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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Oct 11. 2018

나는 점점 근사해지고 있다.

 오랜만에 회사 동료나 친구를 만나면 가장 먼저 듣는 얘기는 '표정이 왜 이렇게 좋아졌어?'라는 반응이다. 농담 반 진담 반처럼 모든 게 퇴사 덕분이라고 얘기한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아하는 일을 늘린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카페에 가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모임에 가서 사람들과 토론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사소한 것투성이다. '이런 거 하려고 퇴사했어?'라고 반문할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한 일이지만 퇴사하지 않았으면 '나중에'라는 핑계로 하지 않았을 일이다.


  어느덧 운영 중인 모임은 내가 회사에 다니던 2년 6개월을 훌쩍 넘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모임 하냐고 물을 때 '바인더 모임'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이해를 못 해, 그냥 대충 '독서 모임'이라고 얼버무린다. 독서도 하고, 바인더도 쓰고, 다른 것들도 다양하게 하는 아무튼 희한한 모임이다. 다음 달이면 모임을 시작한 지도 3년이 된다. 오랜 시간 운영하다 보니 주변에서 이렇게 오래 운영하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그렇게 답할 때마다 상대는 놀란다. '힘들면 그만두는 게 맞지 않아?'라고 다시 질문이 날아오면 '회사도 힘든데 퇴사합시다'라고 맞받아친다. 그때가 돼서야 상대도 본인의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는다. 힘든 일이라도 그게 좋아하는 일이라면 다르다. 우리는 보통 하기 싫은 일을 견디는 일에 최적화되어있기 때문에 힘든 일이라면 자연스레 그렇게 연결된다. 하지만 모임은 좋아하면서 힘든 일이다. 힘들어도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모든 시작은 열정이 가득하다. 그래서 내가 모임을 만들 때도 열정 한 가득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일이 영원히 열정이 가득할 수 없다. 모임을 운영하면서 그게 가장 큰 문제였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 3년간 열심히 열정에 기름을 붓고 또 부었다. 덕분에 올림픽 성화처럼 열정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기적이다.


 큰 화면으로 봐야 하는 영화는 용산 CGV의 IMAX관에 가고,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는 영화는 메가박스 코엑스점의 MX관에서 관람한다. 용아맥(용산 아이맥스)에서 관람한 영화 <덩케르크>, <그래비티> 덕분에 눈이 호강했고, MX관에서 관람한 영화 <스타 이즈 본>은 귀가 호강했다. 눈과 귀가 호강하니 참 행운이다. 곧 영화 <퍼스트맨>이 개봉하니 이제 눈이 호강할 차례다.


 나는 퇴사를 했지만 주변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는 퇴사를 권유하지 않는다. 특히 힘들 때는 더더욱. 대부분 퇴사를 고민할 때는 상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거나, 일이 너무 힘든 경우가 많다. 그때 그만두면 다음 회사에서도 그 순간에 퇴사를 고민하기 때문에 그만두더라도 상사와의 관계가 개선되거나, 힘든 일이 마무리될 때쯤 그만두라고 권한다. 그렇지만 개선되면 사람들은 퇴사를 생각하지 않는다. 다닐만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퇴사하는 사람들은 무료한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대부분이 퇴사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돈과 직결하겠지만 그만 두면 돈보다 시간에 대한 고민이 크다. 돈은 '아껴 쓰자'라고 한 번만 결정하면 되는데, 시간은 언제 밥 먹을지, 언제 쉴지, 언제 씻을지까지 눈을 뜨는 내내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특히 회사 다닐 때 점심 메뉴로 해장국을 먹을지, 부대찌개를 먹을지, 설렁탕을 먹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선택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이런 결정은 큰 곤욕이다.


 퇴사 후, 가장 큰 변화는 행복의 관점이다. 지난 몇 년간 행복은 지금보다 미래의 내가 누려야 했다. 지금 쓰는 돈을 아끼면 나중에 집을 살 수 있으니 아끼고 또 아끼자였다. 여행은 최소화하고, 적금은 최대화했다. 지출이 큰 달이면 '어떤 항목에 큰돈을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채, 지출이 많다는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은 고작 술자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같은 팀 과장님과 차장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티타임을 가지면 사원, 대리를 보면서 부럽다고 말하던 사람들이었다. 처자식이 있어서, 집 대출이 있어서 지금의 회사에 꽁꽁 묶여있는 자신과 달리 처자식도, 대출도 없는 사원, 대리를 보면서 마치 로또 당첨되면 돈을 어디다 쓸 것인지 고민하는 것처럼 과거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대출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 소유의 집이 있는 분들이라 행복해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과장님과 차장님으로부터 나중에 집을 사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열심히 돈을 모으면 나중에 집도 사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행복은 오늘을 담보로 적금을 든다고 해서, 미래에 이자까지 붙여서 큰 행복을 주지 않는다. 행복은 지금 즉시 소비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나중에 거기서도 행복한 것이다.


 퇴사 후 늘린 좋아하는 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카페 가서 글을 쓰고, 모임에 가서 토론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들은 지극히 사소한 것 투성이다. 그렇지만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았기에 주변 친구들과 전 회사 동료는 변화한 내 표정을 알아차렸다. 행복을 오롯이 누리고 있는 그 표정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만 두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그들이 답하는 것들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대부분 사소한 일이다. 시간 제약 없이 은행 업무도 보고 싶고, 평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싶고, 남들 출근할 때 극장에 가서 조조영화도 보고, 비수기 때 값싼 항공권 끊어서 여행 가고 싶은 것까지 회사에서 시간이 묶여하지 못했던 일이다. 회사를 다닐 때 '휴가'를 써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일이지만, '휴가'는 지금보다 미래의 내가 누려야 하는 기회라 생각한 나머지, 사소한 일에 쓸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행복하다고 해서, 미래에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에 행복하지 않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이 근사해지기 위해 미래의 행복을 지금으로 데려오자.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






스마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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