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기말고사를 보며 느낀 것들)
시험 전날 늦은 밤, 학원에서 돌아온 제이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내일이면 기말고사 첫날이었는데 교과서는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제이는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과자를 먹으며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축구 선수들이 월드컵 시합 전날 탁구를 치는 것처럼, 나름대로 긴장을 푸는 방식이겠거니 생각했다. 잠시 보다 말겠지 했는데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어휴, 저러다 금방 12시인데 샤워라도 하라고 해야 하나. 뭐라도 말을 할까 세 번 정도 고민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사춘기 소녀 나름대로 다 계획이 있을 테니 말이다. (상냥하다고 생각하는) 말 한마디에도 제법 날카로운 리액션이 돌아올 것도 뻔했고.
다음 날 새벽, 잠결에 누군가 내 팔을 흔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눈을 뜨니 제이었다.
"아빠, 환율이 오르면 물가도 같이 오르는 거야?"
(비몽사몽) “으...응? 뭐라고?”
"환율 상승이랑 인플레이션이랑 관계있는 거 맞지?"
나는 겨우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6시 2분이었다. 내가 아무리 경영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비몽사몽 상태에서 환율과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를 중학생이 알아듣게 설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화 가치 하락, 원자재나 수입제품 가격 상승 등, 대충 그런 단어들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중학생 시험문제가 다 거기서 거기일테니) 잘 모르겠으면 외우라고 말도 덧붙였다….
“시험이라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아니, 안 잤는데?”
새벽 6시에 아빠를 깨워 경제 문제를 물어보는 제이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벼락치기라도 해서 시험을 보러 가던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부 방식도 유전이 되는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밤을 샜다는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아 이불을 덮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난 지는 오래다. 실패와 좌절, 그리고 몇 번의 짜릿한 합격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옛날이야기다. 그때의 간절함이 세월과 함께 무뎌지는 걸 보며, 나도 어느새 나이를 먹었구나 싶다.
정답이 존재하던 시험을 보던 시절이 오히려 마음 편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말이 시험 스트레스를 받는 제이에게 아무런 위로나 격려가 되지 않겠지만, 사실이었다. 답지에 맞춰보고 이게 이래서 맞았구나 혹은 틀렸구나 맞춰볼 수 있는 기회라도 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이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과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대충 하고도 좋은 결과를 받기도 한다. 그런 아이러니에 익숙해지다 보니 중학생의 시험이 오히려 공평하게 느껴진다.
다음 날, 제이는 사회 시험지를 보여주며 환율 문제를 헷갈려서 틀렸다고 했다. 환율이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될 때 합리적인 행동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문제였다. 중학생 시험문제치고는 제법 어렵게 느껴졌고, 나 역시 정답을 고를 때 확신에 찬 결정을 했을지 미지수였다. 아침에 좀 더 다양한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줬어야 했나 생각했지만 결과에 영향이 없을 거란 결론에 이르렀다. 세상의 모든 기출변형을 대비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때론 오답이 정답이 되기도 하고,
정답이 의심스러워지는 순간도 온다.
시험은 냉정하지만, 그만큼 정직하다.
인생은 너그럽지만, 그만큼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