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아닌데 왜?

육아휴직 해야하는 그럴싸한 이유

by 신지훈

육아휴직 시작까지 약 한 달 반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전자결재 시스템을 통해 올린 신청이 임원에게 승인된 시점에 맞추어 팀 동료들과 일부 지인들을 중심으로 육아휴직 계획을 조용히 알렸다. “가급적 본인만 알고 계셔요”라고 덧붙였다. 비밀도 아닌데 알려지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


고작 4개월 휴직하면서 동네방네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말할 기회가 있으면 하는 것이고, 없으면 되도록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다만,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했던 다른 팀과 관계사 담당자들에게는 빠짐없이 사실을 알렸다. ‘일 벌여 놓고 자기만 육아휴직 갔구나’라는 말을 듣기는 싫었고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송년회를 겸한 연말 모임이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낼 기회가 늘어났다. 친구들과 회사 지인들은 대부분 나의 결정에 “좋겠다”, “잘했다”, “대단하다(여러 의미로)”라며 반색했다. 누군가는 재차 묻기도 했다. “진짜 가는 거니?” 아주 가끔은 “혹시 로또 된 거 아냐?”, “이직하려는 거 아냐?” 등의 질문도 받았다. 다양한 반응 중에서 가장 빈번했던 질문은 이랬다.


“왜? 무슨 일 있어?”


사람들은 하나같이 육아휴직을 가려는 이유를 몹시 궁금해했다. ‘육아’라는 말 자체가 이미 휴직의 이유인 셈인데, 아빠의 육아휴직에는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있겠거니 바라보는 것 같았다. 물론 선한 걱정의 마음이 담긴 질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도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약간 짜증이 났다. (로또 당첨되어서 육아휴직 하는 거면 1년 했지. 아니 퇴사를 했...)


겨우 4개월 휴직인데 왜 이렇게 호들갑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원인을 추론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나도 모르는) 둘째가 생겼다거나,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기 어렵다거나, 아이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다거나, 가사 도우미 이모님이 그만두셨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이유가 왜 없을까. 말하기 시작하면 이유는 널렸다. 제이가 너무 일찍 일어나느라 힘들어하고, 매일 돌봐주시는 처가 어르신들에게 잠시 휴식도 드리고 싶고, 더 크기 전에 제이와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고… 아니, 셀 수도 없이 더 많은 이유가 있다. 다만 그런 이유가 없다고 해서 육아휴직을 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아빠 육아휴직을 대체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은 놀란다. 수치상으로 아무리 증가 추세라 해도 아직까지 아빠 육아휴직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있다. 질문한 상대에 맞게 적절하게 다르게 답하려고 애쓰는 나 자신이 우스워 보였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정답을 찾았다.


“내년엔 육아휴직을 못 가거든요. 사용기한 만료.”


팩트였다. 실제로 나는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날에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쓸 수 있으니 쓰는 거라고 답한 것이다.





언젠가 육아휴직을 가려는 아빠들과 그 주변사람들은 좀 참고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조금 더 첨언해본다.

‘남자가 왜 육아휴직을 가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거기에 그 이유라는 것도 응당 특별해야 한다는 뉘앙스마저 있다.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간다면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거나 다른 계획이 있을 것으로 확신하는 시선이 있는 것이다. 육아는 핑계일 뿐, 적당히 쉬면서 자기계발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한다.


솔직히 육아휴직을 계기로 자기계발을 하는 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 시간에 육아에 지쳐 있는 것보다 적절히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복귀 이후의 삶에 대비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제발 타인의 사적인 영역을 탐구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풍토가 조성되면 좋겠다. 육아는 엄마에게만 주어진 몫이 아니다. 앞으로 어떤 아빠가 육아휴직을 간다고 하면 슬기롭게 이 한마디만 해 주길 바란다.


“잘 다녀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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