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아저씨 2

여전히 출근하는 중입니다

by 신지훈

요즘 이상한 꿈을 자주 꾼다.

배경은 늘 같은 곳이다.

다시, 회사다.


꿈속의 나는 건물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복도는 낯익은데

벽 색깔이 다르고,

사람들은 모두 아는 얼굴인데

어딘가 미묘하게 다르다.

어쩌면 안다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꿈속의 얼굴들은, 늘 그럴듯하게 익숙하다.


누가 보면 그냥 악몽이라 하겠지만

나는 이상하게 이 장소가 싫지는 않다.

익숙한 불편함, 익숙한 긴장감.

출근이 아니라 귀가처럼 느껴지는 아이러니.


꿈은 늘 꼭대기 층에서 시작된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항상 1층으로만 내려간다.


내 사무실로 올라가고 싶은데

꿈은 늘 나를 아래로 데려간다.


어쩌면 그게 내 무의식일지도 모른다.

늘 더 위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냥 내려가고 싶은 마음.


꿈속에서도 습관은 남아 있다.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꺼내

무심코 메일함을 확인한다.

그런데 화면이 켜지지 않는다.


그 순간, 이상하게 불안하다.

메일을 못 본다는 사실이 아니라

꿈에서도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로비에 내려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곳은 분명 내가 다니던 회사다.

하지만 조금씩 낯설다.


복도 끝엔 커피머신이 있고

‘비워 주세요’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그 글씨체가 낯익다.


잠시 멈춰서 바라본다.

누가 그 메모를 썼을까,

언제 붙였을까,

그리고 왜 아직까지 붙어 있는 걸까.


갑자기 장소가 바뀌고,

예전 상사와 동료들이 보인다.

이미 퇴사한 사람도,

몇 년 전 이직한 후배도,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다.


회의실 안에서는 누군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복도에서는 누군가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그 웃음소리가 익숙하다.

한때는 그 안에 나도 있었는데,

이제는 유리벽 너머에서 구경하는 사람 같다.


“왜 이제 왔어?”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웃으며 대답한다.

“그냥… 엘리베이터가 늦게 와서요.”


그 순간, 모두가 피식 웃는다.

그리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때서야 깨닫는다.

'아, 또 이 꿈이구나.'


내가 진짜로 그곳에 있었던 시절보다

이제는 꿈속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 같다.


책상 위에는 낯선 사람의 머그컵이 있다.

모니터엔 내가 아닌 누군가의 메일함이 떠 있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너무 현실 같다.


‘아, 여긴 내 자리 아니었지.’

그제야 안도한다.


다른 자리의 서랍을 열어본다.

내가 쓰던 펜, 오래된 포스트잇이 남아 있다.

글씨는 낯설고, 종이는 누렇게 바랬다.

그것들마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그제야 알게 된다.

자리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회사가 만들어준 것이었다는 걸.

나는 그저 잠시 앉아 있었던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서랍 안엔 늘 한 장의 명함이 남아 있다.

이름도 직책도 그대로인데,

이상하게도 그 명함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명함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때 나는 누구였을까.

그 이름을 지금의 내가 다시 부를 수 있을까.


건물을 나서면

밖은 늘 다른 곳이다.


어느 날은 첫 출근하던 거리,

어느 날은 지금 내가 사는 동네 골목.

시간이 뒤섞인 듯 흐른다.


길가엔 버스 정류장이 있고

“출근시간 뒷문 탑승 금지”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 문구를 보고 피식 웃는다.

‘꿈속에서도 출근길이라니.’

그러니까 인생은 결국,

출근길의 반복인가 보다.


문득 어제 회의와 보고서가 떠오른다.

현실에서도 늘 하던 생각들.


이쯤 되면

꿈이 이어지는 건지,

출근이 연장된 건지 모르겠다.


눈을 뜨면 아직 새벽이다.

그리고는 웃는다.


출근까지 아직 세 시간 남았는데

이미 회사에 다녀온 사람처럼 피곤하다.


손끝에는 여전히 엘리베이터 버튼의 감각이 남아 있고,

머릿속엔 로비의 형광등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심지어 어제보다 오늘의 피로가

조금 덜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꿈속에서도 근무시간이 줄었나 보다.


짤막한 기억을 급히 메모로 남긴다.

마치 업무보고라도 하듯이.


나는 꿈에서도 일하고,

현실에서도 꿈을 꾼다.


퇴근은 매일 하지만

하루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은

그 꿈이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생각한다.

“내일은 제발 다른 꿈 좀 꾸자.”


하지만,

왠지 또 회사 꿈일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아주 싫지는 않다.

내가 여전히 그 건물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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