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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Oct 02. 2018

개발자의 삶

컴퓨터를 잘 다루는 편이다.

 군대에서 헬기정비병으로 발령받았으나, 자대 배치를 받고 정비중대 소대장(준위)과 면담 후, 행정병으로 주특기가 세탁되었다. 소대장이 나를 보고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컴퓨터를 잘할 줄 아느냐였다. 그렇다고 했다. 소대장은 본인의 예측이 맞았다는 듯이 내 대답을 듣고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정비고가 아닌 행정실로 출근했다. 사수는 마우스를 거의 쓰지 않고 키보드로 문서 편집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연신 '우와 우와' 외쳤다. 1년 뒤에 나도 그렇게 되었다.


 행정병으로 근무했던 22개월은 전역 후에도 큰 자산이 되었다. 복학 후 과 실습실 근로로 일하고 있었는데, 조교 형이 갑자기 나를 과 사무실로 호출했다. 강의실 컴퓨터에 그림판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것이다. 윈도우 버튼을 누르고 [시작]→[모든 프로그램]→[보조 프로그램]으로 이동했다. 조교 형 말대로 그림판이 없었다. 옆에 있던 조교 형의 얼굴에서 '거봐, 내 말 맞지'라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때 윈도우+R키를 눌러 실행 창을 띄워 'mspaint'(그림판 실행 명령어)를 입력해서 그림판을 실행했다. 그리고 실행된 그림판의 속성에서 파일 위치를 찾아 프로그램을 복사한 후에 원래 있어야 할 [보조 프로그램]에 넣었다. 컴퓨터를 잘 모르는 조교 형은 방금 뭐 한 거냐. 없던 그림판 프로그램이 갑자기 어떻게 생긴 건지 설명해달라고 했다. 평소 외우고 있던 실행 명령어를 이용해서 실행하고 그림판 파일을 복사해서 옮겼다고 말씀드렸다. 그런 것도 외우고 다니냐며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한글 타자가 빠른 사람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영문 타자로 넘어가면 인원이 확 줄어든다. 타이핑하다 보면 종종 영어로 설정된 상황에서 한글을 입력할 때가 있다. 나는 쓸데없이 그런 '실수'를 기막히게 해석했다. 가끔 게임이나 메신저에서 대화하다가 상대방이 한글이 안 써진다고 쓴 영어를 곧잘 알아듣고 답변을 하면 또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컴퓨터를 다루는 직업은 어찌 보면 나에게 천직이었다. 그래서 정보통신과로 진학했고, 과 커리큘럼도 곧잘 따라갔다. 운영체제나 전자계산기 구조 같은 전공과목도 굉장히 재밌게 들었고, 그 결과 직업도 SW 개발자가 됐다. 정보통신과를 졸업한 친구들이 모두 개발자가 된 건 아니다. 적성이 맞지 않았던 친구들은 전혀 관련 없는 직무로 취업했다. 그런 의미에서 적성에 잘 맞았던 나는 큰 행운이었다.


개발자의 일

 처음에 개발자의 삶은 즐거웠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개발자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이 직업으로는 크게 성공하기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자로서 내 능력의 한계와 *같이 일하는 상사가 인생에서 포기한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개발 업무는 다른 직무보다 능력의 편차가 상당히 컸다. 개발자 A씨가 밤새 디버깅하면서 못 찾은 버그를 다음 날 출근한 개발자 B가 찾는 케이스도 부지기수다. 물론 개발자 A씨도 일찍 퇴근하고 다음 날 출근하면 그 버그를 찾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디버깅하는 상황은 프로젝트 기한이 매우 촉박하거나, 프로그램이 이미 배포된 상황에서 고객사에게 버그를 발견하고 급하게 고쳐달라고 요구하면 담당 개발자는 퇴근을 못 한다.


* 같이 일하는 상사의 모습은 미래의 내 모습이다.


 개발자라는 직업은 좋아했지만, 개발자의 업무 환경은 싫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 개발 팀의 정규 퇴근 시간이 '저녁 8시 30분'이었다. 1년 뒤에 '저녁 7시'로 변경되었지만 그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새벽에 퇴근해도 다음 날 9시까지 출근해야 하고, 일찍 퇴근하기 위해 업무시간에 집중해서 열심히 일해도 갑자기 일이 생기면 야근했다. 나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많아지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개발 업무를 할 때 개발자가 원하는 대로 코딩을 하기 때문에 업무에 대한 주도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어 개발자라는 직업을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업무 환경은 달랐다. 예정에 없던 회의가 하루에도 수차례 생기고, 역시 예정에 없던 야근이 생기고, 예정에 없던 다음날 출장이 생겨서 남들 퇴근하는 시간에 출장 준비를 해야 했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회사 밖에서 주도권이 있는 일을 늘려야 했다. 그래서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활용해서 잘하고, 좋아하는 취미를 늘리고 또 늘렸다. 바인더 모임을 운영하고, 잘 다루는 생산성 도구에 대해 코칭을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회사에서 맡은 개발 업무는 당장 내일도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들은 한 달 뒤까지 계획을 짜면서 내 일정을 꽉꽉 채웠다. 문제는 미리 계획한 일정에 예정에 없던 회사 업무가 끼어드는 경우였다. 토요일에 모임, 코칭, 약속 등이 예정되어 있는데 갑자기 금요일 밤에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요청이 들어온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일요일에 출근해서 처리하겠다는 대안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주말 출근은 당연히 나쁘다. 하지만 정말 바쁜 상황이라면 그 정도는 이해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들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개선은커녕 회사(임원과 팀장)에서는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직원(개발자)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 뭐하고 싶은데

앞으로 뭐하고 싶은데?


 개발은 좋아했지만 개발자의 삶은 나에게 맞지 않아서 2년 6개월 만에 그만뒀다.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 스스로에게 앞으로 뭐하고 싶은지 물었다. 가보지 못한 나라로 여행도 가고 싶고, 브런치에 글도 더 쓰고 싶고, CGV 용산, CGV 압구정, 메가박스 코엑스 등에서 다양한 영화도 보고 싶고, 지금 하고 있는 취미도 더 늘리고 싶고, 책도 많이 읽고 싶다고 스스로 물었던 질문에 답했다. 그래, 그럼 하자. 대신 후회는 하지 말자.


 지금은 내가 답했던 것들을 앞으로 다시는 못 즐길 것처럼 원 없이 즐기고 있다. 직장 다닐 때 1년에 1번 정도 해외여행을 다녔던 나는 올해만 벌써 기타큐슈, 블라디보스토크,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오고 11월에는 요나고, 시즈오카도 계획되어 있다. 지금 글을 쓰는 브런치에도 독자들의 브런치 앱에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리도록 글을 쓰고, 7월에는 극장에서 약 30편의 영화를 관람했다. 그리고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BIFAN)와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SEISFF)에 다녀왔고, 다음 주에는 부산국제영화제(BIFF)에도 다녀올 예정이다. 이 삶이 영원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개발자가 되더라도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작가들의 문체를 닮고 싶어 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안목을 가지고 싶어했는지.
내가 가질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내 마음에 꼭 들었는지.
수많은 실패 끝에, 나는 오늘도 나밖에 되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하게.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책 <하루의 취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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