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실.."
불과 알게 된 지 몇 달 되지 않은 사람 앞에서 비밀 같은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낸다. 몇 년을 알고 지낸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말이다. 독서모임이란 그런 것이다. 책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함께 읽은 책을 계기로 말할 수 없었던 속내를 드러내는 것. 독후감이나 서평까지 써야 하는 모임이라면 글로 한 번, 만나서 말로 다시 한번 털어놓는다.
책 <굿 라이프>에 따르면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비극은 설명되지 않는 비극이다.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비극으로 인한 슬픔은 오래간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정답을 찾지 못해 끙끙 앓고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대부분 문제에는 답이 제시되어 있다. 다만 나 혼자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앓을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이유는 이성복 시인이 말했듯이 이야기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내 이야기를 들어준 상대방이 해결책을 제공해서가 아니라, 내가 용기를 내어 그 이야기를 꺼내놓은 덕분이다. 결국 고통을 덜게 된 것도 이야기를 들어준 상대의 몫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하게 된 내 몫이 더 크다. 복잡하기만 했던 생각을 말로써 글로써 털어놓고 그 생각이 하나씩 정리될 때 그때부터 비극은 비로소 설명이 되면서 나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 수밖에 없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어쩌다 한 번 독서모임을 이끄는 건 쉬울 수도 있지만, 정기적으로 꾸준히 모이는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다. 멤버를 모집하는 일부터, 멤버들이 모임에 참석하고 책을 읽어오고 과제를 해오는 모든 과정에 관여해야 하고, 그 사이에 모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까지 온전히 모임장이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모임장들은 본인의 희생을 감수하며 좋은 취지로 시작했던 모임을 조금씩 손에 놓게 된다.
4년 넘게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멤버들이 (모임이 별로라는 이유로) 중도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참여할 수 있었던 노하우를 하나 말해보자면 모임장은 참여한 멤버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돕는 역할이다. 어떤 한 멤버의 말이 너무 많다면 말이 너무 많다며 모임장의 권한으로 툭 끊을게 아니라 그 멤버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적당한 타이밍에 질문을 던지며 대화의 주도권을 내게 가져와야 한다. 그러면 말했던 사람도 기분 나쁘지 않게 대화를 끊으며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끼어들지 못해서 계속 듣기만 했던 멤버에게 발언권을 자연스레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모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말하는 사람도 될 수 있고, 듣는 사람이 될 때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은 더 즐거울 수밖에 없다.
모임에 뛰어난 멤버(또는 모임장)가 있어 그 멤버가 어쩌다 한 번 특강을 하는 건 모임에 유익함을 불어넣어주겠지만, 그게 지속돼서 듣기만 하는 독서모임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한 멤버가 말할 때, 유독 다른 멤버들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딴짓하는 일이 많다면 그건 그 멤버의 말이 지루하다는 뜻이다. 그럴 때 스마트폰을 본다고 뭐라 하기 전에 지금 말하고 있는 멤버가 다른 멤버가 이야기할 때 경청하고 있는 자세가 갖춰져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신뢰를 잃어 그 사람이 말할 때만 듣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져 딴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경청하는 사람이라면 그때는 딴짓하는 사람을 꾸짖어야 한다)
인생에는 우리 자신의 행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많다. 그중 으뜸은 타인의 행복이다. 타인의 행복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품격 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더 나아가 삶을 향한 우리의 태도와 자세, 그리고 가정(假定)도 점검해봐야 한다. 비록 그런 자기 성찰의 노력이 우리를 곧바로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삶에 품격은 더해줄 것이다.
― 책 <굿 라이프>, 최인철
내 삶에 품격을 더하려면 자신의 행복 못지않게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독서모임에서 내 말만 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은 타인의 행복도 중시하는 사람이다.
지난 4월부터 씽큐베이션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7월부터는 이나라 부그룹장과 <집중의 감각을 선물하는 시간>을 운영하며, 우리가 모임을 이끌어가는 동안 선택할 것과 집중할 것을 확실히 정하고 시작했다. 서로 독서모임 외에도 하고 있는 것이 많아 별다른 활동을 무분별하게 늘리기보다 우리는 '독서모임'이라는 본질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1기 때 김주현 팀장님의 그룹에 그룹원으로 참여하면서 오프라인 모임은 즐거웠지만 온라인은 활성화되지 않은 점을 교훈 삼아 온라인 토론에 신경을 많이 썼다. 매주 1권의 책을 읽고 1개의 서평을 쓰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댓글까지 남기는 일은 참 번거롭다. 거기에다 온라인 토론 때는 서로의 생각을 계속 주고받는다. 번거롭다는 이유로 안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남기게 될 때 그 댓글을 받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다.
책 <평소의 발견>을 시작으로 이틀 뒤에 책 <굿 라이프>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지난 3개월 동안 11명이 함께 했던 씽큐베이션 3기 활동은 마무리된다. 다양한 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4기 때 함께 책 읽고 싶다는 의견을 많이 전달해주셨지만, 내년에는 글이나 말이 아닌 행동으로써 내 영향력을 좀 더 발휘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 내가 지난 7월부터 이끌었던 <집중의 감각을 선물하는 시간> 그룹 활동도 여기서 멈춘다. 2019년에도 그랬듯이, 2020년에도 모두 굿 라이프!
굿 라이프란 좋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다. 좋은 일이란 높은 연봉, 좋은 복지, 승진의 기회 등이 보장된 직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좋은 일이란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주는 일이다. 자신의 일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는 삶, 즉 소명이 이끄는 삶이 굿 라이프다.
― 책 <굿 라이프>, 최인철
참고 도서
책 <굿 라이프>, 최인철
<집중의 감각을 선물하는 시간> 멤버들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서평을 남겼는지 궁금하다면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