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지

by 봉봉오리



앵두를 위한 보호처를 마련하며 지친 날들을 보낼 즈음, 앵두 전 보호자의 직장 동료가 앵두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앵두가 과거 출산한 적이 있었고, 현재도 임신을 했을 거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수의사 왕진을 기다리며, 앵두가 임신이 아니길 바랐다. 앵두가 지내고 있던 보호처는, 다른 동물들과의 마찰로 인해 하루하루 살얼음판이었다. 만약 앵두가 출산을 한다면, 앵두와 앵두의 자식들까지 ‘골칫덩어리’가 될 것이 뻔했고, 그곳에서 쫓겨난다면 생존의 문제로 직결되었다.




나와 동료는 앵두의 임신중지(낙태)에 대해 논의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임신 초기라면 가능하다고 했다. 앵두의 배가 홀쭉하니 임신이 아니거나, 임신이어도 초기일 거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수의사는 약 한 달 후 출산할 것이라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얼마 후 앵두가 출산을 했다. 이른 출산이었다. 단 한 명의, 까만 강아지가 태어났다. 대여섯 명이 태어나 줄줄이 동네 주민들에 입양되어, 마당개로 살아가는 것을 상상했던 나에게, 아기 한 명은 다행이었다.






엄마 젖을 독점하는 아기는 빠른 속도로 살이 찌고 커졌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통통해지는 ‘퉁실이’를 보며 웃음이 났다.





해외 생추어리에서 거주 동물의 불임수술은 필수적이다. 거주동물의 수가 자체적으로 늘어날 경우, 외부에서 구조된 동물이 들어올 수 없다. 심지어, 임신 상태의 여성 동물이 구조되어 생추어리에 입주하게 되면 임신 중지를 하기도 한다. 조금 충격이었다. 동물권, 돌봄 윤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곳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만큼은 권리 침해적이고, 엄격한 태도를 갖고 있다.


거주동물의 증가를 막는 것이 임신중지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임신 상태의 여성 동물이 구조된다면, 그것은 인간에 의한 강제적인 인공 수정인 것이지 그가 원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이미 여러 번의 출산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다. 그러한 것들이 고려되어 임신중지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그러나 앵두의 상황은 달랐다. 앵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원하는 개와 관계를 맺어 임신을 했다. 앵두의 임신은 자신의 의지였다.



앵두가 들개 틀에 잡혀가 죽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생명이었다. 그러나 그것만 위기는 아니었다. 임신 초기였다면 임신중지를 통해 사라졌을 존재였다.



제법 자라 내 바지와 신발끈을 물고 장난치는 퉁실이를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우리는 이 생명을 원하지 않았다. 퉁실이의 탄생을 진정으로 축복하고 기뻐했던 이는 앵두 혼자였을 것이다.



퉁실이의 존재는 여전히 조금 무섭다. 그가 어떻게 자라 어떤 ‘말썽’으로 인간 사회에서 공격받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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