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와 권유 사이

읽어라 마라 할 권리에 대하여…

by 신지훈

누군가는 책의 종말을 말하고,

나는 여전히 책을 변호한다.


텔레비전, 스마트폰, 숏폼 영상까지, 눈이 쉴틈이 없다. 활자를 눈으로 따라가는 행위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습관처럼 치부된다. 하지만 책은 여전히 느리게, 아주 느리게 가슴과 머리에 새로운 경험과 의미를 새겨 넣는 고집스러운 도구다. 이 '느림'이 주는 이해와 상상의 밀도는 어떤 영상도 대신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문제는 그 느림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글자를 읽고 뜻을 해석하며, 때로는 문장을 베껴 적으며 시간을 들여야만 이해가 깊어진다. 그러나 그걸 잘 알고 있는 나조차 필사를 하려 하면 한 장을 채 못 가 집중력이 끊기곤 한다. 하물며 스쳐 지나가는 영상에 익숙해진 세대에게는, 책 한 장 넘기는 속도조차 고문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지난해 제이의 긴 겨울방학을 앞두고, 나는 여섯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방학 동안 이 정도는 읽을 수 있겠지?’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책들의 내용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추천 영상에 떴다는 이유, 제목이 근사하다는 나름의 이유만으로 골라 담았을 뿐이다. 내가 읽어보지도 않은 책을 아이에게는 꼭 읽어야 한다고 권하는 셈이었다. 권유와 강요의 아이러니는 그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누가 그랬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여섯 권 가운데 제이가 읽은 건 두 권이었다. 나머지는 책장에 오래 꽂혀 있었다. 방학 끝 무렵 제이 방을 정리하면서 방학 내내 마음에 가 닿지 못했던 책들을 중고서점에 처분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간 읽지 않고 모셔만 뒀던 다른 책들도 함께 처분하면서 ‘내가 이런 책을 사줬던가’ 싶은 책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단 한 권, 처분목록에서 1순위로 제외된, 당당히 제이의 맘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다.

제목은 <급류>


방학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이다. 침대 머리맡에 늘 그 책이 있었다. 다른 책들은 다 떠내려가도 <급류>만은 제이 손에 남아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소설도 읽은 적이 없었다.


사실 사주고 보니 <급류>는 중학생에게는 조금 자극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처음에 '이걸 계속 읽게 둬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금지한다고 해서 아이가 모르는 세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만의 속도로 받아들이고 곱씹으며 소화하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보다 훨씬 자극적인 책과 잡지를 이미 손에 쥐고 있었으니 말이다. 금지될수록 더 집요하게 찾아 읽었고, 몰래 넘겨본 장면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니 제이가 <급류>에 빠져든 모습은, 어쩌면 세대를 넘어 되풀이되는 자연스러운 통과의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나보다 매우 건전하다고 할 수 있고….


책을 권하는 것에는 늘 미묘한 차이가 있다. 같은 말이어도 "이 책 한번 읽어볼래?"는 권유지만, "이건 꼭 읽어야 한다"는 것은 강요다. 전자는 선택지를 열어주지만, 후자는 스스로 발견하는 길을 막는다. 내가 건넨 여섯 권의 책 중 몇 권은 중고서점으로 흘러갔고, 몇 권만이 제이 손에 남았다. 강요로 쥐여준 책은 버려졌지만, 스스로 꽂힌 <급류>는 끝내 살아남았다. 권유와 강요의 차이는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났다.




걱정할 수준으로 문해력 부족이 사회적 우려로 떠오르고 있다. "중식 제공, 0명 채용"이라는 공고가 밈으로 소비되고, '사흘 연휴가 3일이냐 4일이냐'를 두고 진지하게 논쟁이 벌어진다. 사흘은 분명 3일이지만, 그조차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해력을 기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결국 독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강요로는 얻어낼 수 없다.


독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이자, 권리에 기반해서 이뤄져야 할 행위라고 생각한다. 마치 헌법처럼, 다른 어떤 합리적인 이유로도 침해할 수 없는 최상위 원칙 같이. 부모의 교육적 열정도, 사회적 우려도 이 원칙을 대신할 수 없다. 아무리 부모라도 ‘일해라 절해라’ 할 권리가 있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한다. 아이에게 100권짜리 전집을 사놓고 읽으라고 하는 부모가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책을 은근슬쩍 권한다. 다만 강요하지 않으려 애쓴다. 제이가 읽든 말든, 결국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옆에서 묵묵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언젠가 제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는 건 사실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며 문득 다시 한번 반성한다. 정작 나는 제이에게 (강)권했던 그 여섯 권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목조차 가물가물하다. 결국 읽지도 않은 책을 권한 내가, 사실은 가장 심각한 문해력 부족자가 아니었을까. 웃기게도, 지금 이 순간조차 나는 또다시 책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있다. 강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결국 책을 읽어야 하는 건 제이가 아니라 나다. 아이에게 뭔가를 바라기 전에, 먼저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걸 매번 깨닫는다.


내게 필요한 책은 <잔소리 줄이는 법>

한 권이면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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