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백 권이 조금 안되는 책을 읽으면서 많이 읽는 비결이 하나 있다면 대충 읽는 것이다. 대충이란 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 찍듯이 읽는다고 해야할까.
단어를 꼭꼭 씹으면서 읽었던 적도 있었지만 책을 덮으면 머릿 속에 남는 게 없었다. 그리고 재미 없는 책이라도 끝까지 읽어야하는 강박이 있어 중간에 덮지 못했 빨리 읽는 건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당연히 지금도 빨리 읽으니 남는 게 없다. 그래서 다른 습관을 만들었다. 꽤 괜찮다고 판단되는 책들은 다시 읽었고, 그 중에서 어떤 책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설명하기 바빴다. 한 발 더 나아가 몇몇 책들은 만년필을 쥐고 독서노트를 썼고, 브런치에 서평을 남기기도 했다.
읽는데 그치지 않고 말하고 쓰고 남기는 책들은 내 것이 될 확률이 높았다. 나도 모르게 즐겁게 말하다가 그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이 ‘책을 읽어도 내용이 하나도 안 남던데, 방금 말한 문장은 어떤 방법으로 외우시는 거예요?’라는 말을 들을 때 남기는 독서의 효과를 직감했다.
한 번 제대로 읽기보다 대충 읽고 괜찮다고 판단될 때 다시 읽는 독서법은 꽤 괜찮다. 무엇보다 제목은 그럴싸한데 막상 읽어보면 별로인 책들을 많이 걸러준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주변 사람 중 하나는 모든 책을 정독해야하는 습관이 있어 마음에 들지 않은 책이 있을 때 괴로워한다.
독서법에 진리 같은 정답은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해답 정도는 있다. 그 해답은 다른 사람의 독서법을 참고할 수는 있어도 결국 본인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책들을 대충 읽으면서 좋은 책은 다시 읽고, 남들에게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방법을 찾은 것도 몇 년에 걸쳐 스스로 찾은 해답인 것이다. 이 방법이 지금은 유효하지만 사실 짧게는 몇 달 뒤, 길게는 몇 년 뒤에 통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다른 해답을 또 찾아나서면 된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독서법과 같은 쉬운 방법만 찾아나섰지만, 결국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찾아내는 어려운 방법을 습득할 때 실력은 올라간다.
아주 가끔 읽고 싶은 책이 없을 때 Workflowy에 기록한 독서 리스트에서 #BEST 태그를 검색한다. 그러면 그동안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 등장한다.
#BEST 태그가 붙은 책들은 다시 읽어도 재밌다. 첫번째는 내가 그 책에 대한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아무 책에나 #BEST 태그를 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GOOD은 누가 읽어도 좋아할만한 책이지만, #BEST에는 내 주관이 들어있다. 스스로에게 언제나 유효한 나만의 처방전인 셈이다.
무슨 책을 읽어야할지 모르겠다면, 혹은 요즘 읽는 책이 거기서 거기 같다면 지금까지 읽었던 책에서 자신만의 처방전을 만들어볼 것. 과거에 섭취했던 책은 또 다시 섭취해도 유익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