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행길에서, 욥(남편)에게.
우리는 어느새 셋이 되어 여행을 가고 있어요.
늘 고목나무에 매미 같은 모습으로 둘이서 다녔었는데,
어느새 작은 아기새 봉봉까지 해서 셋이죠 이젠.
우리 둘이 다닐 땐 가뿐하게 욥의 책가방 하나와
내 작은 손가방 하나면 어딜 가든 완벽했는데,
이젠 온갖 짐들이 차를 가득 채워서 마치 이사를 가는 기분이에요.
봉봉하나 늘었을 뿐인데, 짐은 다섯 배 이상이 된 거 같단 말이죠.
심지어 봉봉 변기까지 챙겨가야 하니까요.
여행길에 변기라니. 예전의 우리 모습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짐이에요 그쵸?
욥은 열심히 운전하고 나는 밖을 보며 있자니
문뜩 편지가 쓰고 싶어 졌어요.
지금 이 순간엔 해야 할 일이 없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 탓이겠죠.
얼마 전 효리네 민박을 같이 보며 이효리,이상순 커플이 나누는 대화 중에서
서로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아서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서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보며
우리도 참 많이 그랬는데 하는 생각이 났어요.
"어떻게 이렇게 매일매일 이야기하는데도 지루할 틈이 없을까?"하곤 했었잖아요.
요샌 서로 책임지고 있는 것이 많아서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어쩔 때는 하루에 5-10분 대화하고 자기도 하고
운이 좋은 날엔 점심 먹으며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할 수 있는 날도 있죠.
시간이 짧을 때도 여유 있을 때도 함께라는 그 순간을 공유하고 있을 때 마음을 채우는 만족감이 들어요.
오늘은 모처럼 여행길에 올랐네요.
연애시절엔 둘이서 하루 종일 종알종알 이야기하면서 보냈는데,
이젠 봉봉이 잠들어야지만 우리만의 시간이 생기는 거 같아요.
지금 자동차는 들뜬 내 마음처럼 씽씽 신나게 달리고 있고,
봉봉은 이 황금 같은 시간과 풍경을 두고 꿀같은 잠을 자고 있구요.
그리고 그 옆에서 예전 연애할 때처럼 종알종알 대화하며 함께하는 욥이 있으니 지금 이 순간.
어느 하나 부러울 게 없네요.
묵은 마음속 짐들은 저 멀리 훌훌 던져버리고,
자동차엔 온갖 기대감을 담은 짐들을 가득가득 태우고, 신나게 달려요 우리!
오늘은 왠지 오롯이 욥에게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그런 날이에요.
분명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는 이 곳이지만,
오늘만큼은 이곳에 내 사랑을 담아 보내고 싶네요. 15년 전 그때처럼요.
부끄러운 어멈이 15년 전과 같은 마음으로,
여행길에서 씁니다.
부끄러워지면 지울지도 모르니 빨리 읽으세요!
휴게소에서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