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만났던 추석은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쌀쌀했던 것 같은데, 올해 추석은 8월 말의 여름보다 더 무덥게 느껴진다.
그래도 출근길 아침 쌀쌀한 공기를 만날 때면 가을이 왔음을 직감하고, 퇴근길 횟집에서 새롭게 등장한 전어를 볼 때면 ‘전어 먹을 가을이 왔구나’라고 다시 한 번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아차린다.
계절이 바뀔 때면 내 몸은 누구보다 알레르기 때문에 크게 고생한다. 오죽하면 버킷 리스트에 적힌 소원 중 하나가 알레르기 검사하러 가기였을까. 동네에 있는 이비인후과가 아닌 큰 병원에서 하는 알레르기 종합 검사가 내 버킷 리스트중 하나였다.
4년 전이었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어가는 지금처럼 그때도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어느 날 버킷리스트에 적어둔 그 목표를 실행하기로 했다. 크게 아파본 적이 없어 종합병원에 가본 적이 드물었는데 다운된 기분 탓에 갑자기 반차를 내고 가기로 한 것이다. 어떤 진료를 받으러 왔냐는 간호사의 물음에 알레르기 검사를 하러 왔다고 답했다.
그 뒤로 이것저것 물어볼 줄 알았는데 나처럼 호기심에 검사하는 사람이 많아서였을까.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검사는 한두번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혈액검사, 2차 방문에는 운동 검사, 3차에는 피부반응 검사까지 이어졌다. 종합건강검진처럼 한 날에 몰아서 끝냈으면 좋았겠지만 세 번의 검사, 네 번의 방문까지 총 2달이 걸렸다.
‘앞으로 몇 번의 검사가 더 남았는데, 이미 처음 했던 혈액검사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게 나오네요.’
의사선생님의 답변이었다. 처음 했던 혈액 검사에서 이미 알레르기 종합병원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말을 듣자 내가 괜히 수 십만원을 낭비하러 이 곳에 온 건 아니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면 사람들은 그 계절만이 줄 수 있는 풍경을 기대한다. 예를 들면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해변, 가을에는 단풍이나 코스모스, 겨울에는 눈과 같은 것.
아쉽게도 나는 그런 풍경을 기대하는 마음보다 또 한 번 휘몰아치겠구나 하는 마음 속 시련이 먼저 찾아온다. 그리고 그 시련은 단 한 번도 조용하게 넘어간 적이 없었다.
3차 피부반응 검사에서는 등에 구역을 나눠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수 십개의 항원을 조금씩 떨어뜨려 그 크기를 재는 검사를 했었는데 동시다발적으로 반응이 일어나 무척 간지러웠다. 같은 시간에 알레르기 검사하러 온 아이들은 간지럽다는 이유로 크게 목놓아 울었다. 너무 간지러워서 나도 울고 싶었는데 달래줄 어른이 없었다. (흑)
등에 한 방울씩 떨어진 수 십개의 알레르기 유발 항원들이 존재감을 드러낼 때 ‘굳이 결과를 보지 않아도 조심해야할 게 많구나’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의사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절대 먹지 말아야 할 음식, 가급적 피할 음식, 그리고 웬만해선 가면 안 되는 곳 등을 일러주셨다. 알레르기는 진드기나 먼지 뿐만 아니라 풀, 나무 등도 유발하는 항원이 있기 때문에 공원이나 숲에 나들이를 가거나 캠핑을 갔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은 경우가 과거에 분명 있었을 수도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지 않아도 어렸을 때부터 소풍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내향적인 성격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레르기 영향도 있었던 것이다. 그 곳에 가면 웬만해서는 기분이 좋았어야 했는데, 나는 늘 기분이 좋지 못했으니까.
‘쌀이나 밀가루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데 먹지 말아야할까요?’
‘그럼 좋겠지만 지키기 쉽지 않을 거예요. 수치가 낮은 편이니 평소처럼 드세요. 대신 알레르기가 심하게 올라오면 약을 꼭 챙겨드세요.’
모든 검사를 마치고 간단한 질의응답 후 알레르기 수치가 적힌 결과지를 받아들고 점심으로 도넛을 먹으러 갔다. 밀가루를 먹으면 알레르기가 바로 올라오는지 실험하기 위해. 한 입 깨무니 몇 십 분 뒤 코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바로 반응이 나오니 실험하기 참 좋은 몸으로 태어났다.
전문 용어가 적혀있는 결과지를 살펴봤다. 조심해야할 게 수 십가지였다. 4년이 지난 지금 유발하는 녀석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지만 철저하게 멀리하며 살아가진 않는다. 대신 간지러울 때마다 약은 한 알씩 복용하고 있다.
알레르기 종합 검사를 받으며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반응이 있을 때 바로 약을 복용하는 것이었다. 검사를 받기 전만 해도 시중에 파는 알레르기 약값이 일반 약보다는 훨씬 비싼 축에 속해 간지러워도 참으면 곧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에 약을 먹지 않고 그냥 넘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기분은 더 좋지 못했다.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약을 먹는 게 답이었다.
여러 연구 검사에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1.5배 높다는 의견이 나온다. 계절이 바뀌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알레르기 때문에 이맘때쯤은 열심히 살아도 결과가 그만큼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애초부터 힘을 뺀 채로 잠영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바뀐 계절이 완전 자리 잡을 때 다시 두 팔을 벌려 열심히 헤엄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제대로 쉴 줄 모르는 나에게 어쩌면 알레르기가 찾아오는 순간이 휴식기다. 그러니 온 몸에 힘을 빼고 전어나 맛있게 먹으며 가을이라는 계절이 완전히 물들기 전까지 기다리자. 그때가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