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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어멈 Feb 24. 2017

"아빠 이쪄?"

부쩍 자란 봉봉 / 우리는 정삼각형.






봉봉은 정말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어쩌면, 어멈이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서 인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하고 정신 차리는 순간.



손가락 한 마디씩 키가 자라 있고,


덥수룩 봉봉.

머리도 길어져 있고,


하루가 다르게 표현력도 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욥과 어멈에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어느새 아기와 엄마 아빠라는 묶음보다는

정말 꼭 필요한 위치에 하나씩 자리 잡은

정삼각형 같은 느낌이랄까.


웃고있지만 좁다 왠지.


어멈과 욥에게 봉봉의 존재가 그렇듯, 봉봉에게도 어멈과 욥의 자리가 그만큼 크게 자리 잡게 돼서

마치 삼각형이 꽉 차버린 느낌이 들 정도다.


가끔 출장을 가는 욥에게 이전의 봉봉은 그냥 엄마 말 잘 듣는 아직 잘 뭘 모르는 아기였다면,

최근 출장을 갔다 온 욥을 통해 어멈과 욥은 새롭게 느낀 게 있었다.

'이제 봉봉이도 우리를 더 많이 기다리는구나.'


전에는 그랬다. 며칠 동안 엄마랑만 있으면 가끔 "아빠느은?" 정도만 물을 뿐

상황을 잘 모르고 시간이 흘렀다면,


(문맥을 깨는 문장이 끼어서 좀 그렇지만, 봉봉의 "아빠느은?"은 사실 억양이 매우 귀엽다. 그 당시 영상은 남겨놓은 게 없어서 아쉽지만, 마치 영어로
"Would you like something to drink?" 라고 말할 때의 억양을 축약한 것과도 같았다.)


요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침에 눈을 뜰 때 이렇게 묻는다.


자는동안 많이 흐트러진 아침의 그녀.


"아빠 이쪄?".

보고 싶다는 인사구나 우리 봉봉.


아직 "아빠 언제와? 아빠는 어디갔어?"라고 구체적으로 묻지는 못하지만,

늘 아침이면 먼저 일어나 일을 하고 있던 아빠를 생각하며

"아빠 이쪄?"라고 묻는 그 마음은 분명


'아빠가 보고 싶다. 아빠는 어디 있는 것인가. 아빠를 데려오라.' 등을

모두 내포한 한마디 일 것 같다.


다행인 건, 봉봉이가 아직 아빠 보고 싶다고 울지는 않는다.

"아빠 보고 싶어?"라고 물으면 그 대답에 시무룩하게 입이 나와서는 "웅......."하고 쳐다볼 뿐.

자리를 비웠던 일주일 동안 한차례도 울진 않았다.


심지어 봉봉은 영상 통화할 때 전화기 너머로 보이는 아빠를 보고선 이렇게 묻는다.

"거기 아빠 집이야?"

집이라니. 아이들은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뭐라고 설명할까 하다가, "아빠 회사에서 일하러 가서 있는 데야."라고 알려줘 본다.

졸지에 아빠가 집에서 나갔다고 느껴진 걸까. 집 나간 아빠가 되어버린 불쌍한 욥.


그래도,

그런 욥이 돌아왔을 때 그들의 만남은 꽤 시끌벅적했다.


기분이 너무 좋은날 우리는 봉봉이의 맨궁뎅이 댄스를 볼수 있다.


봉봉은 갖가지 현란한 춤사위를 아낌없이 보여줬고,

거기에 욥은 신명 나게 응수했다.

(상상하실까 봐 언급하지만, 물론 맨궁뎅이가 아닌채로)


귀여운 사람들. 내 소중한 두 모퉁이.

어멈이 가장 사랑하는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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