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에게 ‘아무래도 싫은 사람’일까
며칠 전, 도서관에서 다시 읽은
마스다 미리의 <아무래도 싫은 사람>
피곤한 모습으로 퇴근하는 수짱의 독백이 나왔다.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제자리에 서서 휘리릭 책장을 넘겼다.
예전엔
‘이런 사람이 있다고?'하며 고개를 갸웃했는데,
이번엔 조금 다르게 읽혔다.
이제는 그 ‘싫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오랫동안 이렇게 말하며 살아왔다.
“난 웬만하면 사람 안 싫어해요.”
하지만 그건 일종의 가짜 예의였다.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말.
싫은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인정하기 싫었던 거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순간,
스스로를 인격적으로 훼손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싫어하는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위선으로 사십 넘게 살았던 것 같다.
수짱은 직장 상사,
그러니까 사장의 딸 무카이를
좋아해 보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싫어하는 나도 틀리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만화의 대사처럼
사소하게 싫은 몇 가지가
장롱 뒤 먼지처럼 조금씩 쌓여가고,
결국 커다란 먼지뭉치가 되어
청소기로 빨아들일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린 것이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 매일 반복된다.
얼마 전 회의 자리에서도
그 먼지가 쌓이는 기분을 느꼈다.
긴급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자리.
현실성을 떠나 여러 방안을 펼쳐놓고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고심 끝에 준비한 아이디어를 꺼내자마자
동료 A가 여지없이 말을 끊었다.
“그건 안 돼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요.
예전에도 해봤는데 방법이 없어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내 머릿속의 전등이 꺼졌다.
아직 문장의 마침표를 찍지도 않았는데
아이디어의 가능성은 희미해졌다.
기운 빠지게 만든 그의 말은
사실과도 달랐다.
그는 그 일을 시도해 본 적도 없고,
안 되는 이유를 알아본 적도 없었다.
그냥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믿는 사람.
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예전에 해봤다는 건 언제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그리고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검토 자료를 보여주며
그에게 무안함을 더해줬다.
결국 그 아이디어는 실행됐다.
어차피 그의 조력은 필요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래도 사람은 좋아’라는 말을 싫어한다.
사람 좋은 사람이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듣기도 전에 결론부터 내릴 리가 없다.
조금이라도 변호하고 싶다면
이 말이 낫겠다.
‘가끔은 착한 행동을 하기도 해.’
언젠가 동료 B와 단둘이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1차를 마치고 헤어지는 분위기였는데
무슨 클리셰처럼
“딱 한 잔만 더 하자”
하면서 나를 붙잡았다.
그와의 독대는 전혀 내키지 않았으나
결국 성화에 못 이겨
낡은 포차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를 꺼내는 버릇이 있었다.
자기 자신이나
마주 앉은 상대에 대해 이야기해도 모자랄 판에,
그의 관심사는 늘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이었다.
“걔 진짜 피곤하지 않아?
뭘 물어봐도 멍하니 있고.
요청하면 느릿느릿.
나쁜 뜻은 아니고, 그냥 답답하고 걱정돼서.”
이번엔 신입 직원 이야기였다.
30분 넘게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 직원을 안주 삼아 씹었다.
참다못해 급발진했다.
“그만 좀 하세요. 그렇게 할 얘기가 없어요?”
공기가 싸늘해졌고,
B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예민해?”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가 누굴 싫어하든,
그건 그의 자유다.
누구나 ‘아무래도 싫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가 피곤해하고 싫어할 대상이 나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좋은 뜻으로’ 포장한 말 뒤에 숨어서
몰래 누군가를 평가하는 짓에
가담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말을 끊는 사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
나이가 어리다고 일단 말부터 놓는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정말 많다.
어쩌면 사람 자체가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오래가진 않는다.
피곤하다가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웃게 되니까.
싫어하면서도 또 좋아하게 된다.
그 모순 속에서 결국 나를 본다.
예전엔 그 사람들을 탓하며 지냈는데,
요즘은 그 안에서 내 얼굴도 가끔 보인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고 혀를 차다가
돌아서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있다.
결국 ‘싫은 사람’이란 건
나를 비추는 거울 같다.
그래서 이제는
함부로 닦아내지 않는다.
싫어하는 감정도 어쩌면
내가 아직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이제는 굳이
다 좋아하려 하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하면
그 불편함까지 안고,
싫으면 싫다고 말한다.
그게 예의 없는 게 아니라
솔직한 것임을 배웠다.
누군가를 완벽히 좋아하지 못하는 건,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의 한계이기도 하니까.
그걸 인정하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아마 내일은 또 흔들릴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모두와 잘 지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