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게 될 줄 알았니??
불이 나간 전등의 안정기를 갈고,
뻑뻑거리는 와이퍼를 교체하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관공서에서 서류를 막힘없이 작성하고,
여행 계획을 척척 세우는 일 같은 것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할 줄 알았다.
어른이 되면 다 해낼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생각보다 어렵고, 무엇보다 귀찮다.
현실의 나는 ‘와이퍼 교체하는 법’을 검색하고,
이케아 가구를 조립한 뒤
“이게 왜 남지?” 하며
남은 부품을 한참 들여다본다.
매뉴얼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위아래를 뒤집어 조립하는 일이 다반사다.
머쓱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이 정도면 금방 한 것 아니냐’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제는 조금씩 깨닫는다.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감추게 되는 것을.
그런데 사실 그런 생활 꿀팁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
인간관계다.
관계를 맺는 법도, 끊는 법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경우는 없다.
친절한 사용설명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여전히 고등학교 화학시험처럼 어렵다.
(나는 8점을 맞은 경험이 있다.)
언젠가부터 연락이 뜸해진 사람들에게
먼저 안부를 묻지 않게 됐다.
처음에는 ‘서로 바쁘니까’라며 합리화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정말 바빠서일까?’
‘나는 그냥 스쳐가는 인연이었나?’
‘나란 사람과의 관계를 감당하기 버거워진 걸까?’
오래된 인연이 이유도, 답도 없이 멀어진다.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
잠시 거리를 두려다가 소원해진다.
나이 들면 사람 대하는 게 편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건 아무래도 지나친 기대였던 것 같다.
서른 즈음엔 갈등이 있어도
‘내가 먼저 사과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마흔이 되니
‘굳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십이 가까운 나이가 되니
‘그냥 잊고 살자’는 생각이
가장 편한 대처법이 되어버렸다.
어설픈 노력보다 확실한 거리두기가
때로는 더 효과적이라는 걸
늦게야 배운 셈이다.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아예 끊어버리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런데 또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거리를 두면 미련이 생기고,
다시 가까워지면 오해와 피로가 쌓인다.
인간관계는
늘 그렇게 온도 조절이 어렵다.
인생 선배라는 사람들은 늘 말했다.
“살다 보면 다 알게 돼.”
어릴 때엔 그 말이 참 믿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그들도 사실
여전히 잘 모른 채로 살고 있을 거라는 걸.
단지, 모르는 걸 티 내지 않을 뿐이다.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게,
어쩌면 인간관계의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사소한 문제로 소원해졌던 친구에게
몇 년 만에 카톡을 보냈다.
“잘 살고 있어?”
읽음 표시가 뜨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보낸 메시지를 지울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두었다.
다음 날, 그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제 폰이 고장나서 이제 봤네. 보고 싶네.”
그게 핑계인지 진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물음에 답을 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변화가 생긴다는 걸 알았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간의 삶을 조금씩 나누고,
조만간 만나기로 약속했다.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또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 약속 자체가 위안이 됐다.
관계란 게 결국 그런 거였다.
끊어진 줄 알았는데,
때로는 느슨하게 이어져 있기도 한 것.
그 단 하나의 진실만큼은,
이상하게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