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몇 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 엉금엉금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다.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한참 시간이 흘러 도착한 곳. 우리 동네보다는 눈이 덜 내렸던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숯댕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했는데, 또 나무에 줄이 엉켜 매여있다. 집도 희한했다. 오래간만에 내린 눈의 무게 때문에 집이 뒤집어진 모양이었다.
눈이 녹아 땅은 슬러시 같았고, 털은 젖어있었다. 내가 오늘 오지 않았다면 젖은 상태로 나무에 매인 채 밥도 못 먹고 덜덜 떨었을 것이다. 하필 오늘 온 게 다행이면서도 또 부글부글 화가 올라왔다. 눈이 이렇게 내렸는데, 보호자는 살피러 오지 않은 거야?
동네 주민이 보호자에게 연락해 상황을 전달해 주었다. 눈이 많이 내려 곳곳이 무너지고 난리다. 곳곳에서 축사 지붕이 무너지고 비닐하우스도 내려앉고.
숯댕이와 산책을 나섰다. 언니의 털부츠를 신고 뛰니까 둔해져서 쿵쾅거리며 달렸다. 발이 푹푹 빠졌다. 숯댕이는 발이 시릴 텐데 자유로 인한 기쁨이 더 큰 것 같았다.
추위보다 도파민.
숯댕이는 퐁신한 눈을 밟고 다녔다. 오늘 오길 정말 잘했다.
곳곳에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 투성이었다. 차의 통행을 막아선 나무로 인해 나는 조금 편했다.
콧물을 닦고,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고, 부츠 안에서 줄줄 내려간, 다 늘어난 양말을 다시 추켜올렸다. 오 분도 안 쉬었던 것 같은데, 더 뛰자고 쳐다본다. 이미 털도 쫄딱 젖고, 부츠에 물도 새어 들어온 마당에 눈밭으로 뛰어들었다. 내리막길인 산을 미끄럼틀 타듯 내려갔다.
동체시력 테스트 당했다. 여기서 나타났다 저기서 나타났다. 나무에 매인 채 얼마나 기다렸을까. 언제 풀릴 줄 알고. 방방 뛰어다니는 숯댕이를 보면 늘 마음이 복잡하다.
한참을 달리고 나서 돌아갔을 때, 보호자가 집을 고치고 있었다. 숯댕이를 다시 묶어 두고, 앵두를 돌보러 가자, 숯댕이는 나를 향해 울부짖었다. 보호자가 있는데도 나를 찾는 그 상황이 황당하면서도, 채울 수 없는 숯댕이의 자유가 무거웠다. 왜 그의 자유를 내가 좌우해야 하는 거지?
앵두와 퉁실이를 돌보고 다시 숯댕에게 갔을 때, 집은 원상복구 되어있었다.
앵두네서 가져온 수건으로 털의 물기를 벅벅 닦았다. 숯댕이가 좋아했다. 물기가 좀 가시니 나아 보였다. 축축하게 젖은 땅. 뻥 뚫린 나무집. 또 쇠사슬이 엉키면 지금보다 더 좁은 공간에 매이게 될 것이다. 제발 ‘얌전히’ 집 안에 들어가서 자길 바라며 집으로 갔다.
내려앉은 축사, 갇힌 닭, 돼지는 내가 어떻게 못해도 숯댕이는 잠깐이라도 달리게 해 줄 수 있다.
지금은 나도, 숯댕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