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자의 아침 외식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오전 8시 50분

by 신지훈

제이가 오랜만에 할머니 집에서 자기로 한 다음날. 유독 추운 날이기도 하고 밖에서 아침 식사도 해결할 겸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 주었다. 모처럼 출근하는 기분으로 아내를 내려준 뒤에 향한 곳은 5분 거리의 을지로. 나의 사무실이 있는 동네였다.


근방에서 숙취에 괴로워해본 사람치고 안 가본 사람이 없다는 OO동 북엇국 근처 파출소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혼자만의 아침 식사를 즐길 기대감과 함께 식당에 들어섰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순간 당황했다. 이제 겨우 아침 7시 50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기다리다 자리를 안내 받았다. 테이블 곳곳에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동시에 주문을 했다. 메뉴가 하나라 딱히 주문이랄 것도 없었다.


“여기, 북엇국 하나에 계란후라이 하나 추가요.”

“네~, 14번 북어 하나 알 하나.”


나의 주문은 경쾌한 목소리로 주방에 전달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이 식당은 전날 술이 과해 도저히 제 컨디션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어려울 때 마다 들렀던 곳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반복된 육아휴직 생활 패턴에 다소 지친 나를 위한 아침 식사가 필요했다. 화려한 음식은 필요 없었고, 속 깊은 곳까지 든든해지는 국밥 한 그릇이면 충분했다. 주문한 지 3분도 안 되어서 곧바로 음식이 나왔다. 먼저 뜨끈한 국물을 조심스레 맛봤다.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는 국물이 역시 일품이었다. 본격적으로 왼손에 숟가락, 오른손에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고, 두부와 국물까지 (무료로) 추가해서 든든한 한 끼를 즐겼다.


조금 과장해서 따뜻한 국물이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님의 마음처럼 소중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빵빵하게 느껴지는 윗배를 타고 후회가 올라왔다. 신나서 먹다 보니 다이어트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여유 있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차에 오르기 전 파출소 안에 오손도손 모여 앉은 경찰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느 사무실의 흔한 아침 회의 풍경 같아서 잠시 구경했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연설하시는 분이 파출소장쯤 되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내가 없는 회의 분위기는 어떨까 떠올려 보았다. 복잡한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차들을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오전 8시 50분. 집에 도착했다. 아침에 많은 일들을 한 것 같지만 아직 9시도 채 되지 않았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회사에서 도착한 문자메시지. 오늘 아침에 나올 사내 방송 안내였다. 매주 월수금 아침 8시 50분이면 그날의 주요 뉴스 브리핑이 담긴 문자 메시지가 날아온다. 항상 같은 시간에 도착하다 보니 ‘이제 곧 업무 시작되니까 허리 똑바로 펴고 업무를 준비하라’는 직장 상사의 시그널 같은 기능을 한다. 나는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온 문자나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을 때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누워서 뒹굴까 하다 주말에 미뤄뒀던 빨래와 청소를 시작했다. 빨래는 세 번에 나눠서 했다. 약한 술에서 독한 술로 이어지는 술자리처럼 흰 수건, 밝은 옷, 어두운 옷 순서로.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청소기를 돌렸다. 청소기는 눈에 확연히 보이는 머리카락 정도만 걷어내는 용도로만 사용하는데 사용한 지 4년 가까이 되어서인지 흡입력이 신통치 않았다. 새 제품을 하나 사보자고 이야기해볼까 생각하며 청소기를 멈추고, 정전기를 활용하는 방식의 먼지포 밀대를 들었다. 집안 곳곳의 바닥 먼지와 머리카락을 수거하는 데 이만한 게 없다고 혼자 품평을 했다.


참, 중요한 절차가 남아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팟캐스트 방송을 재생해야 한다. 오늘은 지난 금요일에 업로드 된 ‘씨네타운나인틴’을 들어야 했다. 영화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영화 얘기보다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와 아재들의 잡담이 대부분이었다. 평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집안일이 귀찮고 힘들다고 투덜대면 팟캐스트를 권하곤 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하자는 의미였다. 더불어 집안 곳곳을 이동해야 하는 업무 특성을 고려하여 블루투스 이어폰은 필수다. 해본 사람만이 아는 노하우인데 적고 보니 무척 소소하다.


청소를 하고 나니 벌써 점심 시간이었다. 아내가 주말에 해놓은 된장찌개를 다시 끓여 먹으며, 뜬금없이 한때 종로 요리학원에 다니며 일식조리사 자격증까지 준비하며 요섹남을 꿈꿨던 총각 시절을 떠올렸다. 발로 만들어도 나보다 요리를 잘하는 아내를 만난 덕분인지 이제는 밥이나 계란후라이 정도 말고는 요리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다.


내일 아침에는 제이에게 뭘 먹어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년 열 두 달, 삼시세끼 자식들 밥을 챙기셨던 나와 우리네 엄마들은 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부부상담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길래 한쪽 팔을 기대고 지켜 보다 스르륵 낮잠에 빠져들며 생각했다.


‘제이야, 하루만 더 자고 오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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