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시작부터 접촉사고 액땜
상쾌한 마음으로 시작한 육아휴직. 제이와 보낼 수 있는 많은 시간.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책도 읽고, 미뤄뒀던 운동도 시작할 수 있는 기회. 게다가 새로운 취미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잠시 동안의 휴직이 내게도 해방감을 주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치 구름 위에서 공중제비라도 돌 수 있을 것 같이 붕 떠 있던 마음을 내려놓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일상에 적응하느라 여유부릴 시간은 없었고, 체력은 쉽게 바닥났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이 시작된 첫 주 목요일. 모처럼 나를 위한 하루를 보낼 여유가 생겼다.
“아빠, 나 학교 끝나고 태권도 차 타고 가는 거 알지?”
“아, 그런가?”
“오늘 목요일이잖아.”
“아, 그래. 오늘 많이 추운데 차라리 잘됐다. 그래도 가방 받으러 갈까?”
“뭐 하려고 와.”
“그래, 그럼 학원 잘 도착하면 연락해. 알았지?”
학교 수업이 한 시간 더 많은 목요일에는 학원 차량을 이용하여 등원하도록 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이 생긴 것이다. 제이가 등교한 후 헬스장에서 아침 운동을 했다. 평일 아침 9시 전후의 헬스장은 한산했다. 부지런한 회원들이 새벽 운동을 마치고 출근길에 나선 이후라서 나 같은 헬린이는 눈치보지 않고 여유롭게 운동을 즐길 수 있었다. 오후에는 집 근처 대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학생식당에서 학식을 먹으며 대학생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귀 기울여 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침 아내도 퇴근이 늦는다고 하여 저녁 시간까지 캠퍼스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제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학교는 잘 마쳤는지, 학원에는 잘 도착했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제이는 학원 차를 타고 할머니 집으로 귀가해서 저녁 먹고 놀기로 했다. 집 근처에 육아를 도와주시는 부모님이 계신다는 사실에 사뭇 감사했던 하루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의 하루를 질투라도 했던 것일까?
처가에 들러 제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진입해 언덕을 오르는데 저 멀리 감속 없이 급하게 내려오는 차가 언뜻 보였다. 코너를 동시에 지나가면 위험할 것 같은 서늘함이 느껴져서 일단 멈춰서 기다렸다.
아뿔싸, 내려오던 그 차는 내 차를 못 봤는지 아니면 코너링이 서툴렀는지 중앙선을 한참 넘어서 내려오다가 내 운전석 옆으로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그 찰나에 내려오던 차에게서 느껴지던 묘한 불안이 그대로 사고로 이어졌다. 차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찌그러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일찍 데리고 올걸. 내가 미쳤지.’
“제이 괜찮아?”
“응. 차 박았어? 뭐야?”
“놀랐지? 사고 났어.”
“아냐. 괜찮아.”
“제이는 차에 잠깐 있어봐.”
다행히 제이는 별로 놀라지 않은 기색으로 창밖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놀란 쪽은 오히려 나였다.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조수석 방향으로 내려서 차상태를 살폈다. 차는 옆면끼리 절묘하고도 완전히 붙어 있었다. 상대방 차량에 다가서자 창문이 열렸다.
“괜찮으세요?”
“아, 네… 어떡해요. 죄송해요. 올라오는 차가 있는지 못 봤어요.”
운전자는 나보다는 약간 연배가 있어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많이 놀랐는지 차에서 내릴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뒷좌석을 보니 카시트에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다행히 아이도 괜찮아 보였고,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사고 현장 증거용으로 사진 몇 장을 찍은 뒤 주차공간으로 차를 옮겼다.
운전석 문짝과 휠, 범퍼, 라이트 등 많은 곳이 파손된 상태였다. 날이 매섭게 추웠다. 밖에 조금만 서 있어도 이가 덜덜 떨리는 밤. 하필 이런 날에… 상대방도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의연한 척했던 나도 막상 차 상태를 자세히 확인하고 나니 그제서야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어대기 시작했다. 곧 양쪽 보험사에서 모두 출동을 해서 사고 내용을 확인하고, 사고 접수를 완료하는 순간까지도 내 머릿속은 온통 자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가 괜찮나요?”
“괜찮아요. 이쪽도 아이가 타고 있었죠? 죄송해요. 저 때문에 하필 집에 다 오셔서…”
“아니에요. 그나저나 아가가 괜찮아야 할 텐데요.”
사정을 들어보니 그녀는 퇴근 후 시댁에 맡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평소보다 늦어서 서둘렀는데 미처 내 차를 못 봤다고 했다. 우리 둘 다 비슷한 상황이었다. 부모님 댁에 맡긴 아이를 데리고 오는 길에 한 사람은 사고를 내고, 다른 한 사람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다음 날, 맞은편 차를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이 녹화된 블랙박스 영상에 힘입어 군말 없이 상대 측 보험사에서 전부 처리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제이를 조금만 더 일찍 데리고 왔더라면 애초부터 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내게도 절반쯤 책임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별일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솔직히 다치지 않았으니 정말 별일 아닌 것이 맞긴 했다. 그럼에도 ‘그 시간까지 뭐 하고 돌아다니다가 그랬냐’, ‘운전을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와 같은 비난의 환청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제이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더 괴로웠을까 싶은 마음에 그날 밤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그 핑계로 하염없이 맥주캔을 땄다.
‘그래, 액땜 한번 크게 했다고 생각하자.’
수리된 차는 얼마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직 엄동설한 접촉사고의 얼얼함이 채 가시기도 전, 또 한 번 액땜의 기운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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