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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an 18. 2020

몇 살쯤 돼야 서른이 될 수 있을까

대학생 때였다. 발표가 있는 날이면 나보다 먼저 발표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순서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더 요동쳤고, 누구에게 들킬세라 얼굴은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분명 떨고 있었다. 그때 내가 남의 발표를 제대로 듣지 않고 온전히 '내 발표'에만 신경 썼던 것처럼, 다른 사람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내 발표에 관심 없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까?


졸업을 하고 모임을 만들면서 발표할 기회가 늘기 시작했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면 웬만해서는 하지 않으려고 했거나, 누군가가 시켜야만 어쩌다 했겠지만 내가 판을 짠 모임이었다. 처음에는 대학생 때처럼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보다 나에게 집중했고 사람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더라도 시야가 좁았던 나는 내면의 소음에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론을 냈다. 이번에도 망했다고. 잠을 줄여가면서 오랜 시간을 준비한 중요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가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나를 괴롭혔다.


When life gives you lemon, make lemonade


서른이 넘은 지금은 다행히 발표할 때 여유가 조금 생겼다. 그렇다고 이미 타고난 사람들을 넘을 수 없지만 내면의 소음에만 집중해서 망했다고 선뜻 결론 내지 않는다. 이제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도 보일 정도로 시야가 넓어졌고 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농담과 질문을 던져가면서 발표 중에도 여유를 부린다. (물론 여전히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초반에는 떨린다.)


모임 초반에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워, 도망쳤다면 모임을 없애는 방법밖에 없었다. 가끔 대신해서 발표해주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발표를 맡은 모임원이 개인적인 이유로 불참을 통보한다면 온전히 내 몫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그 사람이 미웠고 갑자기 준비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쌓이니 이제는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멘탈이 제법 단단해졌다.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주거든 그것을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라. 

책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72p


열다섯에 바라본 서른은 어른이었다. 그것도 한참 큰 어른. 작년에 썼던 글 <나는 내가 서른이 될 줄 몰랐어>에서 말한 것처럼 서른에 내가 도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바라본 서른이라면 적어도 감정도 컨트롤할 줄 알며, 삶 자체가 안정적일 거라 생각했다. 물론 어렸을 때에 비해 감정 기복은 줄었고,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부분이 생겼지만 그때 생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아주 조금 더 나아졌을 뿐이다. 


몇 달 전에 독서모임을 하다가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


"퇴근하고 감정을 바로 분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요. 저는 회사에서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퇴근 후에도 그 감정이 그대로 넘어와서 제 삶을 방해하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남들 앞에서 발표할 때 두려운 감정이 나를 지배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그 느낌을 쉽게 끊지 못한다. 끊고 싶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오히려 그때의 안 좋은 감정이 더 강하게 다가올 뿐이다. 꽤 오래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 그분에게 어쩌다 "스무 살로 돌아가고 싶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이런 답변을 했었다.


"아니요. 돌아가기 싫어요. 그때는 감정 기복이 더 심했거든요. 그나마 지금이 많이 나아진 거예요."


어렸을 때 생각한 서른에는 한참 못 미칠지라도, 서른이 된 우리는 그때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나 자신을 속이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


<스물 중반까지 살아보니>는 故 장영희 교수님의 책에서 <내가 살아보니>라는 글을 읽고 감명을 받은 스물다섯의 내가 티스토리에 썼던 글이다. 6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이 시시하게 느껴야, 지금 성장했다고 느낄 텐데, 서른 하나가 된 내가 여전히 저 15개의 문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아직 한참 멀었나 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때에 비해 덜 조급해졌다고 할까. 그건 그렇고 몇 살쯤 돼야 예전에 바라본 서른이 될 수 있을까. 서른 하나가 된 지금도 잘 모르겠다.


자신에게 비어있는 시간을 선물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더는 시간에 쫓기거나 쫓아가지 마라. 마음을 내려놓을 모퉁이를 찾아 숨을 돌릴 시간을 주는 것이야 말로 자신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이다. 

책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22p



   


참고 도서

책 <서른이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아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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