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아침이라는 판타지

예민한 아빠의 현실 아침 일상

by 신지훈

단언컨대 육아휴직의 꽃은 아침 시간이다.

특히 등원이나 등교를 준비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조금 과장하면 하루 스트레스의 절반 이상을 아침에 받는다. (배고프면 예민해지는 내 성격 탓도 조금은 있다.) 아마도 다양한 이유들이 합쳐져 모두가 힘든 아침이 이뤄지는 것 같다.


제이를 등교시키는 일은 낯설지 않았다. 육아휴직 전에도 이미 주 52시간 근무제도와 더불어 자율근무제도(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가 회사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제이를 등교시키고 10시쯤 출근하곤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고 집에서 학교에 갈 수 있어서 제이도 좋아했고, 나 역시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아침 시간만큼은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어려울 게 뭐 있나? 회사도 안 가는데, 뭐가 힘들다고. 얼마든지 우아하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내가 생각했던 우아한 아침은 이런 것이었다. ‘부지런히 일어나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음악과 책을 잠시 즐긴다. 출근하는 아내를 배웅한 다음, 부드럽고 상냥하게 제이를 깨우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고 손을 잡고 학교에 간다. 등교를 시키고 동네 한 바퀴 여유롭게 산책한다.’ 지금 보면 판타지인데 처음에는 당연히 가능할 거라 믿었다. (이렇게 하시는 아빠가 있다면 진심 존경합니다.)


현실의 아침은 이렇다. 오전 7시가 조금 안 된 시간. 출근하는 아내를 함께 배웅하고 나서 잠시 잠을 깬다는 핑계로 누웠고, 제이도 침대로 다시 향했다. 조금 꾸물거리다가 화들짝 놀라서 일어난 뒤 아침을 뭐 해줘야 하나 고민하며 주방에서 방황하였다. 백지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미리 해둔 국이나 반찬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오늘따라 마땅히 먹일만한 것이 없었다. 전날 밤 아내가 추천해줬던 아침 메뉴들을 하기에는 이제 시간이 부족했다.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이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머리를 긁적이며 냉장고를 뒤적이다가 그나마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유부초밥 재료를 꺼냈다. 밥솥에서 밥을 푸고 초밥 재료를 뜯어 절반의 인스턴트 아침 식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접시 위에 유부초밥이 쌓이는 만큼 주방은 집들이라도 준비한 것 같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간단한 요리 하나 하면서 온갖 요란을 떤다고 자책해봐도, 음식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치우는 일은 최고 난이도이다. (아내는 식사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주방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타입인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정말 의문이다.)


유부초밥을 차려놓고 급히 잠을 깨웠다. 한 번 불러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한 번에 일어난다면 그건 이미 깨어 있었다는 의미이다. 여러 번 불러도 별 반응이 없자 나도 모르게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성을 붙여서 이름을 불려주며 내가 화 났음을 알렸다.


“신제이, 너 학교 안 갈 거야? 빨리 일어나.”

“…….”

“신. 제. 이.”

“왜 짜증내. 일어났다고.”

“누가 짜증을 내. 가방 챙겼어? 빨리 좀 해.”


그제야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침실에서 나온 제이는 식탁에 앉아서 아빠가 차린 유부초밥을 조용히 그리고 한참 노려보았다. 가뜩이나 기분도 좋지 않게 일어났는데, 메뉴까지 마음에 들지 않다는 무언의 시위. 누구라도 잠이 덜 깬 상태에서는 당연히 입맛이 없을 테니 참았어야 하는데 굳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제이, 뭐 하냐. 빨리 좀 먹어.”

“…….”

“맛없어?”

“먹고 있다고.”


금세 후회가 밀려왔다. ‘꼭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미안한 마음에 밥 먹는 사이 심심하지 않게 텔레비전을 켜 놓고 간단하게 양치질과 고양이 세수를 했다. 밥을 잘 먹고 있는지 힐끗 확인해 보고 공부방에 들어가 책가방을 체크했다. 어젯밤 알림장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는데 이런 날에는 어김없이 준비물이 있다. 급하게 제이의 방을 수색해서 준비물을 챙기고 알림장에 서명을 했다.


보온물통까지 챙겨서 책가방에 넣어주고 나오니, 식사를 마친 제이가 벌써 세수를 하고 있었다. 씻고 난 제이는 옷을 골라 입고 머리를 신중하게 매만졌다. 아침부터 버럭한 게 미안해 옆에 다가가 멋쩍게 “예쁘네.”라고 말을 걸었다. 제이는 무표정하게 머리를 빗어 내렸다. 서늘하고도 긴장감 높았던 등교 준비는 그렇게 끝이 났다.


집을 나서기 전에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제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우리는 곧 학교 앞에 도착했다. 터벅터벅 걸어가던 제이는 운동장 중간쯤 되어서부터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너 번쯤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런 제이를 보면서 다음에는 화낼 일을 만들지 말자 결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 아빠, 미안해.


착한 딸. 엄마에게 오늘 아침의 일을 부디 말하지 않길 빌며, 앞으로는 절대 쉽게 화내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침,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신. 제. 이. 빨리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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