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슬픈 사연도 말하고 나면 고통이 줄어들어요. 아무리 고된 노동이라도 노래에 실리면 힘든 줄을 몰라요. 리듬 때문이지요. 그건 일의 리듬이고 몸의 리듬이에요. 계단 잘 내려가다가도 ‘조심해야지’하면 걸음이 엉켜 비틀거려요. 몸하는 일에 머리가 개입해서 생기는 혼란이지요. 시 쓸 때도 머리보다 몸에 맡기도록 하세요.
- 책 <무한화서>, 이성복
글쓰기가 갑자기 어렵게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오면 이성복 시인을 떠올린다. 그가 쓴 대부분의 시들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책 <무한화서>를 자주 펼치곤 한다.
요즘에도 다시 펼쳤다. 누군가 ‘몇 번이나 읽었어?’라고 묻는다면 셀 수 없이 많이라고 답할 정도로 참고서처럼 열어보는 책이다. 최근에 꽂혔던 그의 텍스트는 리듬이었다. 리듬.
아, 내가 지금 리듬이 깨진 거구나.
그가 말했던 것처럼 계단을 잘 내려가다가도 어? 내가 지금 세 칸씩 내려가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몸에 개입하면 보폭은 두 칸도, 세 칸도 아닌 어정쩡하게 되고 넘어지기 쉽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지난 몇 개월을 책도 읽고 공부도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5시에는 일어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인해 아침 시간 자체가 폭삭 무너지는 것처럼.
글쓰기는 내가 추는 춤이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하는 일. 리듬에 맡겨 움직이면 될 일이었다. 매일 추는 춤이 잘 되는 날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날도 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머리가 개입하지 않게 하는 일뿐이었다.
잘 못 추는 날에도 춤은 엉망이 되지 않는다. 몇몇 동작이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머리가 개입하는 순간 모든 게 엉망이 된다. 춤을 추기 전 보고 온 영상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춤 실력이 형편없게 느껴지는가 하면 지금 추는 춤이 의미가 있을까 의심을 갖기도 한다. 언제나 리듬을 깨는 쪽은 몸이 아니라 머리였다.
그러니 리듬이 깨져 괴로워하고 있다면 ‘내가 왜 이모양일까?’ 머리에 맡기는 대신 아무 생각 없이 몸에 맡길 것. 몸에 맡기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리듬을 찾게 된다. 그때 춤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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