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떠난 자리, 통증과의 동거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며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오늘 해야 할 일이나 회사 일정이 아니다. ‘오늘은 발바닥 상태 괜찮나?’이다. 괜찮기는 무슨. 침대에서 일어나 첫 발을 디디는 순간, 불쾌한 통증이 전신으로 퍼진다. 소위 족저근막염 증상이다. 전날 조금만 무리해도 바로 반응이 온다. 이십 대의 나는 온종일 걸어도, 밤새 술을 마셔도 몸이 스스로 복구되는 능력이 있었다. 그때의 내가 최신 버전을 자동으로 업데이트하는 하이엔드급 스마트폰 같았다면, 이제는 더 이상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지원되지 않는 구형 모델이 되어버린 셈이다. 나는 그저 ‘하던 대로’ 살고 싶은데, 내 몸은 더 이상 ‘하던 대로’의 나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발바닥뿐이겠는가.
허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만을 표시해 왔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묵직하게 올라오는 통증, 세수하려 몸을 숙일 때 느껴지는 뻣뻣한 저항감.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1~2년에 한 번씩은 허리 고장으로 결근하거나, 심하면 입원까지 하는 일이 반복된다. 재작년에는 도저히 걸을 수도 없는 상태가 이어져 119 구급차를 타고 바로 입원한 적도 있었다. 퇴원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일은 없도록 하자’고 다짐했지만, 지금 이 글을 쓰기 직전에도 허리가 아파서 아내에게 잠시 투정을 부렸다. 조금씩 나빠지는 허리를 보며, 사실 나이 탓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는 걸 잘 안다. 잘못된 자세로 버틴 시간들, 운동을 미루며 근육을 무디게 만든 내 탓일 뿐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걸 알고 있다. 말하자면, 이건 ‘사용자 과실’이다.
오랜 통증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오른손 새끼손가락이다. 이유 없는 통증이 생긴 지 벌써 10년도 넘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점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통풍이나 류머티즘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아니었다. 동네 병원에서 이것저것 치료를 받아보고, 대학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해보고, 마약성 진통제 처방까지 받아봤지만 의사들은 원인을 찾지 못했다. 사실 원인은 중요하지 않았다. 증상을 없애는 게 급했다. 통증이 심할 때는 박수를 치거나 악수를 하는 게 힘들 정도였다. 키보드 타이핑에서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비번’이 된 지도 오래다. 그런데 나는 원인을 알고 있다. 처음에는 과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과로를 핑계로 범한 과음과 과식 때문이었다. 체중을 조금 줄이고, 음주량을 줄이니 통증도 비례해 줄었다. 그때 알았다. 내 몸 안에서 통증을 유발하던 힘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물론 지금도 통증은 내 몸의 일부처럼 남아 있고, 가끔 아주 날카롭게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일만 시간의 법칙이 실현된 것처럼, 이젠 통증의 전문가가 된 기분이다.
몸이 변해간다는 것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은 바로 술 마신 다음 날이다. 신입사원, 대리 시절에는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멀쩡하게 출근했다. 컵라면 하나면 해장 끝이었다. 이제는 술자리 후에도 다음 날, 심할 땐 다다음 날까지 후유증이 이어진다.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술 약속을 잡지 않으려 하지만, 부득이하게 그 이상 마시게 되면 몸에서 바로 신호를 보낸다. “이제 그럴 나이가 아니야.”
이런 신호들을 겪으며 깨달았다. 단순히 ‘나이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 쉬운 해석이라는 것을. 오히려 이것은 몸이 보내는 친절한 메시지다. 발바닥 통증은 “바르게 걷자”는 권유이고, 허리 통증은 “바르게 앉자”는 조언이다. 술에 대한 내성 저하는 “이제 술 말고, 다른 방식으로 즐겨라”는 제안이다. 몸은 언제나 말보다 앞서 나를 가르친다.
몸이 보내는 오류 메시지는 결국 살아 있다는 신호다. 시스템이 완전히 멈춘 건 아니라는 뜻이다. 업데이트는 지원되지 않지만, 여전히 실행은 가능하다. 다만 이제는 예전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신중하게 작동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게 중년의 리듬이고, 내 몸이 새로 제시한 사용설명서다.
그런데 운동은 언제 시작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