇게 치열했던 전투를 마치고 한 차례 얻은 휴전의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새벽에 떠지는 눈꺼풀을 원망하며 한참 동안 침대에서 뭉개다가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 어슬렁어슬렁 부엌으로 들어가 커피를 내리고 스팀밀크를 부어 라테를 만들었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서 편 책은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다. 교보문고 매대에서 집어 온 건 꽤 오래전이지만 여유가 없어 펼쳐보지도 못했다.
<시선으로부터>라는 제목이 생각 외로 그 '시선'이라는 게 재밌었고, 책 서두에 가계도까지 친절하게 그려 준 작가의 위트. 그리고 그녀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온기가 꽤 신랄하고 아픈 내용임에도 결국 몽글몽글 부드럽게 만들어 버린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엔 아직 완독 하지 않은 상태라는 점, 앞선 '글귀'를 읽자마자 중간에 덮어주고 글을 쓰기에 작가가 말하는 바를 온전히 읽어내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있다.)
점심으로 구워 온 식빵 두 조각을 씹으며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그 일은 벌어졌다. 뭐, 책을 읽다가 그런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기에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이번엔 이유도 모르고 가슴에 총알 한 방을 맞은 듯한 느낌이랄까. 작가도 독자가 이 부분에서 이렇게 눈물 한 바가지를 쏟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나조차도 이유도 모르고 울어재낀 거니까.
0.01초 만에 눈물이 차오른 후, 약 25초 후부터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나는, 여기서?", "어떤 포인트가 눈물샘을 자극했냐고!" 남편의 작품 활동을 위해 난정이 층고가 높은 주택을 찾아 헤맨 시간들, 오랜 전세살이에 지친 난정이 이젠 아파트에 들어가 타지 생활을 하고 있는 딸을 데려와 흰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공감한 걸까? 아닌데, 난 딸도 없고, 남편도 없고, 흰 강아지도 없다. 설마 이 모든 게 없어서 우는 거니? 아닐 테지, 설마 내가 그렇게 어리숙하겠어? 하지만 꽤 오랜 시간 지나고 나서 내린 결론은 정말로 그렇다는 거다. 어이없게도.
말 그대로 남편, 딸, 흰 강아지가 없어서 그랬다기 보단, 아마도 '따뜻함'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 같다. 저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따뜻한 벽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들이 그려졌고, 지친 몸을 일으켜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식빵을 씹는 내 모습,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홀로 야근하는 나를 대비하여 떠올렸던 것 같다. 생각의 흐름이 순식간에 그렇게 이어졌고, 참으로 어이없게 눈물샘으로도 이어졌다.
그렇다고 내가 행복하지 않다거나, 불행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몸 눕힐 따뜻한 침대가 있고, 먹고살만하게 돈도 주는 회사도 있고,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그럼에도 순간의 차오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건 근원적인 어떤 것. 인간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외로움의 성질이 아닐까. 가만히 있다가도 불쑥 튀어나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그것. 자주 만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이게 있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울음보도 터뜨리고 지금처럼 글을 쓰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