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잔액

조의금을 보낸 뒤에 남는 감정들

by 신지훈
OOO 부친상


아침 출근길, 운전 중에 카톡방 부고 알림이 잠시 떴다 사라졌다. 정차 중에 모바일 부고장을 열어 돌아가신 분의 연세와 장례식장 위치를 살폈다. 나이는 70대 초반이었고, 장례식장은 부산이었다. 정신없이 바쁜 요즘, 부고는 안타깝지만 당장 내 하루, 아니 며칠간의 계획을 바꿀 만큼의 힘은 없었다. 발인 전에 조의금으로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새로운 프로젝트 준비 회의, 보고 등 미처 끝내지 못한 업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늦은 저녁 무렵 다시 보니, 이미 오늘 아침이 발인이었다. 부고 알림 자체가 늦게 올라왔고, 뒤이어 이어진 위로 메시지에 발인 일정이 묻혀버린 것이다. 물론 부고를 미리 알았다 해도, 가려는 마음만 있었다면 갈 수 있었겠지만 부산은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너무 멀었다. 매일같이 야근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문상을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찍 알았더라도 나는 아마 짧은 문자로 위로를 대신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한 줄마저도 보낼 타이밍을 놓쳤다. 결국 늦은 밤, 사무실에서 일을 마치고 조용히 토스를 켰다. 계좌번호를 입력하고, 금액을 넣었다. 이게 내 마음을 대신할 수 있을까. 아니, 사실은 나 자신을 덜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송금 완료’라는 파란 체크 표시가 떴다. 휴대폰 화면 속에는 ‘부의 신지훈’ 다섯 글자가 깔끔하게 찍혀 있었지만, 내 마음 잔액은 여전히 마이너스였다. 발인을 마치고 돌아온 밤, 통장 입금 알림 문자를 받는 상대방의 심정을 잠시 상상해 봤다.


한 달에 여러 번. 최근 들어 부고 소식이 부쩍 늘었다. 대부분 부친상 아니면 모친상이다. 거기에 형제상, 자매상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내 나이가 벌써 그런 소식을 더 자주 들을 수밖에 없는 시기에 와 있다는 뜻이겠지. 예전엔 결혼식과 돌잔치가 잦았지만, 이제는 부고의 빈도로 나이 듦을 확인하고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온다. 머리로는 너무 잘 알지만, 막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주제다. 그래서 부고를 들으면, 마음 한쪽은 의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쪽은 본능적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 ‘아직’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걸 점점 체감한다. 마치 오래 미뤄둔 청구서처럼, 언젠가 한꺼번에 내야 할 순간이 있다는 예감이 점점 뚜렷해진다.


오십대가 멀지 않았다. 숫자가 바뀐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생각의 방향은 매 순간 달라진다.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면, 예전처럼 ‘늘 거기 있을 존재’로만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올 ‘그날’을 가끔씩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상은 더 이상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계산 가능한 시간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결혼식은 부모님 손님, 부모님 장례식은 내 손님’이라는 말이 있다. 결혼식장에서 부모님 앞에 서 있던 나는, 언젠가 장례식장에서 그 자리를 대신 설 것이다. 그 시간이 최대한 늦게 오길 바랄 뿐.


장례식장의 풍경은 비슷하다. 입구에 놓인 국화, 무질서한 방명록, 건조하게 타들어가는 향.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다르다.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 침묵 속에 서 있는 뒷모습, 억지로 웃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 그 모든 표정 뒤에는 남겨진 자들의 복잡한 마음이 숨어 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들은 다시 출근하고, 장을 보고, 자녀를 챙기며 일상을 이어간다. 죽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여전히 삶이 남는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죽음은 두 번 오는 듯하다. 한 번은 당사자에게, 한 번은 남겨진 사람에게.


토스로 보낸 조의금을 다시 떠올린다. 조의금은 원래 ‘함께 슬픔을 나누자’는 마음에서 나온 관습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조의금, 특히 이렇게 계좌로 보내는 조의금은, 상대방의 슬픔을 덜어주기보다 ‘내 미안함을 덜어내는’ 역할을 더 자주 하는 것 같다. 현금을 손에 쥐고 직접 건네는 것과, 앱에서 숫자를 입력해 보내는 건 다르다. 전자는 온도가 있고, 후자는 속도가 있다. 요즘 나는 매번 속도를 택했다. 그리고 온도를 잃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가치한 건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몸은 못 가도, ‘당신의 슬픔을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수단이긴 하니까. 다만 그 신호가 얼마나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토스 송금 내역에는 ‘조의금’이라고 쓰여 있지만, 그 뒤에 ‘진심 어린 위로의 마음 포함’이라는 체크박스가 있는 건 아니니까.


다음 날 아침, 휴대폰이 울렸다. 선배의 경조사 알림이었다. 다행히(?) 이번엔 자녀의 결혼 소식이었다. 웃으며 축하한다는 답장을 보내고(다른 일정이 있어서 참석은 못한다는 거짓말과 함께), 다시 한 번 내 마음 잔액을 떠올렸다. 이건 또 어떤 통장에서 나가야 할까. 기뻐하는 마음도, 슬퍼하는 마음도 결국은 같은 잔고에서 빠져나가는 모양이다. 잔액이 바닥나지 않게 하려면, 미리 채워둬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오늘도 조심스레 송금 버튼을 누른다.

이번엔 돈이 아니라, 마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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