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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Dec 13. 2018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

※ 책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에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개발자 2년 차가 되고 나서 퇴사를 고민했다. 다음 갈 곳을 정하고 나가면 '이직'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퇴사'가 된다. 성격상 바로 퇴사하는 성격은 아니기에 다방면으로왜 그만두고 싶은지에 대한 마음을 헤아리도록 노력했다. 왜 나가고 싶은가. 하고 싶은 게 있는가. 잘할 수 있는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는가. 스스로 겨누는 질문은 계속 업데이트되었고 퇴사하지 못할 이유들만 늘어났다. 동료들은 퇴사 후  살아남을 가능성과는 별도로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부러움을 토로했다.



돈을 벌면 벌수록 달라지는 것은 통장 잔고만이 아니다. 생활 방식 자체가 점점 돈이 더 드는 방향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대신 택시를 타게 되고, 더 크고 좋은 차를 몰게 되며, 집을 늘리고 그에 따라 관리비도 늘어나고, 옷도 조금씩 더 값나가는 브랜드를 걸치게 되며, 약간 더 좋은 헬스클럽에 다니게 되고, 일상적인 점심에 치르는 무감각한 가격의 상한선이 1만 원쯤에서 2만 원 정도로 올라간다. 모든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변해가고 그 모든 것이 더해져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최소액’은 점점 커져간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직장을 다니면서 씀씀이는 시나브로 늘었다. 그토록 사고 싶어 했던 서피스를 구입했고 최신 전자제품은 항상 내 손에 쥐고 있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잦은 술자리와 건강을 관리한답시고 결제한 헬스 연간권까지 소비는 마음이 가는 쪽에 항상 닿았다.(그나마 다행인 건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았다.)퇴사 후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최소액'을 줄이는 일이었다. 직장인이 스트레스 해소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욕망에 따라 돈을 쓰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욕망에 충실했다. 그래서 자신 없었다.


돈을 적게 쓰는 삶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욕구를 무작정 줄여야 한다면 그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나는 인간 욕구의 총량을 줄일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욕구를 다른 욕구로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욕구를 대체하려면 삶의 다른 배치로 들어가야 한다.


 퇴사 후에는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없기에 생활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참으로 무섭다. 편의점에서 매일 몇 천 원씩 구입했을 뿐인데 다음 달 카드 명세서는 수십만 원으로 보답했다. '이건 말도 안 돼'라는 생각에 명세서를 살펴보면 카드사는 세부내역으로 '이거 다 네가 쓴 거야'라고 반박한다. 멜론,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등 정기권을 하나둘 구입하다 보면 같은 꼴을 면치 못한다. 할부 같은 놈들.


퇴사 전에는 스트레스 받을 때면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즐겼다. 그때는 '돈'은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기에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평일 저녁 퇴근 후 극장에 가서 두 시간짜리 영화 보는 것도 아까웠다. 지금은 그때 받았던 스트레스 총량이 줄었다. 덕분에 시발비용도 자연스레 줄었다. (돌이켜보니 그떄 시발비용이 꽤 높았더라)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오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없다고 고민하기 전에 자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겐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차근차근 연습해나가야 한다. 내 안의 욕망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 욕망들의 우선순위를 이해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자신만의 우선순위에 따라 스스로 ‘나의 일’을 정의하는 데서부터 우리는 조금씩 내 일의 주인 자리에 가까워진다.


욕망은 지금부터 미래를 따라가면 오해하기 십상이다. 과거부터 지금을 봐야한다. 서점에 갔는데 2019년 다이어리와 가계부가 즐비해있다. 디자인도 예쁘고, 쓰고 싶은 욕망도 가득하다. 아무래도 구입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렇지만 2018년 9월부터 지금까지 안 쓴 사람이 지금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구입한들 제대로 쓸 리가 없다. 2월까지는 잘 쓰겠지만 설 연휴가 지나면 '다이어리', '가계부'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잊힌 존재가 된다.    


머리로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도 일상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 때문에 달달한 그린티라떼를 즐겨마실 수도 있다. 머리는 미래의 건강 때문에 아메리카노를 생각하지만 몸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달달한 음료를 원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중 일부는 때론 거짓이다. 그렇게 되길 바라는 생각에서 좋아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럴 땐 고민할 필요 없이 최근 마신 10잔의 음료 중 아메리카노가 많은지, 그린티라떼가 많은지 살펴보면 된다. 우리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스스로 거짓말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쓸데없이 피곤하게 산다”고 하시곤 했다. 사실 마지막 직장은 그만두기 전 2~3년 동안 대체로 여유가 있었다. 아마 그런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지 모른다. 회사 일이 바쁘지 않으니, 다른 일로 나를 바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삶의 가능성이 보였고 욕망이 움직여버렸다. 그러자 더 이상은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직장을 다닌 지 4개월 만에 모임을 개설했다. 개발자의 경력은 2년 6개월에서 멈췄지만 모임은 3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취미의 경력이 업의 경력을 뛰어넘은 셈이다. SW 개발자의 삶은 여유가 없었다. 책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 제현주는 여유가 주어진 덕분에 다른 일을 바쁘게 만들었다고 했지만 나는 반대였다. 여유가 없었기에 퇴근 후 시간을 쪼개어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여유를 만들었다. 제현주 작가와 과정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해서 글을 쓰고 모임의 콘텐츠를 늘려가고, 다양한 업무 외 활동을 하니 다른 삶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먹고 살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 시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수준으로 도달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도 있었지만 그땐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쓸데없는 일’, 잉여짓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돈과 시장을 경유하지 않고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쓸데없는 일이 늘 재미있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그 쓸데없는 일도 역시 우리에게 좌절을 안기기도 하고 피로함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규정한 일에서만 우리는 그러한 좌절과 피로를 즐거움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하는 자-됨’의 윤리란 그런 것이 아닐까.     


사회에서 쓸모 있다고 판단한 일은 한정적이다. 모두 그 일을 쟁취해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밤낮을 공부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안정적인 삶을 원해 공무원을 준비한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덕업일치를 했다면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여행작가가 되었겠지만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가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쓸모있는 일'에서 쓸모는 대부분 돈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항상 물음표가 뒤따라다닌다. 스스로 규정한 일은 힘들거나 재미 없더라도 묵묵히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남이 규정한 일은 힘들거나 재미 없으면 스스로 규정한 일보다 더 큰 시발비용을 치루며 그 순간이 지나가도록 참고 견뎌야 한다. 아무런 보상도 없는 구글맵 지역가이드가 되어 방문한 곳의 리뷰를 남기고, 위키에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정정하는 모든 것들이 (돈의 관점에서) 쓸모 없지만 (재미의 관점에서) 쓸모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런 쓸모 없는 건 왜 해?'라고 묻는 사람은 돈의 관점에 갇혀 아직 재미의 관점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없이 스펙에 맞추어 그럭저럭 조건 좋은 직장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얼마 가지 않아 허무감에 빠지게 된다. 그 지점을 향해 다른 모든 욕망은 미뤄두도록 강요받았는데, 그렇게 도달한 지점은 꽃길도 잔치마당도 아니다.


제현주 작가가 말했듯이 인간이 가지는 욕망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뤄두도록 강요받은 욕망은 언젠가 반드시 발현되기 마련이다. 지금 본인이 하는 일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면 이 글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를 즐기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퇴사 후 9개월이 지났다. 밖으로 나와보니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더 크게보인다.


“난 왜 일에 의미를 부여했을까. 일일 뿐인데.”


직장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웹툰 《미생》에 등장했던 대사다. 늘 붉게 충혈된 눈과 피로에 찌든 모습. 그러나 그만큼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일에 열정을 다하던 오차장이 이 대사를 내뱉었을 때 숱한 직장인의 가슴이 저릿했을 것이다. 이 대사는 실제로 SNS에서 숱하게 회자되기도 했다. 나 역시 이 대사 앞에서 큰 숨을 들이쉬어야 했다. 길을 잃었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때마다,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마다 나 자신에게 되뇌었던 말이 이거였으니까. “일일 뿐이다. 그냥 하자."


퇴근 후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별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사이드 허슬(Side Hustle)이라고 한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업무는 그냥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고, 퇴근 후 하는 일은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수단이 된다. 사이드 허슬러는 현재 다니는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퇴근 시간이 빨라서 사이드 허슬이 가능한 측면도 있겠지만 그런 환경이 주어져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업무를 하면서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퇴근 후 사이드 허슬의 발판이 되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을 받아들이는 자세부터 다르다. 아쉽게도 첫번째 회사에서 나의 선택은 전자였다. 그래서 퇴사했다. 만약 다음 일을 구하게 된다면 '사이드 허슬러'가 되고자 발버둥 치고 있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 인생은 계속 발을 헛디디는 과정의 연속일테니.



책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는 제현주 작가님이 쓴 책 <일상기술연구소> 이후로 읽은 두번째 책이다. 책 <일상기술연구소> 덕분에 퇴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지금 시점에서 책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는 앞으로 업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데 힌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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