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반드시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을 단지 창피하다는 이유로 회피하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하지만 경험해본 자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단지 창피하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혹시 창피를 당할까 봐 무언가 미루고 있는 분이 있나요. 미루지 말고, 뒤돌아 도망치지 말고, 용기를 내서 당장 실행하세요. 잘 될 겁니다.
책 <최소한의 이웃>, 허지웅
의외로 살면서 창피하다는 이유로 하지 못한 일이 많아. 때론 그것이 본인의 체면을 살리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지. 차라리 창피하다고 그래서 못하겠다고 스스로 떳떳하게 인정하면 되는데 얼버무리며 넘길 때마다 삶은 저절로 비탈길로 향하는 것 같아.
남들 앞에서 발표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지. 그래서 대부분이 발표를 처음 하게 되는 대학생 때부터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아. 어떤 사람은 발표가 있는 과목 자체를 피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목을 듣지.
우린 부끄러운 순간을 넘기면 안도감을 느끼곤 하지. 사전에 안도감을 검색해보면 안심이 되는 마음이라고 해. 여기서 안심은 모든 걱정을 떨쳐 버리고 마음을 편히 가짐을 뜻해. 걱정이 사라진다는 뜻이지.
어쩌다 발표가 있는 과목을 피한다고 해서 학위 논문 발표나 회사에서 해야 하는 발표까진 피할 수 없지. 발표가 있는 몇몇 과목은 피할 수 있어도 졸업이나 취업 등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언제나 부끄러운 순간을 넘길 때 사라지는 건 걱정이 아니라 기회였어. 그때 느껴야 하는 건 안도감이 아니라 불안감이어야 했고.
"어렵게 살아갈수록, (역설적으로) 삶은 쉬워진다"는 말을 좋아해. 스스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거나 주변에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었던 사람들이 결국 무슨 일을 저지르더라고. 과정이 쉬우면 결과는 안 남아.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외웠던 지식처럼 말이야.
반면 습득하는 과정 중에 시행착오를 끊임없이 겪었다면 그건 의도하지 않아도 내 안에 남게 돼있어. 아마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거야. 시행착오와 친해지면 삶은 위로 향하게 돼. 스스로 만족하는 수준이 올라가거든.
강신주 박사는 우리가 살면서 절벽 앞에 자주 서야 한다고 말해. 매번 거기서 뛰어내릴지 물러날지 결정해야 한다고. 뛰어내리면 용감하고 물러나면 비겁한 거지. 그런데 여기서 비겁한 게 나쁜 게 아니야. 뒤로 물러나면서 스스로 비겁한 걸 알고 했던 결정이니까. 가장 나쁜 건 절벽 앞에 서지도 않으면서 '굳이', '뭐하러?'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거야.
선택의 기로에서 자주 비겁해지면 언젠가는 반드시 용감해져. 스스로 알 거든. 이제 더 이상 물러나기 싫다고. 우린 그 순간을 위해 계속 비겁함을 느껴야 하는 거야. 다시 말해서 빨리 뛰어내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선택의 기로에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는 게 중요해.
비겁한 선택을 해도 좋아. 단 선택할 때 스스로를 속이는 비겁한 짓은 하지 말자고. 우리.
나를 죽이지 못했던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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