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대체 커서 뭐가 될래?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진로희망 관련 부탁말씀드립니다. 오늘 중으로 자녀와 상의하셔서 아이의 현재 진로희망(장래희망, 구체적 직업)을 제게 개인톡이나 문자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학생이 부모님과 상이한 내용을 제출했을 시에는 아이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반영하여 기록할 예정이니, 상의 후에 일치하는 답변으로 보내주시면 좋을듯합니다. 고맙습니다!"
위와 같은 메시지가 학부모와 담임선생님이 함께한 단톡방에 공지로 올라왔다. 담임선생님의 공지를 읽으며 의아함과 안도감이라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의아한 건 왜 진로희망을 부모에게 묻느냐는 거였다. 장래희망이나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직업이 있다면 아이가 가장 잘 알 텐데, 왜 부모가 중간에 끼어야 할까. 어쩌면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진로희망을 묻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더 나아가 자녀와 '상의'를 하라는 말은 어딘가 거북스러웠다. 게다가 이미 학기 초에도 비슷한 걸 제출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요즘은 대부분 유튜버라고 하지만, 1년만 지나도 꿈이 싹 바뀌는 게 아이들인 법이니 다시 묻는 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이걸 부모에게 물어보고 제출한다는 게 괴상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적어도 부모 의견보다는 학생 의견을 우선 반영한다는 대목이다. (당연한 거 아닌가?) 만약 반대로 적혀 있었다면, 나는 단톡방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이모티콘 하나 날리고 속으로는 '이게 뭔 헛소리야' 하며 혀를 찼을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제이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제빵사였는데 말이다. 아마 다음에는 탐정이나 골프공 수거 다이버가 된다 한들 놀라울 게 없겠다. 수의사와 제빵사의 공통점은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빵 굽는 수의사, 동물을 치료하는 제빵사"라는 이상한 조합이 떠올랐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이런 하이브리드형 진로희망을 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매번 희망직업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희망에 희망을 덧붙이는 방법으로 말이다. 실제로 N잡이 늘고 있는 세상이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이젠 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당당히 내 장래희망은 '소설가'라 떠들고 다니는 나인데, 어린 시절 장래희망은 기자나 뉴스앵커 같은 직업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 둘의 역할을 정확히 구별도 하지 못했다. 기자란 낮에 취재하고, 밤에는 뉴스데스크에 나와 자기 얼굴로 뉴스 읽는 줄 알았다. 그래서 뉴스앵커를 성대모사하면서 나는 나중에 기자를 해도 잘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누구한테 크게 떠벌리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다. 아무튼 이제는 기자와 앵커를 겸하는 게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된 것으로 보면 내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 한동안은 운동장이 내 진로였다. 나는 폭풍우가 오는 날에도 친구들과 공을 찼다. 마치 축구에 미친 사람처럼, 쉬는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저녁시간에도 늘 공을 찼다. 너무 당연하게도 엉망진창이었던 수능 성적표가 나온 뒤, 3학년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다녀온 어머니가 상심하셨던 일이 있었다. 선생님은 축구 특기생으로 대학 가고 싶은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셨다. 엄마는 그 상황에서 웃지 못하셨다. 공부보다 축구에 더 진심이었던 아들을 보며 속으로는 '쟤는 대체 뭐가 되려나' 싶으셨을까? 30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진 못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고3까지도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적에 의해 결정되는 직업과 진로의 리스트에서 내 것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자꾸 운동장으로 향했던 것 같다. 공을 찰 때면 누구나 잘한다 잘한다 해줬으니까. 내가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너는 공을 차면서 살 운명은 아니니 글을 한번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해 줬을까?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초등학생도 뚜렷하고 구체적으로 장래희망을 말한다. 어쩜 저렇게 똑부러질까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모두 늘 미래를 직업과 연계시킨다. 물론 뗄 수 없겠지만 인생이 꼭 직업으로만 설명되는 건 아니다. 직업은 인생을 모두 걸 수 있는 전부가 되기도 하지만 단순히 먹고사니즘의 기반에 불과하기도 하니까. 아이들의 희망 직업을 물어보는 대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는 게 더 맞다고 말하는 건 너무 동화 같은 일일까? (나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야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아이유)이 이력서에 특기를 '달리기'라고 썼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언뜻 무개념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도 별생각 없이 쓴 것이기도 했고. 하지만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 가끔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 아닐까. 늘 약속에 늦을리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되기도 하니까. 나는 그러니까,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이 장래희망이 될 수는 없는 이 세상은 너무 재미없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양하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의 가치관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시간도 없고 그럴 영향력도 없다. 어쩌면 태평한 소리하고 앉아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그만이겠지.
그나저나...
제이가 나와 아내에게 "나 커서 뭐 할까?"라고 묻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