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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Dec 05. 2018

스물아홉수가 왔습니다만

 어느덧 20대도 한 달 남짓밖에 남았다. 퇴사하고 갭이어라는 핑계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되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12시에 칼같이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어떤 선택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하듯이 자유에도 비용을 치러야 했다. 늦게 일어날 수 있지만 하루 종일 잘 수 없으니 최소한 몇 시에 일어날지를 정해야 하고, 내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회사 다닐 때만큼은 아니지만) 일찍 일어나야 한다. 회사에 출근하기 싫을 때 '오늘 휴가 쓸까?'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지금은 '오늘 쉴까?' 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금세 언행일치가 된다.


30대에 먼저 접어든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그저 몇 살 더 먹었을 뿐인데 옛날 같지 않다고. 잔병치레가 많아졌고 예전처럼 밤새 술 마시기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나는 해당되지 않기에 남의 이야기처럼 들었다. 그러나 서른이 가까워지니 그 말은 진리이자 사실이었다. 멀쩡하던 어깨가 결리고, 온몸에서 '나 아파요'라고 신호를 보냈다. 심지어 감기가 걸려도 쉽게 낫지 않는다.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생각해봤지만 20대 때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행은 특별한 일상이다. 그래서 3월에 퇴사하고 블라디보스토크와 치앙마이를 다녀온 5월까지는 무척 행복했다. 그러나 특별함이 평범함으로 바뀌는 6월부터는 회사를 다니지 않은 환경에서 오는 낯선 감정들을 이겨내야 했다. 매일 같은 카페를 가는 건 성격상 맞지 않아 항상 새로운 장소를 발굴해야 했고 식사할 곳을 정할 때도 이어졌다. 오늘 일은 오늘로 끝나니 공허했다. 오늘과 내일이 연결되지 않아 장기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두렵지만 책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이 지났다. 책을 쓴다는 것이 힘든 과정이었지만 과정 동안 공허함은 사라졌다. 회사에서 연간 계획, 월간 계획 수립할 때 '이런 건 왜 하는 거야?'라고 불만을 가졌는데 살아가는데 꼭 필요했다.


서른을 코 앞에 두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추석 연휴 때 인천 집에 내려갔다. 지난 설날 이후로 처음이다. 가족들은 시골에 내려갔고 나는 집에 있기로 했다. 분당에서 지낼 때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서 그런지 루틴대로 착착 지내는 반면에 인천에만 오면 편한 기분이 들어 일상이 무너진다. TV를 하염없이 보고 그동안 밀린 잠을 보충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평소에 없던 증상이다. 그전에 종종 증후가 있긴 했지만 가볍게 넘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증상은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최근에 안 되겠다 싶어 종합병원을 찾았다. 신경과 의사 선생님은 증상에 대해 10분가량 상세히 묻더니 통원 치료도 가능하지만 종합병원 특성상 한 번 검사받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니 사흘 정도 입원해서 정밀 검진을 받자고 제안했다. 입원 수속을 받고 자리가 생기면 연락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가량 지난 지금까지 아직 자리가 없는지 병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또 몸은 괜찮다)


집도 아프기 시작했다 (왜 너까지..)

최근 일본 소도시 여행에 꽂혀 11월에 요나고와 시즈오카 여행을 다녀왔다. 시즈오카를 다녀오고 평소처럼 집에 도착했는데 이상함이 감지됐다. 어디선가 물이 새고 있었다. 싱크대와 가까운 곳에 있는 이불은 젖었고 화장실과 베란다는 물이 가득했다. 하수구가 막혀 역류했다. 집주인에게 연락하니 바로 옆집 화장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다른 세대에서 물을 쓰기 시작하더니 싱크대에 있는 물이 방으로 역류했다. 일단 젖으면 위험한 물건을 모두 밖으로 꺼내고 업체를 불러 막힌 곳을 뚫어보려고 했지만 4개의 업체 모두 실패했다. 공사가 필요했다. 업체에서 말하기를 막힌 곳을 뚫기에는 큰 비용이 든다고 했다. 다른 하수도 배관에 현재 막힌 배관을 연결해서 흘러 보내는 것이 차선책으로 제안했다. 집주인은 후자를 선택했다. 우리 집 화장실에서 배관을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반나절이 걸렸다. 공사를 마치고 이상 없는지 동시에 물을 틀었다. 다른 집에서도 같이 틀어봤는데 괜찮았다. 다음은 하수구가 역류한 장판을 모두 뜯어냈다. 바닥이 마르고 다시 도배·장판을 깔 때까지 며칠간 집에서 자는 건 불가능했다. 인천에 가서 며칠 지낼까 생각도 했지만 개인 짐도 그렇고, 도배·장판 할 때도 한 번씩 집에 다녀와야 돼서 근처에서 지내기로 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캐리어를 들고 소공녀의 미소(이솜)처럼 전 회사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다행히 4박 동안 불편함 없이 재워줬다. 이상하게 여행이 끝나지 않은 기분이다.  


[예전에 썼던 영화 <소공녀>의 리뷰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도배·장판이 끝나면 바로 지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맙소사. 이틀 동안 비가 내렸다. 바닥은 다시 축축해졌다. 하수구가 역류할 때 피해가 없던 지하가 난리가 났다. 천장과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렸고 전기까지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지하에 사는 분도 참 안 됐지만 일단 나도 안됐기 때문에 도배·장판이 완료됐는지 집주인에게 물었다. 도배는 완료됐지만 며칠 동안 비가 와서 축축한 바닥 때문에 장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아저씨와 직접 연락을 해서 지금 장판을 깔고 며칠 뒤에 마무리 작업을 할 것인지, 바닥이 완전히 마를 때 한 번에 마무리 지을 것인지 협의하라고 했다. 일본 시즈오카 3박 4일 여행을 다녀오고, 하수구 역류 때문에 다시 4박 5일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할 일이 쌓였고 해야 할 일은 미루고 미뤘기 때문에 더 미루기엔 불가능했다. 일단 장판을 깔고 바닥이 마르면 그때 마무리 작업을 하기로 했다. (지하에 사는 분도 도배·장판을 다시 했다)


 하수도 공사는 원인이 되는 '막힌 곳'을 뚫지 못했기 때문에 누구 문제인지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했다. 집주인은 처음에 나와 옆집만 막혔기 때문에 두 세입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게 맞지만, 도리상 아닌 거 같아 공사 비용은 본인이 낸다고 했다. 나는 하수구가 역류한 도배·장판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집주인은 2년 넘게 잘 지내다가 사용을 잘못해서 막힌 것 아니냐. 그건 못해주겠다고 했다. 2년 넘게 잘 지냈는데 갑자기 이런 거면 건물이 노후화돼서 생긴 문제 아니냐고 반박했다. 집주인은 일단 하수도 공사부터 하고 하나하나 해결하자고 분쟁을 연기했다.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 대신 우회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일단락했다. 처음에 난색을 표하던 집주인은 다행히도 하수도 공사와 도배·장판까지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 (만약 내가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면 전세 계약을 파기하고 이사할 생각이었다.)


 나를 며칠간 재워준 회사 동료들은 숙박비까지 청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이미 공사비랑 2세대의 도배·장판까지 책임진 입장에서 그 비용까지 집주인에게 전가하기엔 아닌 것 같았다. (만약 이 건물을 오래 소유한 집주인이었다면 하수도 상황을 잘 알고 있을 테니 청구했겠지만 집주인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스물아홉수의 저주에서 오는 의외의 장점(?)


하수구 역류 때문에 가장 아끼는 서브 바인더 중 하나인 주간 계획표(2012~2015)가 담긴 바인더가 몽땅 젖었다. 적잖이 충격을 받아서 보일러를 켜고 드라이기로 하나씩 말렸다. 말리던 중 가만히 생각해보니 깨끗한 물이 아닌 더러운 물에 오염된 거고, 오래된 자료였다.



 그리고 이미 스캔을 해서 디지털 백업이 완료된 자료이기도 했다. 이건 정말 다행이었다.



 함께 주간 계획을 인증하는 소모임에서 바인더가 젖었다고 말하니, 이미 나를 잘 알고 있는 분이 스캔 다 해놓았으니 버리라고 권했다. (맞는 말씀이다) 이 자료 말고는 하수구 역류로 인해 피해 입은 물건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디지털 자료로 백업해둔 덕분에 아날로그 자료는 쉽게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인해 '이 에피소드는 나중에 생산성 도구 강의를 할 때도 하나의 에피소드로 써먹을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성격이 참 낙관적으로 변했다. 좋은 일이다. 이성복 시인은 이야기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고 했다. 스물아홉의 두 사건으로 인해 얻은 게 있다. '건강 관리를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과 '젖으면 다 소용없다. 집에 있는 짐을 최대한 줄이자'는 생각이다. 


11월 20일에 썼던 글 <일상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면>은 브런치 메인에 게시되었다. 이 글은 처음 더 길게 쓰려고 했다가 더 썼던 내용이 풀어가는 과정에서 진부하게 느껴져서 삭제하고 '취미'에 관련된 글만 발행했다.



 이때 쓰려고 정리해놓은 글감의 원본이다. 글 <일상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면>은 위 글감에서 '탈출할 취미가 하나쯤은 있을 것'만 얘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스물아홉수 사건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긴 했지만 예전처럼 크게 무너지지 않았다. 일단 하수구가 역류했던 것은 내가 통제 불가능한 문제였다. 그리고 아팠던 것에 스트레스받으면 더 악화될 뿐이다. 그동안 건강 관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뿌린 대로 거둔 거다. 생각하고 앞으로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해결책에 집중했다. 그리고 2012년~2015년 주간 계획 자료들은 이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갔다. 내가 의도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일상에서는 아날로그 자료를 매번 스캔하는 것이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다. 그래도 감수하고 한 덕분에 넘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만약 귀찮아서 스캔하지 않았다면 더러운 물에 젖은 자료를 버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다.




 아홉수에 관해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나중에 일상의 소중함을 잊었을 때 다시 소중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도 좋지만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의 행복을 놓치면 안 된다. 아프지 않을 땐 건강하다는 것이 행복한지 모른다. 아파봐야만 건강이 곧 모든 일의 특권임을 인지한다. 이렇게 된 이상 아홉수가 끝나는 내년에는 더 좋은 일이 일어나려나보다. 스물아홉 안녕. 스물아홉수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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