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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쓰 Oct 28. 2020

퇴사!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8) 송별회식과 마지막 출근, 그리고 퇴사.

송별회식과 마지막 출근, 그리고 퇴사.

- 송별회식. 

 오지 않을 것 같던 퇴사일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루만 더 지나면 이 지긋했던 일을 그만두고 지옥 같던 이 회사, 그리고 구미를 떠나게 되는 것이었다. 보통 퇴사 당일에는 오전만 출근하고 회사를 떠나기 때문에 이날이 사실상 마지막 근무일이었다.

 업무 인수인계는 물론이고 퇴사 절차도 진작에 다 마친 상황. 게다가 고객사 담당자와의 업무는 손 놓은 지 오래였던 터라 할 일이 하나도 없는, 그저 따분한 하루였다. 군대로 치면 전역 하루 앞둔 말년 병장. 할 게 없으니 자리에 앉아 그저 멀뚱멀뚱 있을 수밖에. 그래도 업무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그냥 앉아 있기는 뭐했는지, 업무용 다이어리에 뭔가를 끄적였다. 다이어리에 짧게나마 퇴사를 앞둔 소회를 남겨 놓았는데, 이를 옮겨보자면 이렇다. 

마지막 근무일. 사무실 책상. 안녕.


  2020/06/25/THU
 사실상 마지막 근무일. 오늘로써 입사한 지 683일, 퇴사일인 내일은 684일. 만 22개월 2주일 하고 떠나는 기분은… 시원섭섭이 제일 맞는 표현인 듯하다. 너무 좋은 팀원들과 이별하는 게 아쉽기도 하면서, 이 지긋지긋하고 지옥 같았던 해외 품질 CS 직무를 떠나니 시원하기도 하다. 일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인생 사는 법, 사람 대하는 법, 위기에 봉착했을 때 이겨내는 법 등등. 너무 힘든 생활이었지만, 그만큼 얻는 게 있었던 22개월. 앞으로의 삶이 순탄치 만은 않겠지만 (결코),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내 인생을 그려 나가기 위해 이곳을 떠날 것이다. 곧 송별회식도 있는데 부디 취하지 않고 적당히 그리고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를. 마지막 술자리에서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고 떠나자.  


 그렇게 해도 시간이 안 가길래 사무실 자리 정리도 하고, 회사 주변을 거닐기도 하고, 친분이 있었던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저 여섯 시가 되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퇴근 후에는, 떠나는 나를 위한 송별회식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오늘 H 송별회식 있디. 일 일찍 마치고, 6시까지 S갈비로." 


 입사 첫 회식이자, 신입사원 환영회를 한 곳도 그 음식점이었다. 신입사원 환영회 이후 이곳에서 식사나 회식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뭔가 기분이 묘했다. 처음과 끝을 그곳에서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회식 시간인 여섯 시가 가까워지자 업무를 정리하는 분위기로 사무실이 분주해졌고, 나도 짐을 정리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행님, 안 가요?"

"아, 니 먼저 가라. 금방 하고 가께."

"저 그면 먼저 가께요. 빨리 와요."


 차를 타고 10여분을 달려 도착한 S갈비. 뒤이어 업무를 마무리 지은 팀원들 모두가 도착했고, 그 넓은 회식 자리도 꽉 차게 되었다. 신입사원 환영회 때처럼 QA팀과 QC팀, 그러니까 품질보증실 모두가 모였다. 밑반찬이 하나둘 놓이고 불판 위엔 고기가 올려졌고, 올려진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기 시작했다. 한잔 두 잔 들이켜는 소주에 분위기까지 점점 무르익었다.  

마지막 회식.

"담당님, 팀장님, 한잔 드리겠습니다."

"오, 그래. H가 한잔 주는 거야?"

"넵." 

"그동안 고생했고, 일도 잘했으니까 무슨 일이든지 잘할 거야."

"감사합니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반도체 하나도 모르는 놈 거둬들여주시고, 좋은 경험하게 해 주셔서."

"그래, 그래. 자, H 한 잔 따라줄게."


 담당님과 팀장님을 시작으로, 그동안 감사했던 모든 분들께 술잔을 받아가며 송별회식을 보내고 있었다. 회식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S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어느 정도 분위기가 달아올랐으니까, 선물 증정식이 있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팀에는 송별 문화가 생겼다. 송별회식 자리에서 퇴사자에게 선물을 주는 문화. 선물도 거의 정해져 있었다. 신발. 


"앞으로 H 가는 길, 모두 꽃길만, 좋은 길만 걸으라고 신발을 선물로 전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발 사고 싶었는데."

"야, 지금 열어서 신어봐."

"네네. 오, 딱 맞는데요? 감사합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신고 있는 흰색 나이키 에어맥스. 퇴사 선물의 의미만큼 앞으로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어지는 대망의 마지막 건배사. 


"자, 이제 H 마지막 건배사!"

"어… 건배사 준비했는데, 하나도 기억 안 나네요. 그냥 얘기할게요. 하하. 어… 이렇게 빨리 퇴사할 줄은 저도 몰랐네요. 비록 일이 저랑 잘 안 맞았아서 퇴사하게 됐지만, L사에서 일하는 22개월 동안 정말 좋은 분들과 좋은 환경에서 일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먼저, 제게 귀중한 기회를 주신 담당님과 팀장님, 그리고 저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을 J책임님께 너무 감사드리고, 모르는 거 있을 때 물어보면 짜증 한 번 안 내고 가르쳐주신 H책임님이랑 S선배, J형님, U형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L이랑 L형님은… 미안해요.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업무 도와주신 QC팀 K팀장님, J책임님, S책임님, J책임님, 동기 P, L씨 다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일하면서 본의 아니게 불편함을 드렸을 분들께는 이 자릴 빌어서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네요. 말이 너무 길어졌는데, 마지막 건배사하고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잔 채워주시고! 제가 품질보증실의 발전과 미래를! 하고 선창하면, 위하여! 후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처럼이나 정말 길었던 건배사였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마지막으로 전하고자 이렇게나 길게 얘기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건배.  


 "품질보증실의 발전과 미래! 를!"

 "위하여!"


 특유의 건배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뒤론 어떤 기억도 나질 않는다. 건배사는 어찌 그렇게 멀쩡하게 마쳤는지 … 송별회식이 어떻게 끝났고, 기숙사까지는 어떻게 돌아갔는지 그 모든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마지막 모습까지도 만취 상태였던, 품질팀 해외파트 H사원이었다. 




- 마지막 출근, 그리고 퇴사. 

 마지막 출근날 아침. 전날 들이부은 술 때문에 숙취로 골골 대고 있었음에도, 본능적으로 일어나 술냄새 풀풀 나는 몸을 이끌고 회사로 출근했다.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야, 니 어제 케이크 가져갔나."

"케이크요? 무슨 케이크 말씀하시는지…?"

"어제 니 먹으라고 빠리바게트에서 케이크 샀는데, 없어? 이거 누가 가져간 거야."


 알고 보니, 어제 회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팀장님이 케이크를 사주셨는데, 나는 이미 만취 상태였던지라 받았는지 어쨌는지 기억하질 못했던 것. 게다가 아침에 출근할 때까지도 나는 그저, 퇴사 선물로 받은 나이키 신발 밖에 보지 못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내가 너무 취해서 막내 L이 챙겨갔다고 한다. 


 분명 내게는 인생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퇴사일이었지만, 다른 동료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금요일이었다. 평소처럼 모두들 정신없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업무용 전화 벨소리와 키보드 타자 소리로 사무실은 시끄러웠으며, 공기 중에는 맥심 믹스커피 향만 가득했다. 이게 내 마지막 출근, 마지막 사무실의 모습이었다. 퇴사라는 것 말고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사무실도 안녕. 


"H, 점심 나가서 먹자."

"아,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과 J책임님은 나를 데리고, 한 중국집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자주 가던 식당이었다. 숙취가 남아있었기에 해장 겸 해서 짬뽕을 시켰다.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퇴사 소감,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걸 이야기했다. 


"기분이 어떤데? 난 퇴사를 안 해봐서 그 기분을 모르겠네."

"음… 기대만큼 막 좋거나 그렇진 않고, 그냥 시원섭섭하네요."

"퇴사하믄 뭐부터 할라고? 어디 여행 가나?"

"제주도 잠깐 갔다 오고.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해외는 못 나가니까요."

"돈은 마이 모았나? 이제 수입 없을 낀데."

"꽤 모았죠. 한 4천 정도 모은 것 같아요. 한동안은 그걸로 버텨야죠."


 회사로 돌아와서는, 누군가 쓰게 될 내 자리를 정리했다. 지금은 누가 쓰고 있을까. 점심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터라 다들 자리에서 짧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 사무실 전등을 켜는 것으로 업무시간이 시작된 것을 알렸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 사무실에 있는 모든 동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 이제 진짜 떠나는구나!' 


"팀장님, 저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팀장님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나를 보내주셨다. 그의 반응만 보자면, 나는 퇴사하는 게 아니라 반차를 쓰는 것 같았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마지막 인사를 해주셨다. 이어서 파트리더 J책임께 인사를 드렸다. 이제 막 낮잠에서 깬 책임님도 가벼운 인사말만 해주셨다.


"책임님, 저 가볼게요." 

"으어, 가나? 잘 가고. 담당님 인사드리고 가라."

"네네. 고생하십쇼."


 남은 동료들 모두에게 인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담당님 자리로 향했다. 파티션 벽을 똑똑 두드리고는. 


"담당님, 저 이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어. 그래. H 그동안 고생했어. 보자… 줄 게 뭐가 있나."


 담당님은 책상 서랍에서 주섬주섬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서, 내게 건네주셨다. 나중에 열어보니, 지갑이었다. 생각지 못한 선물에 감동하고, 담당님께 너무 감사했다.


"고생했어. 조심히 가고."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퇴사!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사무실 문을 빠져나와, 흡연장으로 걸어갔다. 마지막으로 인사할 사람이 남아 있어서였다. 사수였던 O선배와 함께 늘 붙어 다니던 회사 형님, P형님이었다.


"와, 이제 가네요. 진짜 퇴사할라고 발악했었는데. 4번째 되어서야 나가네."

"고생했다. 아유, 나도 빨리 나가야 되는데 코로나 때문에 나가질 못해. 부럽다."

"뭘 부러워요. 크크크. 이제 시작인데 종종 전화하께요. 달에 정도?"

"야, 뭘 한 달에 한 번이나 해. 분기별로 한번 해. 크크. 아, 나중에 책 쓰면 연락 줘. 한 스무 권 정도 사줄 테니까."

"알겠어요. 행님, 저 가볼게요."

"어어, 그래. 조심히 가고 나중에 연락해."

"네네, 전화드릴게요." 


 이제 정말 퇴사. 흡연장을 떠나 정문에 있는 경비실로 향했다. 매일 같이 지나던 이곳도, 내일부터는 지나지 않게 되었다. 사원증을 반납하기 위해 경비실 창문을 살짝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 퇴사해서 사원증 반납하려구요."

"사원증만 주시면 돼요.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그토록 바라왔던 퇴사. 4번째 도전 만에 드디어 퇴사하게 되었고, 지난하고 힘겨웠던 2년 간의 직장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22개월간의 직장생활동안 도움을 주신 많은 동료분들, 

위로와 격려를 건네준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이 글을 쓰도록 동기를 부여해주신 블로그 이웃분들,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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