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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an 08. 2019

스물아홉 퇴사, 서른의 삶

스물아홉에 퇴사했다. 그리고 서른이 되었다. 그동안 퇴사 일기는 차곡차곡 쌓였고, 내 삶은 이전과는 다른 것들로 채워졌다. 퇴사를 망설이는 사람이 '퇴사 이후의 삶은 어때?'라고 묻는다면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럭저럭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럭저럭인 삶을 살았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다.


의지가 약할 뿐 게으르지 않았다.

직장을 다닐 때는 아무리 게을러도 회사라는 '게으름 브레이크'가 있었다. 월요일이 되면 내 게으름과 상관없이 출근해야 했고, 일은 늘 넘쳤다. 퇴사를 앞두고 생각했다. 게으름 브레이크가 없는 이후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걱정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퇴사 이후의 삶이 펼쳐졌다. 여행을 다녔고 늦잠을 즐겼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이전보다 더 편한 시간을 보내면서 게을러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이 되어 스물아홉 퇴사 이후의 삶을 돌이켜 보면 게으른 순간은 있었어도 게으른 삶이 되지 않았다. 다만 의지가 약했을 뿐이다.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집에 있어서 게을렀던 것이지. 벗어나면 뭐라도 하기 위해 노력했다.


환경의 희생자가 되기보다는 당신의 환경을 창조하는 힘을 얻거나, 적어도 당신에게 펼쳐지는 인생에 직면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할 힘을 획득하라. 당신의 인생에서 어떠한 상황이 일어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상황에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느냐가 핵심이다. 당신이 취하는 마음가짐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책 <습관 혁명>, 마크 레클라우


환경을 창조하니 게으르지 않았다. 게으를 수밖에 없는 환경에 갇혀 희생자가 되어 투덜거리기보다, 스스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약한 의지로 만든 촛불은 늘 게으름에 휘청거렸지만 창조된 환경 덕분에 계속 불을 밝힐 수 있었다.


8시 기상이 제일 좋다.

퇴사 후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늦잠이다. 그러나 매일 늦게까지 잘 수는 없었다. 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일어나야 했다. 7시에도 일어나 보고 9시에도 일어나 봤지만 잘 맞았던 것은 8시였다. 잠을 깨면 겨울의 추운 공기에 이불 속에서 조금 뒹굴거리다가 씻고 출근 전쟁이 벗어난 시간대의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일터에 도착하면 10시에서 10시 30분이 되고 그 시간이 하루 중 텐션이 가장 좋다. 그때 글을 쓴다. 올해는 7시 기상이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당분간은 8시에 일어나고 지금의 삶을 유지한다. 조금 더 욕심이 생길 때 그때 시간을 당기면 된다. 


계속 쓰다 보니 늘고 있다.

자기 검열은 원래 거의 없었다. 그게 글을 쓸 때 큰 장점이었다. 그래서 어떤 주제든 일단 쓸 수 있었다. 내가 잘 쓰는 글은 잘 쓰니까 써야 하고, 못 쓰는 글은 써야 느니까 썼다. 그 결과 내 브런치를 구독하는 분들의 핸드폰을 끊임없이 울리게 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많은 글감이 어디서 나오냐고 궁금해했지만, 글을 왜 이렇게 많이 쓰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알람이 울릴 때 구독을 끊는 분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구독자는 늘었고 글쓰기도 늘었다. 많이 쓴다고 해서 글이 늘면,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많이 쓴다. 그렇지 않기에 쓰기는 늘 어렵다. 연초에 세운 글쓰기의 정량적 목표*를 지킨다고 잘 쓰게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추상적인 목표만큼이나 글이 느는 모습도 발견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전파하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처음에 두려워했다. 그러나 마음을 열었고 본인의 이야기를 썼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기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남들이랑 같이 하려고 하는 거 보면 앞으로 실력이 수밖에 없겠다"


*어떤 대상의 분량을 측정하여 정하는 것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모임 식구들과 개인 출판을 목적으로 다 같이 책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중 절반 정도는 글쓰기 소모임에서 2주에 한 번씩 글을 쓰고 있다. 지난달에 시즌2가 끝났다. 3월부터 시즌3이 시작된다. 취향에 관련된 글쓰기 모임도 판교와 얼리브에서 곧 시작할 예정이다. 촛불이 올곧으면 타인의 흔들리는 촛불에 온기를 전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 몰입하다 보니 그동안은 개발은 뒷전이었다. 브런치에서 개발에 관련된 콘텐츠를 연재하는 분의 글을 보고 다시 개발이 하고 싶어 졌다. 개발자의 삶을 그만둔 지 꽤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현직 개발자인 친구의 힘을 빌려 함께 스터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는 습관 프로젝트가 있다. 올해는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주선해보려고 기획하고 있다.  


책을 썼고, 인터뷰도 했다.

전자책을 하나 썼다. "팔리는 것보다 쓰는데 의의를 두자"라고 생각하면서 썼지만, 막상 출간되니 리디북스를 기웃거리고 있다. "과연 팔릴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격려하고 응원해주셨다. 벌써 다음 책도 기획하고 있다. 


인터뷰도 했다. 가장 먼저 유튜브에 게시될 인터뷰 영상을 찍었다. 마일스톤에서 먼저 제안을 주셨다. 전히 영상에 나서는 게 부끄러워서 고민했지만, 종종 만나는 마일스톤 대표가 유튜브 채널을 오픈하면 첫 번째 인터뷰이로 모시겠다는 약속을 가지고 왔다. 영상을 찍을 때는 어색함이 가득했는데, 게시된 영상을 확인하니 담당자가 잘 편집해준 덕분에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다. (영상블로그)


두 번째는 얼리브 멤버 인터뷰였다. 커뮤니티 성격의 티타임을 마치고 며칠 뒤 인터뷰를 제안해주셔서 얼리브 직원 세 분과 수다 떨듯이 두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내 삶을 소개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직장인으로서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스물아홉에 퇴사하고 서른의 삶이 펼쳐졌다. 직장인으로서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좋은 일자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바로 도전할 것이다. 





개발자의 삶이 싫어서 개발을 멀리하던 제가 다시 개발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니 예전의 감정이 많이 사그라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제야 퇴사 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겠네요. 스물아홉에 쓰는 퇴사 일기는 이번 글로 종료됩니다. 그동안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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