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보다 강렬한 정적

광화문 광장에 수만 개의 의자가 깔렸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모여든 전세 버스들이 경복궁 일대를 거대한 성곽처럼 둘러싼 풍경은, 시위를 막아선 경찰 버스 대열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전국의 불자들이 한곳으로 모이는 날, 광화문에서는 ‘불교도대법회’와 ‘국제선명상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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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행사였지만, 실무자인 나의 마음은 솔직히 썩 내키지 않았다. 거대한 무대와 의전 속에서 어딘가 세력을 과시하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찰마다 배정된 인원 할당을 채우기 위해 보냈던 지난 몇 주간의 시간은 지독하게 세속적이고 소란스러웠다. 특히 지방 사찰의 경우, 대낮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새벽부터 길을 나선 신도들의 고충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전등사 역시 황금 같은 주말 낮에 신도들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다. 버스에 오른 신도들을 위해 시간차를 두고 식당을 섭외하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지정된 좌석으로 안내하는 인솔 과정은 전쟁같았다. 약 2시간 동안 분주히 신도들을 챙기고 나니, 어느덧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국악 공연이 광장을 메우기 시작했다.


약 5만 명의 인파가 운집한 광화문은 화려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드론이 촬영한 현장 영상이 송출되자 그 압도적인 규모에 묘한 전율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불경 소리는 신선함과 동시에 묘한 당혹감을 주었다.


image.png BBS 유튜브 캡쳐


문득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며 전도하던 이들을 보며 느꼈던 불편함이 머릿속을 스쳤다. 물론 우리는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행사를 진행 중이었지만,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우리에겐 신성한 이 불경이 누군가에겐 '소음'이 되지 않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이 불편한 이 걱정은 잠시 뿐이었다. 1부 법회가 끝나고 선명상 대회가 시작되었다. 원장스님을 비롯해서 명상으로 유명하신 분들과 함께 명상하는 시간이 있었다. 약 5만명의 인파가이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에 빠져들었는데 오히려 강력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을 때 발생하는 묵직한 에너지. 그것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수천 년간 이어온 수행의 힘이 광장으로 터져 나온 ‘고요의 폭발’이었다.


문득 예전 탄핵 시위가 생각이 났다. 당시 우리는 광장에서 투쟁의 구호 대신 아이돌 노래를 부르고 응원봉을 흔들며 시위를 하나의 축제로 만들었었다. 시위에 미처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은 카페에 미리 결제 커피를 결제해 시위자들을 응원하며 평화롭고 성숙한 시민 의식과 시위 문화는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시위는 시끄럽고 폭력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깨뜨렸던 그때처럼, 오늘의 행사 또한 ‘축제는 화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이 5만 명의 침묵이 주는 임팩트는 그 어떤 함성보다 강력했다.


image.png BBS 유튜브 캡처


주말 대낮, 번잡함의 대명사인 광화문이 이토록 조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움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그 적막 속에서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수많은 빌딩 숲과 자동차 경적이 생기기 전, 이 광장은 본래 이런 고요를 품고 있었던 장소가 아니었을까? 소음으로 덮여있던 광장의 진짜 얼굴을, 우리는 명상이라는 도구를 통해 잠시나마 되찾은 셈이다.


행사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던 마음도 어느새 가라앉았다. 어떤 단체가, 어떤 사상이 이 수만 명을 이토록 질서 있게 모으고 단숨에 침묵시킬 수 있을까? 5분간의 명상은 그 어떤 장관보다도 길게 이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들 정도로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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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5분이 지나고 광장은 다시 마이크 소리와 공연의 열기로 채워졌다. 행사가 남았지만 우리는 다시 강화도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머지않아 광화문을 메웠던 버스들도 다시 전국으로 흩어질 것이고, 광장은 다시 평소의 번잡함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 보았던 광장의 ‘원래 얼굴’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가장 강렬한 외침은 소리가 아니라, 스스로를 비워낸 침묵 속에 있다는 그 숭고한 저력을 말이다.



https://www.youtube.com/live/KcRywC9-aLc?si=Tvos4zaXZwEfqt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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