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 듯 모를 듯, 서로를 재단하며

by 신지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끝 무렵,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정리하는 듯한 고순의 대사가 등장한다.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주인공 구경남(김태우)이 대학 시절 마음을 줬던 고순(고현정)과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해프닝을 겪고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대사는 영화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과도 묘하게 겹쳐진다. 특히 매년 다가오는 동료 평가 시즌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사실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늘 아는 척을 하며 주변인들을 평가해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평가를 서두르라는 독려 메일이 왔다. (이런 메일을 보고 바로 참여하는 사람 칭찬해.)


“동료 A, B, C, D, E, F, G, H를 평가해 주세요.”


대부분은 같은 조직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이다. 그래도 난감하기는 매한가지다. 옆자리에 앉아 있긴 하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다. 같은 부서라도 업무가 달라 정확히 동료의 업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보고서 주고받고, 회의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건 차라리 다행이다. 어떤 경우이든 그 사람을 평가할 만큼 내가 어떻게 상세히 안단 말인가. 내 자식도 모르겠는데….


때로는 일 년에 한두 번쯤 협업하게 되는 다른 팀 직원도 평가 대상에 올라온다. 그럴 때는 더 한숨이 나온다. 좋은 기억도 있겠지만, 짧게라도 부딪혔던 순간들도 기억난다. 평소 그 직원의 회사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지도 못하는 내게 한두 번 만난 기억을 바탕으로 평가를 하라니. 차라리 주사위를 굴리는 게 더 솔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다트가 나으려나….



조금씩 이름이 바뀌지만 평가 항목은 늘 비슷하다. 업무 성과, 전문성, 실력, 리더십 등. 항목만 보면 내가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상 평가의 결과물은 부분적으로만 아는 파편들을 억지로 꿰맞추는 것에 가깝다. ‘리더십’을 평가하라니, 내가 본 건 회의에서 의견 하나 던진 모습뿐인데, 그걸로 어떻게 리더십을 넘겨짚을 수 있겠는가.


같은 프로젝트를 하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동료를 평가할 때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장점과 단점을 다 알지만, 점수로 표현하려 하면 손가락이 멈칫한다. 더구나 최고 점수나 최저 점수를 주려면 사유도 입력해야 한다. 사유를 적어야 하는 빈칸 앞에서 나는 늘 주저한다. 대부분 결국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무난한 점수로 타협한다. 굳이 사유를 적는 빈칸을 채우기보다는 마감 시한의 압박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더 큰 문제는 사사로운 감정이다. 동료 평가는 너무 손쉽게 감정의 쓰레기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나는 회의적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에게는 ‘정당한 근거’라는 포장 아래 낮은 점수를 줄 수 있고, 마음에 드는 동료에게는 ‘호의 점수’를 안겨줄 수 있다. 회사가 원한 건 ‘공정한 제도’였을지 몰라도, 결과는 복수극과 인기투표로 쉽게 변질될 위험이 높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동료 평가라는 제도는 애초부터 감정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잘 웃는다는 이유만으로 협업 태도에서 가산점을 받고, 누군가는 말수가 적다는 이유로 성실성에 감점을 받는다. 본질은 뒤로 밀려나고, 껍데기 같은 인상이 점수가 될 여지가 있다. 영화 속 고순의 대사처럼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며 서로를 재단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이러한 평가 시스템을 운영하는 여러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동료들이 너를 이렇게 보고 있다”는 피드백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리더에게 당신의 팀원이 주변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알려주고 싶을 테고. 순기능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동료가 나에 대한 평가를 어떤 의도로 썼는지,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는 모두 삭제된다. 이해관계, 감정, 귀찮음이 엉켜 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는 뜻이니 진지하게 임하는 분들은 오해가 없길…)


“당신이 뭔데 나를 재단해?”라고 투덜대지만, 정작 나도 똑같이 다른 사람을 손쉽게 재단한다. 물론 잘 아는 동료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평가를 진행한다. 하지만 협업을 딱 한 번 해본 동료에게 ‘아이디어가 번뜩인다’고 적고, 출근 시간을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업무에 임하는 태도가 성실하다’는 추측성 의견을 남긴 기억도 있다. 내 손가락은 마우스와 키보드 위에서 멋대로 즉흥적인 춤을 추고, 그 춤사위가 누군가 한 해를 되돌아보게 하는 엉뚱한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엉성한 감정적 기준이 공정한 평가 결과로 둔갑해 내게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이 연례 의식이 없어질 리는 없다. 동료 평가가 조직의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논문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을 테니까. 그러므로 올해도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동료들을 평가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동료들에게 평가받는다. 그리고 영화 속 대사가 다시 떠오른다.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어쩌면 동료 평가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시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상한 연극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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