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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쓰 Oct 20. 2020

그때는 왜 퇴사하지 못했고, 지금은 왜 퇴사해야 하는가

(25) 마지막 퇴사 결심을 하며 느꼈던 것들.

 공황 발작 증상이 나타난 그날 이후로도,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그보다는 약한 정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이 계속 이어졌다. 증상이 조금 덜 해졌다 뿐이지 여전히 정상 상태는 아니었다. 처방받은 항우울제의 알약 수는 전보다 더 많아졌고, 복용 횟수도 일 2회에서 일 3회로 늘어났다. 더 늦기 전에, 더 큰일이 나기 전에 결단 내려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정말 마지막이 될 퇴사 결심, 퇴사 준비를 시작했다. 진심으로 퇴사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모든 생각이 그쪽으로만 쏠렸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밥 먹을 때나 산책할 때, 잠에 들기 전에는 퇴사 생각만 했고, 심지어는 다이어리, 블로그에 쓰는 글들도 온통 퇴사 이야기로만 도배되어 있었다.


 마지막 퇴사 결심은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루어졌다. 회사 하나 나가는 데에 뭘 그리 거창하게 생각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일생일대의 고민이자 다시없을 결정이었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먼저, '앞서 3번의 퇴사 선언에도 나는 왜 퇴사하지 못하고 이곳에 남아있을까'를 분석해보았다. 원인을 알아야 해답을 찾을 수 있으니까. 몇 날 며칠, 아니 몇 주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 앞서 3번의 퇴사 선언이 실패했던 이유.

 1) 당위성의 부족.

 깊은 고민 끝에 가장 먼저 찾은 답은, 당위성이었다. 퇴사해야 하는 이유, 응당 이 회사를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내게는 없었던 것. 그저 일이 어려워서? 일이 힘들어서? 이런 이유들은 그럴듯하지 못했다. 일이 어려운 거야 처음엔 누구나 다 어려운 것이고, 힘든 것도 시간이 지나면 웃으며 추억으로까지 미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 책임님이나 팀장님도 그렇게 얘기했었으며, 심지어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일차원적인 이유 말고, 정말 이 회사를 나가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이전 3번의 퇴사 선언 때는 퇴사의 당위성보다는 당장 못 버티고 나가고 싶어서, 이 회사만 아니면 될 것 같은 충동적인 생각들이 앞섰다. 그런 이유로는 책임님과 팀장님은 물론 나조차도 설득시키지 못하는 것이 당연지사. 결과적으로는 '지금도 잘하고 있다, 하다 보면 적응된다'라는 그들의 격려와 위로에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당위성을 생각하고 있노라니, 2달 전 퇴사하고 회사를 옮긴 O선배가 생각이 났다. O선배는 아주 오랫동안, 더 좋은 조건과 더 나은 환경에서의 직장생활을 꿈꾸었다. 능력을 인정받는 것,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 그리고 그에 걸맞은 연봉. 그에게는 그것들이 퇴사의 당위성이 되었던 것. O선배가 부단히 노력하고 탐색한 끝에 성공적인 이직을 할 수 있었던 반면, 내게는 그런 당위성이 없었다. 적어도 앞선 세 번의 경우에는 말이다.


 2) 준비 없는 퇴사는 실패하기 마련.

 퇴사 생각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문득 O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O선배와 나, 그리고 부사수 L이 마지막으로 가진 술자리에서 했던 말. "너거도 미리미리 준비해놔라이. 준비해야 기회 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O선배는 당연히 이직을 두고 한 말이었겠지만, 퇴사에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이전 3차례의 퇴사 선언 당시에는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마음의 준비도 그렇고, 경제적 준비도 그렇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어야 했다. 오늘 당장 퇴사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회사 정문을 박차고 나간 뒤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는가? 마음 약해지지 않고, 퇴사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가?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니, 왜 사람들이 준비 없는 퇴사는 실패한다고 하는지, 왜 퇴사에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는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책 없이 퇴사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결정이라 생각되었다. 단순히 감정에 앞설 것이 아니라, 아주 냉철하게 내 현재 상황을 판단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했던 것. 물론 마음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제출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스스로도 감정을 잘 조절해야 했다. '이번 고비 한 번 넘기고, 다음을 기약하자. 제대로 얘기할 수 있을 때까진 일단 참자.' 그 순간이 오기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과 큰 인내가 필요했지만, 어쨌든 필요했다. 정말 마지막 한 방이 필요했었으니까.


 3) 조직 내 사기 저하와 비효율성.

 개인적인 이유와는 크게 상관은 없지만 조직론적인 입장에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도대체 책임님과 팀장님은 내 퇴사를 왜 말리는 걸까'를 생각하다 보니, 그들이 처한 조직 관리자라는 입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직 차원에서 보자면, 조직원 한 명의 이탈은 다른 동료들의 사기 저하, 심하게는 줄퇴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O선배의 퇴사 이후 동료 사원들은 너도 나도 퇴사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와, 나도 다른 회사로 가야 하나, O선배가 괜히 나간 게 아니네.' 하면서.

 또한, 산술적으로만 봐도 퇴사는 조직에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100이라는 업무량을 3명이 나눠서 33씩 했다고 치면, 한 사람이 나가면 그 업무량이 각각 50씩 해야 하는 셈이었다. 안 그래도 많은 업무량이 더 많아지는데 어느 누가 버틸 수 있을까.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조직 관점에서 나의 퇴사를 막아야 했던 것.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평소 동료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면 아주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한 사람이 퇴사해서 생긴 공석을 메우기 위해서는 비효율적인 절차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공석을 그냥 둘 것인가 아니면 새로 직원을 채용할 것인가를 관리자들끼리 논의를 해야 한다. 논의 결과, 공석을 메운다고 결정했다면 이를 회사 측에 요청해야 하고, 결재를 올린 후 사장님의 승인까지 있어야 인사팀에서 채용 공고를 띄울 수 있다. 그 이후에 서류 전형부터 인적성-면접 전형까지 진행되는데, 이 역시 상당 시일이 소요된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을 뽑았다면? 다시 신입사원 교육부터 실무에 투입되는 데까지 적어도 두세 달은 소요되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그리고 그가 업무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부분까지… 이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퇴사→공석 논의→추가 채용 결재→결재 검토 및 승인→채용공고→서류 전형→인적성 전형→면접전형→신입사원 채용→신입사원 교육→실무 투입. 그냥 눈으로만 봐도 피곤한 일인데,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일인가. 조직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효율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퇴사를 막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퇴사하지 못했던 이유를 분석하고 정리한 내용이었다. 장황하긴 하지만 핵심은 하나. 그때의 나는 퇴사해야 할 이유, 퇴사할 용기도 없었고, 퇴사할 준비는 더더욱 안되어 있었다. 이제는 진정한 퇴사 이유를 찾고 이 직장을 그만둔 이후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이 또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아주 깊게 고민해야 했고 그만큼 힘겹기도 했다.


이 퇴직원을 제출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나는 왜 퇴사해야 하는가.

1) 서른이 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서른이 되기 전에 결정해야 했다. 내게 서른이라는 나이는 단순히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려온 어른의 기준은 서른 이후였다. 십 대와 이십 대를 겪으며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면,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는 나이가 서른이라 생각했다. 그림으로 치면 밑그림 위에 색을 입히는 시기랄까. 이십 대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나 스스로 '서른이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고, 그 불안감과 조바심은 점차 커져만 갔다. 물론 그 이전이라 해도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성실하게 실천해나갈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분기점은 바로 서른이었다.

 그 나이 서른을 정신없고 숨 막히는 직장에서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주 5일을 기계처럼 일하고 주말에도 끊임없이 업무전화가 오는 지옥과도 같던 직장. 나는 그런 직장에서 인생에 대한 환멸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환멸이 서른이라는 나이도 의미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서른이 되기 전, 그러니까 스물아홉에는 반드시 결정해야 했다. 그 시기가 마침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이 시기였다.

 게다가 내 눈에 비친 30대 선배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나 목적의식 없이, 있다한들 현실적인 여건 아래서 행하지 못하고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직장생활에 안주하며 가정에만 충실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것이 본인의 가치관이나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면 괜찮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지켜야 할 가정, 돈, 사회적 지위 등 이러한 현실적인 여건들을 갖추기 전에 결정해야 했다.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그것들을 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들이 나의 마지막 퇴사 결심으로까지 이끌게 된 것이다.


2) 인생을 걸어서라도 하고 싶은 일.

 앞서 퇴사의 당위성과 준비해야 하는 퇴사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왜 퇴사를 해야 하는가, 직장을 그만 둘 정도로 해야 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당장 나가더라도 할 일이 있는가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았다. 다행히 그 고민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주 옛날,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를 만큼 어릴 적에도 나는 글 쓰는 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글 쓰는 게 그저 재미있고 즐거웠다. 하물며 글이라는 것이 아무 형식 없는 일기나 에세이일지라도. 머릿속에서만 맴맴 돌던 무형의 생각에, 살을 붙이고 덧대어 유형의 글로 형상화하는 순간이 늘 신기하고 즐거웠다. 인간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글이었으며, 나는 그 창조의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꿈을 지지해주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블로그 이웃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간간이 써왔던 솔직한 글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었고, 때로는 그들이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주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에, 많은 분들이 글 쓰는 일과 잘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길 해주셨고 큰 용기와 힘을 얻은 것이다.

 설령 글 쓰는 일이 돈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나는 애초에 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돈이 없는 채로 태어났고 그리 유복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왔으며, 직장생활 2년은 아주 잠시 돈을 만져본 기간에 불과했을 뿐이다. 돈이나 명예보다는 내 꿈을 성취하기를 바랐고, 이를 지지해주는 많은 사람들까지 있으니 더 큰 힘이 되었다. 결국 '더 늦기 전에, 인생을 걸어서라도 한 번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3) 이기적이어도 괜찮아.

 마지막으로, 정신적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퇴사 결심에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던 정신건강. 이야기 전반에서 계속 언급되었지만 내 직장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다. 중화권 고객사 담당자든 회사 내 동료든, 그 누구의 전화라도 벨소리가 울리면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해져 어느 순간부터는 병적으로 전화나 메신저를 싫어하게 되었다. 중화권 CS 엔지니어이긴 했지만 중국/대만 출장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고, 고객 대응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부담감, 불안감은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나를 집어삼킬 만큼 크고 강력한 해일이 되어있었다. 그 감정의 해일 앞에서 나는 너무나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였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황이 되어, 나 자신을 해할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퇴사하지 못했던 것은 남은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가족 같은 회사'가 있냐고 조롱 섞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우리 팀원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했다. 좋은 의미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보여줄 수 있는 팀이었다. 다른 부서에서도 부럽다고 생각할 정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끈끈함이 있었고, 나 역시 그런 유대감 속에서 일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하게 느꼈다. 그런 와중에 내가 퇴사를 한다면? 이기적인 생각은 아닐까, 남은 사람들이 힘들어지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땐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 같은 회사라도, 내가 힘들면 그만인 것. 나 자신을 해할 정도의 생각까지 갔다면, '이제는 정말 그만 해도 괜찮겠다, 이기적이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나 자신, 내 삶보다 소중한 건 없으니까.

 

 몇 주 동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이렇게나 많은 생각과 깊은 고민을 했다. 여전히 매주 토요일마다 병원엘 가서 상담치료를 받았고, 매일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혹여나 나아지진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걸어보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나는 마지막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퇴사. 이를 실행에 옮길 때가 곧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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