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본본쓰 Oct 29. 2020

퇴사가 실패는 아니잖아요.

닫는 글.

 마지막 퇴사 고민을 한창 하고 있던 어느날. 회의 참석 차 들렀던 신공장 사무실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참석할 회의에 앞서 다른 회의가 있었고, 그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빈 책상에 앉아 있었다. 몇 분 뒤, 제조팀부터 생산관리팀, 마케팅팀 등 관련 부서 담당자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제조팀의 한 직원이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제조팀 그 누구냐, L씨? 퇴사한다면서요?"

"어어, 나간다카대."

"왜요?"

"일이 안 맞다나 뭐라나."


 같은 팀도 아닌데다가 회사에는 무려 500여 명이나 되는 직원들이 있었기에, 그 직원이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퇴사 고민을 하던 내게는 내심 부러운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


"에휴, 원래 진작에 나갔어야할 사람인데, 뭐."

"그러게요. 그래서야 이직해서 뭔 일을 한다고."

"개인사업이나 해야지, 그런 사람들은."


 약간 짜증 섞인 말투와 퇴사하려는 이를 실패자로 낙인 찍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흘려들을 이야기였지만, 퇴사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던 때여서 그랬는지 회의 내내 쉬이 집중하지 못하고 그들의 대화만 곱씹었다. 마음이 너무 불편했고, 나 또한 그런 취급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든 생각.


'퇴사하는 게 실패하는 건가? 남들로부터 비난 받아야 하는 일인가?'


 이 질문은 이날부터 회사를 떠나는 그날까지 나를 졸졸 따라다녔고, 퇴사에 대한 마음을 여러 번 흔들리게 했다. 지금이야 당연히 '퇴사는 실패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심적으로 많이 지치고 힘들었기에 알 수 없는 패배감과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직장생활 하나 못 버텨서 어떤 일을 하려고? 남들 다 하는 일인데 나는 왜 못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실패자로 낙인 찍히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려 발악했던 것 같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들 말했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며 근근이 버텨왔다. 하지만, 그런 고생도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허용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을 해하려는 극단적인 생각,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까지 다다랐을 때, 그 고생은 사서도 할 만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고생 그 자체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죽고 싶을 만큼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갈 필요가 있었는지 싶다. 그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해도 나는 퇴사라는 똑같은 결정을 할 것 같다. 하루하루를 긴장한 채로 보내야 하고, 성향에 맞지도 않는 일을 꾸역꾸역 해야하며, 삶의 목적의식까지 잃어가면서 사는 삶은 나에겐 큰 고통이었으니까.

 

 다시 아까 그 질문에 답해보자면, 퇴사가 실패는 아니다. 일이 적성에 안 맞고, 직장생활에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그리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기 위해 퇴사하는 나처럼, 제조팀 그 직원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건, 업무 성과가 좋지 않아서였건, 아니면 정말 개인 사업을 하고 싶어서였건. 그러나 퇴사라는 결정을 인생의 실패로까지 치부하기엔, 한 사람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리고 퇴사라는 결정을 하기까지 당사자가 했을 고민과 걱정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퇴사한 지도 어느덧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퇴사 이후의 삶은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하다. 일상에서부터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매일 밤, 잠자리를 뒤척이며 다음날 일어날 일들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도 예민하지 않게 되었다. 정기적으로 받아오던 상담치료와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던 항우울제도 이제는 필요없는 것이 되었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누릴 수 없던 것들을 누리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어서,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퇴사라는 인생의 위기와 고비가 없었다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나 있었을까.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



 지금 이 순간 어떤 이유에서라도 퇴사를 고민하시는 분들께, 그리고 퇴사가 실패는 아닐까하고 걱정하시는 분들께 한 마디 남기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퇴사는 실패가 아닙니다. 당신의 삶이고, 당신의 결정을 믿으세요. 화이팅!



이전 29화 퇴사!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