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선언을 하면 생기는 일들

by 신지훈

육아휴직을 결심하고 얼마 뒤, 팀 점심 식사 자리에서 슬그머니 운을 띄웠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오랫동안 처가에서 아이를 키워주셨어요. 더 늦기 전에 제가 육아휴직을 써서 잠시라도 직접 돌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에요.”


올 한 해 팀에서 진행했던 여러 프로젝트들을 마무리하고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던 자리였으므로, 모두에게 갑작스러웠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옳거니 싶어 이야기했는데, 함께 식사를 하던 동료들의 동공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특히 일 년 내내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면서 고생했던 O 매니저는 “매니저님, 그러시면 절대 안 돼요”라며 장난스레 울먹였다.

반면 팀장님의 눈빛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그저 뜻을 알 수 없는 온화한 미소만 짓고 계셨다. ‘뭐지? 현실 회피 반응인가? 잘 모르겠다. 역시 심리전의 고수’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리더십은 포커페이스를 구사할 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법이지.


‘농담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데...’


갑작스런 육아휴직 선언은 겨우 실무자가 세 명밖에 안 되는 우리 팀에 안겨줄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배려였다. 단수 예고처럼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게다가 아쉬운 소리는 모쪼록 밥을 먹고 난 뒤에 하는 것이 좋은 법인데,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 머릿속에 내가 곧 육아휴직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심어주기만 하면 되면 되었다.


그로부터 2주 정도 또 다른 고뇌의 시간이 흘렀다. 한 해 성과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이른바 경영 계획 수립 시즌이었으나, 내 머릿속은 경영 계획이 아닌 휴직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육아휴직을 가고 안가고의 문제가 아닌 휴직 기간에 대한 고민이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보장되는 육아휴직 기간은 일 년이라 해도 아내에게 한 해 동안 가계를 전적으로 책임지게 하는 것은 정말 부담스러웠다. 정부에서 육아휴직 급여가 나오기는 해도 매월 지출해야 하는 고정비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해 보였다. 거기에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자존감이 하향곡선을 그릴 것 같은 쓸데없는 조바심도 생겼다. 여차저차 아내와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은 4개월이었다. 3개월은 너무 짧은 것 같고, 개학 후 새 학년에 어느 정도 적응하는 1개월 정도만 더 쓰자고 생각했다. 결론을 내리고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 이제 회사에 공식적으로 얘기하는 일만 남았다.


- 팀장님, 잠깐 면담 좀 가능할까요?


사내 메신저로 면담을 요청했고, 2인용 회의실에 우리는 마주 앉았다. 서론 생략하고 육아휴직 이야기를 바로 꺼냈다. 순간 묘한 긴장감과 고요함이 두 평짜리 회의실에 가득 채워졌다.


“팀장님,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육아휴직이요. 12월부터 사용할 수 있을까요?”

“아, 네. 그렇죠. 지난 번에 말씀했었죠. 혹시 기간은요?”

“1년까지 생각했는데… 4개월정도 다녀오려고요.”

“잘 생각하셨어요. 가족분들하고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랄게요. 마음도 좀 추스르고요.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어? 뭐가 이렇게 간단하지...?’


지난 번 예고 덕분인가?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야기 하길 기다렸다는 듯 너무 태연했다. 예고를 했어도 막상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 당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느냐?’, ‘그건 그냥 농담 아니었냐?’는 등의 반응이 나올까 염려하고 있었다. 지난 16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지켜본 결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소 그렇게 좋아 보이던 리더도 육아휴직을 가겠다는 구성원 앞에서는 갑자기 눈이 돌아가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지켜봤었다. 자기 부하직원이 육아휴직을 가는 일이 두 번 다시 생기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상사를 본 적도 있다. 그래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육아휴직은 승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법률로 보장되는 당연한 권리다’ 등 공격적인 대응도 준비했는데, 다행히 걱정과는 다른 방향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내년에는 최소한 한 명은 충원해서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이상 없이 진행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도 지금 가시는 게 팀에도 나쁘지 않아요. 올해 일단락했으니까요.”


‘뭐지? 이 분 혹시... 내가 휴직하길 기다렸나?’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람 맘이 참 희한하도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마뜩잖게 보면 어쩌나 내심 불안해했으면서, 막상 싫은 내색이나 붙잡는 시늉도 안 하니 어쩐지 허탈해지는 이중성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좀 아쉽네요. 매니저님이 지금 휴직하면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겨요. 가능하다면 좀 천천히 가는 게 어때요?’ 이런 식의 반응을 아주 조금은 예상했던 것 같다. 그 말은 내가 이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고 내 빈자리로 인해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는 의미니까. (보통 휴직을 반대할 때 이런 이유를 대는 상사를 많이 봤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던 셈이다.)

아마 팀장님이 불편한 내색을 했다고 해도 내 결정이 바뀔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단지 내 걱정과는 달리 일말의 밀당도 없이 면담이 마무리된 게 조금은 싱거웠던 것 같다. 아무튼 이렇게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고 나자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었다.

이제 시스템으로 결재를 올리고 나면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겠지 싶었다. 육아휴직 계획을 주변에 알리기 시작하자 다들 비슷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왜?”

“무슨 일 있어?”

keyword
이전 03화막차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