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본본쓰 Oct 23. 2020

마지막 퇴사 선언 : 드디어 떠날 수 있게 되었다.

(26) 네 번째이자 마지막 퇴사 선언.

- 퇴사 프로젝트.

 혼자만의 고민과 결정은 모두 마쳤다. 그래도 이 결정이 과연 맞는지, 먼 훗날 돌아봤을 때 후회하진 않을지 등등의 걱정과 염려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고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도 모르니 당연히 걱정하고 염려할 수밖에.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은 내가 퇴사함에 있어서 안고 가야 하는 짐이자,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나 자신만의 숙제였다.

 허나, 이런 걱정들과 염려를 혼자 안고 있기에는 그 무게가 무겁기도 했고 막막하기도 했다. 결국 퇴사하겠다고 마음먹은 후로 '퇴사 프로젝트'라는 걸 기획했다. 한 번이라도 퇴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퇴사했던 이유는 무엇이고, 퇴사한 이후의 삶은 어떠한지, 지금의 삶에는 만족하는지 등에 대해서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그들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젝트 계획은 꽤나 꼼꼼하고 치밀하게 진행되었는데, 다행히 주변 친구들과 블로그 이웃 몇 분이 도와주었다.

서울에서 퇴사 프로젝트 인터뷰를 진행했던 날.

 퇴사 프로젝트는 약 한 달 정도 진행되었고, 매주 주말에 시간을 따로 빼서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인터뷰 대상은 퇴사 경험자. 직군이나 경력을 따지지 않았다. 그 결과, 서면 인터뷰까지 포함한 총 4명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두 곳의 지역 신문사를 다니다 퇴사한 후, 하고 싶었던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 J. 유명 화장품 기업 면세팀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영업직을 그만두고 공무원이 된 친구 K. 반도체 관련 기업 소속으로 10년 간 엔지니어 일을 하시다가 돌연 퇴사하시고 지금은 중국어 강사가 되신 C님. 그리고 대학 소속으로 직업 상담사로 일하다가 프리랜서가 되신 S님. 사실 더 많은 분들을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내 절박한 마음과 부족한 시간은 이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바쁜 시간 내서 인터뷰에 응해주신 네 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한 회의 인터뷰에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2시간. 사전에 양해를 구한 뒤 인터뷰 내용을 녹취하기도 했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시에 받아 적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사실 형식이나 방법보다는 그들의 생생한 경험과 진심이 담긴 조언이 필요했기에 나는 그 부분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미리 질문지를 만들어 갔는데, 질문했던 내용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예전에 일했던 직장에서는 어떤 일을 담당했었는지? 일한 기간은 얼마나 되었는지? 어떤 사유로 퇴사하게 되었는지? 퇴사하기 전, 가장 마음에 걸렸던 점은 어떤 것이었는지? 퇴사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퇴사한 이후의 삶과 현재의 만족도는 어떠한지?

 각자가 처했던 직업적인 환경이나 구체적인 경험이 다르긴 했으나, 큰 틀에서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 외부로부터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 업무 강도 등 이런 부분들은 공통적이어서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이 4명의 인터뷰 대상자들 모두가 직장생활 당시에는 나와 비슷한 정도 또는 그 이상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퇴사 이후엔 만족도와 자신감이 꽤 높은 삶을 살고 있었다. 수치화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인터뷰 막바지에는 모두가 나의 퇴사 결심을 응원해주고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이 퇴사 프로젝트는 내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고 동시에 내가 퇴사를 해야겠다는 의지와 결심을 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 그래, 우리 아들 하고 싶은  .

 서울에서 친구 K와 작가 C님과의 인터뷰가 있었던 토요일. 인터뷰를 마치고 그날 오후 원주 본가로 향했다. 일정 자체를 본가에 와서 부모님께 퇴사를 말씀드릴 것까지 계획해놨기에, 원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엄마, 저 왔어요."

"오이구, 우리 아들 왔어."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나를 반겨주셨다. 구미에서 원주까지가 멀기도 했고 교통편이 그리 좋지 않았던 탓에 집에 오는 건 늘 명절뿐이었다. 그랬던 아들이 평범한 주말에 집엘 왔으니 얼마나 반가우셨을까. 너무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는 집에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제 직장 그만 두면, 자주 와야지.

 이번에 집에 온 목적은 가족들에게 내 퇴사를 먼저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퇴사 이야기를 언제 꺼낼지 한참 고민했다. 살얼음판 걷는 것처럼 조마조마했고, 내적 갈등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언제 얘기하지, 지금 얘기할까. 아니다, 조금만 이따가, 조금만 이따가.' 그렇게 고민하며 거실에 앉아 TV를 보던 중, 뜻밖의 이야기를 먼저 듣게 되었다. 어머니의 퇴사 이야기였다.


"아들, 엄마 회사 그만뒀다?"

"에? 갑자기? 왜?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회사 실적도 안 좋고, 엄마가 아웃소싱으로 일하고 있던 거잖아. 회사에서 나오지 말라는데 뭐 어떻게 해. 퇴직금 좀 받고, 지금 쉬고 있지."

"며칠 됐는데?"

"이번 주. 이번 주에 그랬어."


 퇴사가 아니라 해고였던 셈이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인해 비정규직이었던 어머니는 회사로부터 해고당한 것. 그 짧은 순간,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번뇌에 휩싸였다. 내 퇴사 선언 계획에 어머니의 해고는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 내 퇴사 이야기를 들으시면, 얼마나 충격받으실까. 엄마도 이제 직장 없고, 나도 직장 없고. 엄마 생계는 어떻게 하지. 너무 이기적인 생각 아닌가.' 하지만, 나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하고 온 상황. 어머니의 삶도 중요하지만 나 역시도 중요했다. 어머니야 타의에 의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나는 자의에 의해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고 기회도 이날뿐이라 생각했다. 어떻게든 이야길 해야 했기에, 깊은 고민 끝에 힘들게나마 입을 뗐다.  


"엄마… 나도 회사 나가려고."


 애써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가던 어머니의 얼굴은, 나의 퇴사 선언과 함께 일순간 일그러졌다. 나였어도 그랬겠을 것 같았다. 이어, 왜 퇴사를 하고 싶으며 어떤 계기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이 순간을 위해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왔던 터라, 마치 준비된 대본을 읽듯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물론 정신과 치료니 우울증, 신경쇠약, 공황 발작, 이런 것들은 전혀 말씀드리질 않았다.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 

 꽤 오랜 시간 이어진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어머니는 고갤 끄덕이셨고, 내 꿈에 대해 응원과 지지를 해주셨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던지…


"음…… 그래. 얘기 들어보니 H 말이 다 맞네. 그동안 우리 아들이 엄마 실망시킨 적 없으니까,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해."


 어머니 입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스물아홉 먹은 큰아들이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니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게다가 2년 전 나의 입사 소식에 그 누구보다 기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셨던 어머니였다. 큰 실망감을 안겨 드린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아버지께도 말씀드렸는데, 아버지 반응 역시 마찬가지셨다.


"어, 그래. H,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아빠도 하고 싶은 일 못하고 지금 택시나 하고 있는데. 우리 아들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 잘할 수 있을 거야."


 의외로 의연하고 무덤덤하게 말씀하셔서 놀랐다. 또 한편으로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는 아버지의 말이 왜 이렇게 가슴 한켠을 후벼 파던지… 결과적으로는 내 결정에 대해 부모님 모두 동의해주셨고, 퇴사 선언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는 다시 구미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제는 진짜, 진짜 마지막 퇴사 선언만 남겨두게 되었다.



이렇게나 화창했던 마지막 퇴사 선언 당일.


- 마지막 퇴사 선언.

 부모님께도 퇴사 소식을 미리 말씀드렸고, 이제 남은 것은 회사에 마지막 퇴사 통보를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다가온 마지막 퇴사 선언의 날. '오늘이 마지막 퇴사 선언이다. 이제 빠꾸 없고, 무조건 직진이다.' 비장한 마음으로, 그동안 옷장 속에 고이 모셔 두었던 정장도 꺼내 입고 출근길에 나섰다.

 이 날은 너무나도 화창한 날이었다. 화창한 날씨만큼 기분도 화창하길 바랐지만 퇴사 생각에 내 마음은 너무나도 무겁고 불편했다. 결국 이렇게 화창한 날, 나는 또 퇴사하겠다고 책임님과 팀장님께 말씀드려야 했다. 출근하자마자 퇴사 선언을 할 시간과 장소까지 정해두었다. 오후 4시, 1층 소회의실. 오전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평상시처럼 업무를 했다. 오후에도 그렇게 업무에 열중이었는데,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덧 4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3시 30분부터는 초조함과 긴장감에 몸을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3시 55분, 4시 5분 전.

 

"H. L사 담당자가 CC 하자는데, 회의실 비는 데 있나?"

"아, 1층 소회의실 하나 잡아놓은 거 있습니다."

"지금 가자."


 마침 다른 이슈로 인해 고객사 측에서 J책임님께 컨퍼런스콜을 하자고 했고, 회의실을 찾던 J책임님과 함께 1층 소회의실로 향하게 되었다. 고객사 담당자는 회의하자고 해놓고는, 다른 업무로 바빴는지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전화 안 받는데요?"

"아, 됐따. 쉬다가 이따 전화하자."


 결국 컨퍼런스콜은 포기하고 잠시 쉬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4시, 마지막 퇴사 선언을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나는 퇴사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책임님이 대화의 물꼬를 트셨다.


"아, 오늘 L이 내 얘기 안 하드나?"

"책임님이요? 아뇨. 왜요?"

"하, 어제 L이랑 F사 이슈 얘기하는데 내용 이해를 못하드라고. 한 소리 했드만, 꽁 해져가꼬… 뭐 반응도 뜨드미지근하고. O나 니랑은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데. 업무도 빨리 레벨업 돼야 손발이 착착 맞을 텐데. 이제 L 들어온 지 얼마나 됐노?"

"한… 서너 달 됐지 싶은데요."

"이제 할 만큼 했네, 그면. 따로 교육 좀 시키야겠다. 가 때매 내도 스트레스 마이 받는디."

 

 책임님의 목소리에서 그간 쌓여왔던 답답함과 파트리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책임님도 많이 힘드셨을 터. 일 잘하던 O선배가 이직하고, 내가 그 빈자리를 메우려다 되려 마음의 병까지 얻게 되어 일도 못 시키는 상황에서, 부사수 L이 아직 업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게다가 내가 담당하던 업무는 모두 책임님의 몫이 되었기에, 그 스트레스와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업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이런 일들이 발생했나 싶었고, 이로부터 오는 죄책감과 죄송함이 앞섰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이야기해야 했다. 계속 짊어지고 갈 힘이 없었기 때문. 그리고 바로 지금이 마지막 퇴사 선언을 할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어... 책임님. 이제 제 얘기 좀 해도 될까요...?"




 무려 4번째 퇴사 선언. 작년 봄, 작년 여름, 그리고 올해 겨울... 그리고 오늘. 이 순간을 얼마나 상상하고 고대해왔는지 모른다. 이날, 이 순간을 위해 취업 준비하던 그 시절보다 더 치밀하고 꼼꼼하게 예상답안을 준비하고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간 3번의 퇴사 선언에 연거푸 실패를 거듭한 나에게는 이번 퇴사 선언이 정말 마지막이어야 했다. 이번에도 붙잡힌다면 평생 이 회사에서 썩어야 할 것 같았기에,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기에.


"퇴사하려고요..."


 이 한 마디를 들은 J책임님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나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퇴사 선언을 예상이라도 한 듯한 책임님의 표정과 탄식을 무시한 채 말이다.


 "지난 한 달 동안 병원도 다니고 상담도 받고 약도 먹으면서 진짜 고민을 많이 해봤어요. 그런데, 평생을 이렇게 약 먹으면서 회사 다니는 것보다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해보고 싶었어요. 회사 다니면서는 정말 단 한순간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어느 직장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퇴사라는 결정이 쉽지는 않을 터. 나 또한 그랬지만, 난 이 지옥 같은 회사를 나가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짧은 고요함 뒤에 과장님이 입을 뗐다.


 "아… 그럴 것 같았다, 그럴 거 같았어… 후… 퇴사하고는, 쉬려고?"

 "글을 쓰려고요, 소설이나 에세이요."


 이번에는 붙잡질 않으셨다. 앞선 3번의 퇴사 선언 때마다 '잘하고 있다, 너 같은 인재는 없다, 다들 칭찬을 하더라' 이렇게 다독이며 설득했었는데, 이번에는 회유와 만류 없이 바로 퇴사 이후의 계획을 물어보셨다. 붙잡질 않아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퇴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 역설적인 순간. 그 순간 안도감과 함께 그동안 준비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실 문과 출신이 초봉 4천 받으면서 일하는 케이스가 거의 없는데, 저는 돈보다는 행복한 걸 더 바라는 거 같아요. 진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늘 껍데기 같은 기분이었어요. 월급 받는 날도 행복하질 않았어요. 매일매일 제 자신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저 무기력한 사람이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돈 많이 벌면 뭐하나 행복하질 않은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뭘 하면 행복할까를 생각하고 고민해보니까, 글 쓰는 거. 그냥 글 쓸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았어요.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구요."

"하… 그래. 그래, 알겠다. 니가 못 하겠다는 우야겠노. 그래도 절차가 있으니까, 일단 팀장님께 보고하고 다시 얘기하는 걸로. 그래 하자."




 의외로 짧은 대화로 네 번째이자 마지막 퇴사 선언 1라운드는 끝이 났다. 나름 성공적이라 생각한 1라운드가 지나고, 2라운드는 팀장님과의 면담이었다.  


"예, 팀장님. 지금 사무실 잠깐 오셔야 될 것 같은데요. 아, 아뇨, 뭐 이슈는 아니고. 오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1층 회의실로요? 예, 예, 알겠습니다."

 

 J책임님은 팀장님과의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를 데리고 다시 소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먼저 도착하신 팀장님과 국내파트의 H선임님이 앉아있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그저 죄송한 마음만 앞섰다. 그동안 때로는 형님 같았고, 때로는 아버지 같았던 팀장님께 정말 마지막 퇴사 선언을 해야 해서 그랬나 보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더니,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고개 숙이는 거 아니야, 뭐 잘못한 거 있나."


 그래, 난 잘못한 게 없었다. 그동안 할 만큼 했고, 버틸 만큼 버텼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이 자리에 온 거였고. 이어 팀장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셨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나?"

"저는 한 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5월 말까지요."

"음… 니도 알겠지만 퇴사 절차도 필요하고, 후임자도 구해야 하고… 지금 코로나 때문에 사람 구하는 게 쉽지 않은 거 알지? 사람 뽑고 인수인계도 해야 하니 7월 말까지 좀 부탁하자."


 퇴사 선언을 했던 이날은 4월 21일. 퇴사일은 7월 말…? 무려 3개월을 더 해달라는 팀장님의 말씀에 할 말을 잠시 잃었다. '7월말까지라뇨… 지금 당장 나가고 싶은 마음인데…' 그래도 그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팀장님의 간곡한 부탁에 마음이 흔들렸고, 나 또한 그동안 신세를 많이 졌다고 생각한 지라 한 발 물러섰다.


"음… 7월 말까지는 조금… 6월까지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 이상은 저도…"

"알겠다. 그면 일단 6월 말까지로 잡아놓고.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마지막 퇴사 선언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의외로 퇴사 선언 2라운드도 쉽게 끝난 것 같아 너무 다행이었다. 입사 면접 때만큼이나 떨리고 긴장되었던 마음은 회의실에서 나온 뒤에야 겨우 풀렸고, 이제야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고 길었던 퇴사 도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그 순간, 그간 힘들었던 나날이 스쳐 지나갔고, 퇴사 선언을 했던 지난 3번의 장면들도 함께 떠올랐다. 이 날을 얼마나 고대해왔고 마음 졸여왔던지! 앞으로 두 달. 두 달만 버티면 그렇게 꿈꿔왔던 퇴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회사를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밝은 날만 가득하기를!


이전 26화 그때는 왜 퇴사하지 못했고, 지금은 왜 퇴사해야 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