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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 ho Lee Jun 16. 2024

13. 아빠의 패션센스는 가성비

개인적으로 패션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옷을 구매 시 제일 우선되는 것은 가격이었다. 옷보다는 옷걸이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에 대한 아우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려 말했지만, 그냥 옷에 돈을 쓰기에는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렇기에 돈을 써서 옷을 사 입는 것도 분기에 한 번 정도였다. 사회생활 초년차에 어머니께서 삶의 지혜로 이야기해 주시길 “초년에 쓰는 버릇으로 평생 가는 것이 좋다 “ 조언해 주신 적이 있는 것도 영향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사회적 가치가 아닌 기능적 관점에서 옷을 접근하다보 패션에 대한 관심도 최소한으로 있기는 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였다. 나의 정체성이 뚜렷한 패션에 대해서 아내는 부담스럽다고 하였다. 보다 못한 아내는 나를 위해서 옷을 조금씩 사주었다. 잘 알려진 브랜드를 선호하는 아내는 백화점에서 옷을 사주었다. 결혼 전에 백화점은 정말 인생 이벤트로 출입하던 나였기에 그저 감사함으로 받았다. 내 입장에서 본다면야 굉장히 가성비 넘치는 투자수익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주요 가족행사나 개인일정이 있을 때는 아내의 체크를 받고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여전히 많이 사지는 않았다. 입는 옷만 입기도 하고, 내 눈에 좋은 옷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색깔만 다르게 사는 정도였다. 게다가 버리지도 않다 보니 이제는 옷가짓수가 굉장히 많아졌다. 그렇게 옷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 주요한 우선순위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세상 처음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될  새로운 식구가 올 준비를 하려니 생각을 조금 달리 해보기로 하였다. 출산 전 성별을 모를 때부터 우리는 아들이면 어떤 옷을 입힐지, 딸이면 어떤 옷을 입힐지 이야기하곤 했다. 딸이면 옷을 다양하게 입혀야 하는데 그것도 고민인지라 아들이 차라리 나은가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여기까지도 여전히 나에게 주요한 키워드는 가성비였다.


성별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아내와 매주 주말보다 밖을 돌아다니면서 출산에 대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이 옷도 사볼까 해서 다양한 옷가게에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때 어머님이 나에게 “아이는 금방 성장해서 옷 사지 말라”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뭐 그 시점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적당히 흘려 넘겼다.


그리고 어머님이 그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솔직히 나는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친척 중에 연년생이 있었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촌이 있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옷을 물려 입었다. 매년 계절마다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물려주셔서 옷이 항상 넘쳤다. 옷을 꼭 사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랄까 청개구리 같은 반항심으로 안 사주시니, 우선은 내 의지대로 아이의 옷을 준비해보고 싶었다.


특히 브랜드 옷은 특히 거의 관심 바깥으로 사본 적이 없었다. 나이키는 내 돈으로 처음 돈을 벌어서 사본 것 같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옷을 잘 사주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울컥 올라왔다. 그래서 내가 아내에게 백화점에도 가서 한 번 옷을 보자고 하였다. 나는 SPA 브랜드를 입어도 아이에게는 한 번 나이키와 같은 좋은 브랜드의 옷을 한 번 입혀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 옷 가격을 보니 생각이 급격히 바뀌었다. 가격과 옷에 적혀있는 숫자를 보고 충격에 빠졌기 때문이다.. 우선 가격의 시작선이 달랐다. 어린 시절, 동네 시장에서 옷을 사서 입기도 한 나에게 가격은 연례행사로 살만한 가격이었다. 물론 지금은 돈을 벌기 때문에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지 않은 가격이었다. 심리적 저항선이 있었다.


특히 옷에 적혀있는 숫자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5만 원이 거의 기본 가격대였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굉장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래서 가게에 있는 옷이 덜 화려한 것(덜 비싼 것부터)부터 시작해서 훑어보았는데 이게 기본적인 가격이었다. 정말 문화충격이었다.


그런데 이런 옷을 한 두 번 입고 나면 못 입는다니…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특히 우리 아이는 우량아에 속할 정도로 체격이 좋아서, 아이의 실제 월령보다 더 이후 월령에 맞춰 옷을 입혀야 했다. 다시 말해서 사놓고도 한 번도 못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육아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게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이게 참, 부모 된 입장에서 뭔가 아이를 위해서 해주는 데 있어, 망설임이 있는 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입힐 수는 없는 법, 보다 못한 아내는 당근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사실 아내가 당근을 뒤지는 것도 잘 몰랐다. 그런데 아내의 폰으로 쉴 새 없이 오는 알람을 보고 알았다.


 아내의 허락을 받고 아내의 폰을 열어 당근에 보니 아내는 정말 다양한 키워드로 당근에서 알람을 받아보고 있었다. 아내는 당근에서 열심히 옷을 사고 있던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의 옷이 당근에서 거래되는 게 신기했다. 아이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다 보니 옷이 굉장히 더러워질 수도 있는데 중고로 거래가 된다는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옷을 한두 번 입으면 다시 못 입기 때문에 생각보다 깨끗했다. 그리고 아이는 팔다리를 아주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옷을 의도적(?)으로 더럽히는 것은 생각보다 돌이 지나고 나서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옷은 생각보다 깨끗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사연으로 옷을 당근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에서 특정 브랜드의 특정 옷은 통풍이 잘된다던가,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로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상품이 올라오기 무섭게 바로 예약 배지가 붙고, 이어서 구매확정까지 이어지는 일이 빈번하였다. 여기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아내는 당근으로 옷을 구매한다. 이쯤 되니 나도 아이의 옷이라는 키워드만 보이면 눈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선착순으로 아이 옷 나눔이 있었는데 정말 본능적으로 손을 들었다.  오래간만에 해보는 1등이었다.


누가 채갈까 봐 뛰어서 옷을 받아왔다. 그런데 받아서 보니 옷도 여러 벌이 었고 모두 다 비싼 브랜드였다. 중고로 파셨어도, 소고기는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옷들이었다. 아내도 훑어보니 너무 좋은 옷을 주셔서 고맙다면서 선물을 다시 챙겨드릴 정도였다. 여로모로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아이의 옷을 획득하였다. 이런 것에 기뻐할 줄은 몰랐다.


이전에 나는 내가 나온 대학원의 기념품 스토어에서 아이의 옷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이 것도 해외에 끝장나간 친구가 있어서 큰 마음먹고 산 것이었는데 이 옷도 한 번인가 두 번 입었다. 아이의 성장은 큰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굉장한 비용을 동반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적당히 계획적으로 살다가 적당히 삶을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이 모든 계획을 일거에 수정하게 되었다.  그래도 뭐 아주 싫지는 않았다.


그래도 옷을 사서 막상 입혀보니 생각보다 입히는 재미가 있었다. 커서는 입기 어려운 화려한 옷을 아이는 매일 입는데 그게 생각보다 귀여웠다. 여기에 뜻 모를 동작이나 웃음이 겹치게 되면 더 귀여웠다. 이게 어른들에게는 꽤 큰 즐거움이었다. 장인어른, 장모님이나 부모님이 오면 옷 하나에 집이 자지러지게 웃었고, 동작 하나에 기뻐 어쩔 줄 모르셨다. 아이를 낳았으니 하는 말이지만, 손자, 손녀가 왜 부모에게 효도인지 약간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잠깐이었지만 말이다.


그 웃음을 보면서 나도 이제 아이의 옷에 점차 신경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아내가 출근하고 내가 아이를 보다 보니 아이의 옷은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종종 옷에 한두 군데는 포인트를 준다. 예를 들어 상하의가 모두 블랙이면 양말은 레드처럼 아주 선명한 원색을 신는 것을 즐긴다. 포인트를 준다는 생각에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아이의 원색 옷과 맞물리니 아주 다양한 스타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형광색 옷에 원색이 섞이는 것은 기본이었다. 우리 부부의 눈에는 굉장히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오래 일한 처제의 눈에는 아니었나 보다. 워낙 아이를 좋아하기에 우리 아이를 굉장히 아껴주던 처제인지라, 굉장히 잔소리 아닌 충고를 많이 해주기 시작하였다. 너무 지나치면 차라리 옷을 사주던가…라는 볼멘소리라도 해보겠는데, 정말 옷을 사주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많이 신경 써주었다.


그런데 아빠인 나도 옷 스타일을 안 바꿨는데, 설마 아이 스타일이 바뀌겠는가? 그리고 아이니까 이런 옷을 입어도 귀여운 것이고 나중에는 입고 싶어도 안 입거나 못 입을 수도 있을 테니 우선은 그냥 봐주고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날에는 상하의 세트로 산 옷을 입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없어서 처제의 잔소리도 잦아든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아이가 주위 모든 가족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니 좋은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나의 어린 시절은 그렇지 않았기에 아이가 이런 사랑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기쁨이기도 하다.


앞에서 아이의 옷에 대한 가격을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 옷이 아니어도 모든 물건이 비싸다. 운이 좋게 그 간 삶에서 돈에 대한 걱정을 하고 산 적은 없었다. 돈을 적게 쓰는 습관을 부모님께 잘 훈련받아서 신입사원부터 급여가 생활하는 데 있어 모자라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아이를 만나서 살아보니, 앞으로도 이런 삶이 지속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감이 가끔 엄습한다. 이전에 본 어떤 인터뷰 영상이 기억났다. 인터뷰 중에 부자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렇게 부자를 설명하였다. “부자는 늦은 저녁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했을 때, 택시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연봉과 집에 의해 저울질되어 숨이 턱 막히는 목표보다는 나에게 도전해 봄직한 목표로 느껴지는 목표였다.


매일 사소한 곳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매일 부자의 마음을 갖고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의 선택권을 줄 수 있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비록 새벽에 깬 아이 때문에 오늘은 너무 피곤하지만 그래도… 아빠이니까 한번 해보자.


이전 12화 12. 이유식,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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