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감독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품이 쏟아진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몸이 보내는 신호일 수도 있지만 지루함을 못 참고 쏟아질 때도 있다. 영화를 볼 때도 지루함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런 영화를 볼 때면 꾸벅 졸 때도 있고, 다른 생각을 하거나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심지어 도중에 관람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떤 영화는 관람이 아닌 체험이 됩니다.
- 영화 평론가 이동진
그동안 내가 높은 평점을 준 영화들을 곰곰이 살펴봤다. 영화에서 하는 이야기와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영화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어떤 영화는 관람에서 멈추지 않고 체험을 가져다준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커진텅과 션자이가 2년 만에 다시 통화하는 장면에서 '나도 널 좋아하던 그 시절의 내가 좋아'라고 말하던 커진텅의 대사에서 순수하고 서툴렀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떠올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관람 정도에서 그친 것이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제작한 구파도 감독의 본명은 커진텅이다. 그리고 그가 좋아했던 첫사랑의 이름은 션자이였다. 커징텅과 션자이는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구파도 감독은 자전적인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냈다. 영화 속 션자이처럼 그의 첫사랑 또한 2005년에 결혼했고, 영화 속 학생들이 입고 있던 교복도, 학교의 모습도 본인의 학창 시절 그대로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좋아했던 내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영화 <변산>
우리는 살아가면서 첫사랑이 가져다주는 여운을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순수했던 마음과 모든 행동이 서툴렀고, 그런 본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담겨 있기에 그 여운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17세 커징텅에게
한 소녀를 사랑하던 널
영원히 잊지 않을게
그 시절의 넌, 반짝반짝 빛이 났다.
32세 커징텅이
커진텅이기도 한 구파도 감독은 32살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쯤 15년 전의 커진텅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을 보면 괜히 마음이 찡하다.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 또한 이 장면에서 누군가를 사랑했던 그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션자이 역을 맡았던 천옌시는 2016년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커진텅 역을 맡았던 가진동은 "오늘은 소년이 소녀에게 가는 마지막 날, 넌 분명 내 상상보다 예쁠 거야. 결혼 축하해 내 청춘"이라는 글을 올려 팬들에게 깊은 여운을 주기도 했다.
고단한 일상과 마주하느라 잊혀 가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다시금 살려주는 영화였다. 내 모습을 발견해주는 영화를 우리가 더 높게 평가하는 것처럼, 아마 첫사랑 또한 누군가를 좋아하는 내 모습을 처음으로 발견해줘서 영영 우리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 아닐까. 영화의 엔딩은 라라랜드의 엔딩만큼이나 여운이 진한 커피와 같았다.
평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