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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May 04. 2021

허탈함이 무서워 기록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뭐했지?'


이 송곳 같은 질문이 내 삶에 들어오는 순간 잔잔한 일상은 더 이상 평화롭지 못하다. 원래 인생이란 스스로 내린 질문에 정답을 찾아가면서 꾸역꾸역 살아간다고 하지만, 이렇게 쉽게 정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과 마주할 때면 그동안 높이 쌓아 올린 일상은 와장창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만다.


이때 찾아오는 허탈함은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게 만든다. 어쩌면 이 허탈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불안에 떨고 있으리라. 


연말이 되면 반드시 찾아오는 '올해 뭐했지?'라는 질문 앞에 허탈함을 느꼈고 늘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허탈함이 무서워 기록을 시작했다. 


'이렇게 적어두면 나중에 다시 찾아볼까?
'오히려 기록하니까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여전히 기록하는 의미를 모르겠는데 계속 해야할까?'
'다른 사람이 하는 거 좋아보여서 시작했는데 나한테도 좋을까?'


수많은 소음이 내면을 잠식할 때마다 기록은 멈췄다. 그때마다 다시 허탈함을 느꼈고 또 기록했다. 이 과정을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야 1년 넘는 시간동안 기록할 수 있었고 처음 기록의 효용을 맛보았다. 그때부터 기록을 계속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내면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기록은 어떤 기억을 잊어버렸을 때 다시 찾아주는 쓸모도 있었지만 그보다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찾아오는 이유 없는 질문을 막아주는 버팀목의 역할이 더 컸다. 


기록을 시작했다고 해서 연말에 허탈함이 가신 건 아니다. 여전히 매년 또는 그보다는 짧은 주기마다 허탈함은 몰려온다. 과거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지금은 기록의 힘 덕분에 버틴다. 내가 지나온 대부분의 시간이 게으르고 나태했을 지라도 모든 시간이 그렇지 않았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그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 


지금은 이미 해결된 문제가 과거 어느 시점에는 그 문제로 끙끙 앓고 있었고 기록을 통해 나는 지금 그 문제를 뛰어넘었음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지금 안고 있는 또 다른 고민 또한 영원하지 않음을 느끼고 조금은 안심한다. 


'계속 글을 써야할까? 꾸준히 써야할 이유가 뭐지?'
'지금 하고 있는 거 계속 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무언가를 지속하고 있다면 한 번쯤 왜 계속 해야하는지에 대한 다른 질문이 다시 찾아온다.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너무나 선명하고 해야 할 이유는 흐릿하다. 그나마 의지가 있을 때는 흐릿한 이유에 힘을 실어주지만 그마저도 희미해지면 계속 해야 할 동력을 얻기 쉽지 않다. 그때 힘을 실어주는 건 온전히 내 몫이다.


어딘가에 있는지도 모를 정답을 찾아나서는 대신 때론 자신만의 이유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희미한 것도 계속 누적이 되면 선명해진다.


지금은 희미할지라도 곧 또 다시 찾아올 질문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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