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남문에서 법당으로 향하는 길은 아스팔트가 아닌 고운 모래로 덮여 있다. 걷기에는 운치 있고 발걸음 소리도 듣기 좋지만, 관리인들에게는 숙제 같은 길이다. 언덕이라 자동차가 미끄러지기도 하고 먼지가 날려 관광객들에게 불편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비가 한 번 크게 오면 모래들은 여지없이 씻겨 내려가 길은 금세 흉측하게 변해버린다.
그럴 때마다 업체를 불러 전등사 한쪽에 쌓아둔 모래로 길을 다시 평평하게 다진다. 효율만 따지자면 진작에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을 깔았겠지만, 회주 스님은 단호하시다. “절 마당은 흙을 밟는 곳이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전등사는 매번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다시 모래를 사 오고, 사람들의 수고를 쏟아붓는다.
비단 길뿐만이 아니다. 전등사의 운치 있는 경관을 위해 틈틈이 나무를 손질하고, 사찰을 둘러싼 정족산의 숲까지 세심하게 관리한다. 예전에는 그저 자연이 거저 준 자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고즈넉함을 유지하는 데는 생각보다 막대한 ‘돈’과 정성이 들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금풍양조 사장님과 전등사 사찰음식팀이 모여 ‘밀키트 제작’을 위한 회의를 했다. 서울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활동하셨던 사장님은 전등사의 깊은 장맛을 상품화해 보자고 제안하셨다. 회의가 끝난 뒤 식사 자리에서, 사찰음식을 배우던 제자 한 분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왜 절에서 돈을 벌려고 해요?”
사람들에게 절은 무소유의 공간, 돈과는 거리가 먼 청정한 곳이어야 한다. 그런 곳에서 회사처럼 제품 아이디어를 내고 수익을 논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찰의 실무자로 살며 마주하는 진실은 조금 달랐다.
유럽에서는 신부 수가 부족해 한 명의 신부가 여러 성당을 관리하다 보니, 사제라기보다 ‘문화재 관리인’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출가자가 급격히 줄어든 우리 불교의 현실도 이와 닮아 있다. 예전 같으면 스님들이 울력(공동 노동)으로 직접 해냈을 수많은 보수 작업이 이제는 모두 고가의 유급 인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여기에 악순환이 있다. 일손은 부족해지고 외부 의존도는 높아지는데, 재정은 사회의 빠른 변화와 기술적 요구를 따라가지 못한다. 신도 수는 줄어들고 입장료마저 폐지된 상황에서, 전통적인 보시만으로는 수억 원의 전기료와 문화재 관리비를 감당하기 벅찬 시대가 온 것이다.
많은 절들이 도량 내에 카페를 열고 전등사는 밀키트까지 고민하게 된 것은 ‘더 부유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스님들이 낡은 기와를 걱정하는 행정가나 관리인이 아닌, ‘수행자’라는 본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재정적 자립 없이는 천 년 도량의 정신도, 누군가 쉬어갈 공간을 지켜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가치와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고민은 때로 세속적인 욕심처럼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사찰이 닫히지 않고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자리를 유지하려면, 사찰은 역설적으로 세속적인 고민을 치열하게 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