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by 봉봉오리


지인을 통해 마당개들의 간식을 후원받게 되었다. 그것이 동물의 몸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포장을 뜯고 나는 멈춰버렸다.


압축 포장된 여러 간식들 중 하나에 ‘돼지 꼬리’라고 적혀 있었다.






생후 며칠 된 아기 돼지들에게서 잘린 꼬리가 잘 말려져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농장에서 자른 아기 돼지의 꼬리는, 농장주가 키우는 개의 간식이 된다고도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징그럽게 생각했었는데, 내가 그 상황에 놓였다.




이걸 어쩌지. 버리지도 못하고.


결국 압축팩을 뜯어 신세 지고 있는 보호처 개들과 앵두에게 나눠주었다. 만질 수가 없어서 비닐 째 집어서 바닥에 떨궜다. 빨리 소비해 없애버리면 좀 나을 것 같았다. 산에서 고라니를 사냥하기도 하는 그 개들은 거리낌 없이 각자 꼬리를 물어 가져갔다.


새벽의 잘린 꼬리도 누군가의 간식이 되었을까?






각자 ‘꼬리’를 먹는 듯하다 싸움이 붙었다. 보호처 개 중 한 명이 퉁실이를 밀쳤거나 살짝 물었는데, 퉁실이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고 앵두가 그 소리에 격분한 것이었다.


보호처 개 둘, 앵두가 2:1로 서로를 물었고, 직원분의 도움으로 겨우 싸움을 말릴 수 있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손가락을 물렸고 커다란 구멍 세 개가 났다. 이 보호처에서 세 번째 싸움이었다.


손가락을 지혈하며 안도했다. 내 손가락을 뜯어먹을 수도 있었지만, 봐준 개에게 고마웠다. 그는 정말로 ‘돼지 꼬리’를 씹듯, 내 손가락을 뜯어먹을 수도 있는 힘이 있었다. 내 손가락이 너무나 돼지 꼬리 같았다.






휴지로 손가락을 칭칭 감아 꾹 누르며 앵두와 퉁실을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냈다. 모두 조금씩 피가 났고, 퉁실이는 멀쩡했다. 그 대단한 싸움에서 아기 퉁실이를 어른들이 봐준 것이었다. 울타리 안에 갇힌 퉁실은 억울한 표정으로 서러운 소리를 냈고, 앵두는 조금 시무룩해 보였다.




앵두도, 돌보는 고양이들도 모두 육식을 한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모두 억울하게 살해된 몸의 부산물들이란 점에서, 유독 돼지 꼬리만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모순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동물이 육식을 하는 건 어렵다.


남은 꼬리 셋을 숯댕이에게 줘버렸다. 먹어서 없애줬으면 좋겠다.







개농장으로 향했다. ‘주인’이 다녀간 흔적이 있었다. 내 기척을 듣고 짖는 개들의 목소리로 아직 도살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꼬리의 주인들도 저렇게 갇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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