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를 처음 만난 것은 22년 9월이었다.
겁 많고 아픈 고양이었다. 출석부에 있는 사진 속 카레는 입을 살짝 벌려 맹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구내염 때문에 항상 그런 얼굴을 하고 우리를 바라보곤 했다. 아파서 그런 것이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 표정이 너무 강렬해서, 자주 만나지 못함에도 카레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골목이 하나씩 사라지고, 은신처들이 부서지는 과정에서 카레를 보는 일은 드물었다. 어쩌다 마주쳐도 후다닥 도망가기 바쁜 고양이었다. 한 번은 겨울 집이 비어있는 줄 알고 손을 넣었다가 물컹하고 잡힌 카레의 몸에, 나도 카레도 그걸 지켜보던 초코도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카레와의 첫 스킨십이었다.
고질적인 구내염으로 침을 흘리면서도 카레는 마른 편은 아니었다. 구내염이 심한 고양이는 음식을 잘 못 먹기에 피골이 상접한 경우가 흔한데(얼룩은 그랬다) 카레는 침 흘리는 입과 그루밍을 제대로 못해 꼬질한 털만 아니었다면 아픈 줄 몰랐을 정도다.
가장 친밀한 고양이 초코가 곁에서 보살폈다.
전발치 수술한 카레, 다리 골절로 철심을 박고 복귀한 초코, 엄마를 잃은 댕댕과 콩콩 남매, 소심한 아웃사이더 짜장.
그렇게 다섯은 친밀하기도, 싸우기도 하면서 무너져가는 터전을 버텼다. 그 상실감을 온전히 나누는 것은 인간인 우리가 낄 자리가 아니었다. 숨 쉬는 모든 것이 부당함 위에 존재하는 삶을 우리는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생존이 고마웠다. 삶을 쉽게 포기하지 않음에.
카레는 재개발구역 돌보미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근처에서 초코를 포함한 다른 고양이들이 보고 있었다니 다들 카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틈 안에 들어가 있는 카레를 포획할 이들이 현장에 모였고, 경계심 강한 카레지만 담요로 수월하게 잡혔다고 한다.
병원으로 옮겨진 카레는 수술을 받았다. 재개발구역에서 다친 고양이들은 늘 밝지 않은 예후를 선고받는다. 대부분 중상인 채로 병원에 도착했던 앞선 고양이들은 그럼에도 ‘기적’처럼 늘 다시 재개발구역을 누비며 살았다.
이번에도 기적을 바랐다.
카레는 개에게 물렸다. 불행한 사고다. 개는 고양이를 문다. 고양이가 새를 물고 쥐를 물듯이. 그 당연한 것에 화를 내봤자 의미는 없다. 화를 내야 한다면, 개를 피해 도망치기 어려웠던, 망가진 재개발구역의 문제였을 것이다. 개를 피해 올라갈 수 있는 나무가 곳곳에 있었다면 달랐을까?
사진 속 카레의 배엔 구멍이 여럿 있었다. 복막이 찢어져 장기가 쏟아져 나와 꿰매고 또 꿰매었다고 한다. 뼈가 부러졌고, 척추에 손상이 갔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구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장애를 가진 고양이가 재개발구역에선 살아가기 힘들어도 가정에선 살아갈 수 있다.
수술 후 회복 중이던 카레를 잠깐 만났다. 고개만 살짝 들어 큰 소리로 고래고래 뭐라고 했다. 아프다는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카레의 배가 이상했다. 카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했다. 우리끼리 답을 내리지 않고 싶었다.
수술 후 며칠을 보내면 기적이 오겠거니, 오잉이와 초코처럼 벌떡 일어나길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회복 후 며칠을 보내며 지켜보자던 마음은 카레가 스스로 배변을 할 수 없어 압박배뇨를 하고, 어깨가 탈구되고 앞다리가 부러졌음이 추가로 발견되며 사라져 버렸다.
온몸이 카레를 고통스럽게 했다. 스스로 배변할 수 없는 고양이, 불구가 된 고양이, 긴 시간 결박된 채 의사에 반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고양이, 깨어있는 모든 시간이 고통인 고양이, 재수술해야 하는 고양이, 나이 많은 고양이, 치료비가 없는 고양이, 평생의 돌봄을 받을 곳이 없는 고양이. 이 모든 조합이 카레였다.
임종의 순간에 그가 의지한 친구와 연인과 이웃이 곁에 있을 수 없음이 카레에게 가장 죄스러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카레를 무작정 기다리지 않도록, 숨을 거둔 카레의 시신을 그들에게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