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가기 무섭게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봄 즈음에 육아휴직을 한 것 같은데 벌써 2개월이 지나갔다. 아내는 출근에 익숙해진 것 같고, 아내와 나 사이에 분담해야 했던 육아에 대한 부분도 어느 정도는 구분이 되기 시작한 것 같다.
아이가 아침에 잠에서 깨면 아내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나는 일어나서 아이를 챙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을 먹이고 놀아주는 사이 아내는 출근 준비를 한다. 그리고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은 아내가 한다. 그 사이 나는 집을 정리하고 빨래나 청소를 챙기는 식이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온전히 자유시간일 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정리나 집안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간다. 처음 육아휴직을 했을 때는 그간 하지 못했던 일을 해치워야겠다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일이 늘어난다.
결혼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아내와 나는 해야 하는 일의 영역을 잘 분리하고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의 영역이 재조정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독박육아라는 말을 싫어했다. 상대방은 집의 경제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독박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경감시켜 줄 이 없이 육아나 근무를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독박”이라는 단어가 이해되는 요즈음이다.
점차 아이에 관련된 일을 대부분 하는 상황에서 최근 들어 조금씩 내가 더 분담하는 일이 있다. 바로 이유식이다. 이유식 전에 분유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젖병에 꽂을 젖꼭지의 사이즈를 몰라서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첫날 젖꼭지를 새로 사기 위해 생전 처음 가는 지역까지 뒤져서 젖꼭지를 사 와 분유를 먹인 적도 있다.
그렇게 처음에는 다사다난했지만 분유는 먹이는 방식과 시간이 굉장히 고정되어 있다 보니, 이후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유식은 이와 많이 달랐다.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부도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요리에 그리 익숙지 않았다. 음식에 대해서 영양소를 공급하는 방식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었고 좋아하는 음식도 식감 위주의 곱창 등으로 한 정 되어 있었다. 아내가 격려해서 매주 하던 요리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만둔 터라 이유식에 대해서는 소위 말하는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요리는 아내가 한동안 계속 전담하였다. 아내는 이유식을 제조하는 기계부터 시작해서 이유식에 관한 책을 사서 매일 저녁마다 요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식재료를 사서 냉동실 한편에 가득 채워 넣기 시작하였다. 그중의 하나는 소고기였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처음에 고기를 저녁에 먹나 했지만 이 고기는 모두 아이를 위한 고기였다. 심지어 한우였다.
그래서 아이의 음식에는 항상 소고기가 있었다. 뭔가 아이에게 약간의 질투를 느낀 첫 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라도 그렇게 했겠지만 말이다. 아이는 소고기를 굉장히 잘 먹었고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아내는 더 열심히 매일 요리를 하였다. 나를 포함한 양가 부모님은 이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연신 치켜세워주셨다. 하루 24시간을 나를 돌보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게 엄마의 사랑인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내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는지라 어느 시점부터는 무작정 만드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다양한 옵션을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그중의 하나는 퓌레와 빵이었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아이가 뱉어내거나 장난이라며 바깥으로 던질 때가 종종 있었다. 먹이는 입장이 되었을 때도 굉장히 화가 나는 상황인데 만드는 사람의 입장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 상상이 안 되는 그런 상황이 계속 생겼다.
이때 아내는 빵을 먹이기 시작했다. 빵과 치즈를 적절히 조합해서 밥대신 먹이는 것이다. 전일에 만들기에는 일로 인해서 바쁠 때도 있어서 이 경우 어지간하면 늦게 들어와서도 밥을 만들었지만 너무 피곤한 경우는 빵과 치즈를 먹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여기에 퓌레를 섞여서 먹이기도 했다. 퓌레는 과일을 갈아서 체로 걸러낸 형태의 음식을 말하는 것으로 나도 처음 알았다.
이런 퓌레를 밥 위에 살짝 올려놓고 아이를 유도해서 밥을 먹이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 우유에 밥을 말아먹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싶지만 이제는 너무 이해가 된다. 우선 먹이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빵과 치즈는 플랜 B에 해당하는 음식일 뿐 아닌 문제를 조금 더 다각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이미 제조된 이유식을 사거나 이유식 밀키트를 사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면 역시 시장은 반응해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중에 밀키트는 나에게 나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만들기에도 너무나도 쉬었던 것이다. 나는 이전에 이미 유튜브를 보고 마제소바나, 부대볶음, 목살찜 등 다양한 요리를 소화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 요리들을 보고 칭찬해 주었는데 그게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이유식을 예고 없이 맡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매뉴얼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뉴얼에 밑줄까지 쳐놓으면서 나에게 이유식 조리를 부탁하였다. 그렇게 이유식 만드는 날은 예고 없이 다가왔다.
그날은 어린이집 하원을 마친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이유식을 만들어달라고 문자를 남겨놓았고 부엌의 인덕션 옆에는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고기를 볶고 이후 야채를 볶은 이후, 마지막으로 물과 밥을 부은 다음 졸여야 했었다.
집에 압력밥솥이 없기 때문에 아내가 밥은 미리 해놓고 나가서 어렵지 않았다. 20분도 걸리지 않아서 빠르게 하였다. 퇴근 후 아내의 검사를 맡는데 아내가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 정도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이게 시작이었다. 어쩔 때는 말없이도 재료가 부엌에 올려져 있는 경우가 있었다. 눈치 있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유식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이유식을 만들 수 있는 아빠가 되었다.
대체로 이유식을 잘 조리해서 아이에게 주었지만 종종 재미난 경험들도 있었다. 이유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조리순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한 번은 고기를 볶고 물을 부은 다음 야채를 넣고 삶은 적이 있었다. 나는 별반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종 결과물의 상태와 들어간 재료의 조합은 동일하니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냄새를 맡아보고 먹어보니 그 맛은 정말 달랐다. 아내는 삶는 것과 볶는 것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요리에도 다양한 세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각이 약한 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지 않은 서툰 일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재미있었다. 새로운 지식과 경험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오감의 범위를 늘려주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도 이런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외에도 이유식을 만든 이후에 너무 뜨거울 경우 아래에 위치한 음식이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섞어주어야지 아이가 먹을 때 뜨거워서 뱉지 않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유식을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양소가 고루 들어가도록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이유식을 만든 이후 계량을 잘해야 한다는 것, 아이의 감각 발달을 위해서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 이유식을 주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그 이유식의 재료를 보고 아내에게 전달해주기도 하였다. 그래야 아이가 밥을 잘 먹고 필요할 경우 식습관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리는 잘 못하기도 하고 재미를 크게 느끼는 분야는 아니기 때문에 아내가 요청할 때문에 이유식을 만드는 편이다. 마치 운전과도 같은 느낌이다. 나는 운전에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가족의 운전은 아내가 책임지고 있다. 요리도 비슷한 관점으로 아내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하지 못한다”와 “했었고, 할 수 있다”는 다르다. 나는 운전을 했었기 때문에 운전을 필요하면 할 수 있다. 요리도 이제 그러한 능력의 범주에 들어갔다. 그렇게 가족 내 역할이 더 긴밀하게 엮이기 시작한 것 같다. 게다가 밀키트가 이렇게 잘 나오는데 요리를 이제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다. 아이 때문에 배워야 하는 기술이 갑자기 많이 늘어난 느낌이다. 어떤 재화를 다듬는 것이 아닌, 인간을 위해 쓰는 기술이다 보니 정말 배워야 하는 게 많다.
그리고 육아기간 중 습득한 지식은 특정 시기에만 쓰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가면 사라질 수 있다. 기록을 하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기록하기 쉽지 않기에 기억으로만 남는 게 대다수의 육아 지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아에 대한 부모님의 고생과 경험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의식적인 배려와 지원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각설하고 앞으로 내가 공부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때로는 내려놓아야 할 많은 지식에 대해서 꾸준히 정리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지금 이렇게 쓰는 아빠의 육아휴직에 관한 글처럼 말이다.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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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가기 무섭게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봄 즈음에 육아휴직을 한 것 같은데 벌써 2개월이 지나갔다. 아내는 출근에 익숙해진 것 같고, 아내와 나 사이에 분담해야 했던 육아에 대한 부분도 어느 정도는 구분이 되기 시작한 것 같다.
아이가 아침에 잠에서 깨면 아내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나는 일어나서 아이를 챙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을 먹이고 놀아주는 사이 아내는 출근 준비를 한다. 그리고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은 아내가 한다. 그 사이 나는 집을 정리하고 빨래나 청소를 챙기는 식이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온전히 자유시간일 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정리나 집안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간다. 처음 육아휴직을 했을 때는 그간 하지 못했던 일을 해치워야겠다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일이 늘어난다.
결혼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아내와 나는 해야 하는 일의 영역을 잘 분리하고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의 영역이 재조정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독박육아라는 말을 싫어했다. 상대방은 집의 경제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독박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경감시켜 줄 이 없이 육아나 근무를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독박”이라는 단어가 이해되는 요즈음이다.
점차 아이에 관련된 일을 대부분 하는 상황에서 최근 들어 조금씩 내가 더 분담하는 일이 있다. 바로 이유식이다. 이유식 전에 분유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젖병에 꽂을 젖꼭지의 사이즈를 몰라서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첫날 젖꼭지를 새로 사기 위해 생전 처음 가는 지역까지 뒤져서 젖꼭지를 사 와 분유를 먹인 적도 있다.
그렇게 처음에는 다사다난했지만 분유는 먹이는 방식과 시간이 굉장히 고정되어 있다 보니, 이후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유식은 이와 많이 달랐다.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부도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요리에 그리 익숙지 않았다. 음식에 대해서 영양소를 공급하는 방식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었고 좋아하는 음식도 식감 위주의 곱창 등으로 한 정 되어 있었다. 아내가 격려해서 매주 하던 요리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만둔 터라 이유식에 대해서는 소위 말하는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요리는 아내가 한동안 계속 전담하였다. 아내는 이유식을 제조하는 기계부터 시작해서 이유식에 관한 책을 사서 매일 저녁마다 요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식재료를 사서 냉동실 한편에 가득 채워 넣기 시작하였다. 그중의 하나는 소고기였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처음에 고기를 저녁에 먹나 했지만 이 고기는 모두 아이를 위한 고기였다. 심지어 한우였다.
그래서 아이의 음식에는 항상 소고기가 있었다. 뭔가 아이에게 약간의 질투를 느낀 첫 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라도 그렇게 했겠지만 말이다. 아이는 소고기를 굉장히 잘 먹었고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아내는 더 열심히 매일 요리를 하였다. 나를 포함한 양가 부모님은 이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연신 치켜세워주셨다. 하루 24시간을 나를 돌보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게 엄마의 사랑인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내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는지라 어느 시점부터는 무작정 만드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다양한 옵션을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그중의 하나는 퓌레와 빵이었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아이가 뱉어내거나 장난이라며 바깥으로 던질 때가 종종 있었다. 먹이는 입장이 되었을 때도 굉장히 화가 나는 상황인데 만드는 사람의 입장은 얼마나 화가 났을까 상상이 안 되는 그런 상황이 계속 생겼다.
이때 아내는 빵을 먹이기 시작했다. 빵과 치즈를 적절히 조합해서 밥대신 먹이는 것이다. 전일에 만들기에는 일로 인해서 바쁠 때도 있어서 이 경우 어지간하면 늦게 들어와서도 밥을 만들었지만 너무 피곤한 경우는 빵과 치즈를 먹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여기에 퓌레를 섞여서 먹이기도 했다. 퓌레는 과일을 갈아서 체로 걸러낸 형태의 음식을 말하는 것으로 나도 처음 알았다.
이런 퓌레를 밥 위에 살짝 올려놓고 아이를 유도해서 밥을 먹이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 우유에 밥을 말아먹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 싶지만 이제는 너무 이해가 된다. 우선 먹이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빵과 치즈는 플랜 B에 해당하는 음식일 뿐 아닌 문제를 조금 더 다각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이미 제조된 이유식을 사거나 이유식 밀키트를 사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면 역시 시장은 반응해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중에 밀키트는 나에게 나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 내가 만들기에도 너무나도 쉬었던 것이다. 나는 이전에 이미 유튜브를 보고 마제소바나, 부대볶음, 목살찜 등 다양한 요리를 소화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 요리들을 보고 칭찬해 주었는데 그게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이유식을 예고 없이 맡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매뉴얼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뉴얼에 밑줄까지 쳐놓으면서 나에게 이유식 조리를 부탁하였다. 그렇게 이유식 만드는 날은 예고 없이 다가왔다.
그날은 어린이집 하원을 마친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이유식을 만들어달라고 문자를 남겨놓았고 부엌의 인덕션 옆에는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고기를 볶고 이후 야채를 볶은 이후, 마지막으로 물과 밥을 부은 다음 졸여야 했었다.
집에 압력밥솥이 없기 때문에 아내가 밥은 미리 해놓고 나가서 어렵지 않았다. 20분도 걸리지 않아서 빠르게 하였다. 퇴근 후 아내의 검사를 맡는데 아내가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 정도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이게 시작이었다. 어쩔 때는 말없이도 재료가 부엌에 올려져 있는 경우가 있었다. 눈치 있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유식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이유식을 만들 수 있는 아빠가 되었다.
대체로 이유식을 잘 조리해서 아이에게 주었지만 종종 재미난 경험들도 있었다. 이유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조리순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한 번은 고기를 볶고 물을 부은 다음 야채를 넣고 삶은 적이 있었다. 나는 별반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종 결과물의 상태와 들어간 재료의 조합은 동일하니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냄새를 맡아보고 먹어보니 그 맛은 정말 달랐다. 아내는 삶는 것과 볶는 것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요리에도 다양한 세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각이 약한 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지 않은 서툰 일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재미있었다. 새로운 지식과 경험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오감의 범위를 늘려주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도 이런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외에도 이유식을 만든 이후에 너무 뜨거울 경우 아래에 위치한 음식이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섞어주어야지 아이가 먹을 때 뜨거워서 뱉지 않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유식을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양소가 고루 들어가도록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이유식을 만든 이후 계량을 잘해야 한다는 것, 아이의 감각 발달을 위해서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 이유식을 주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그 이유식의 재료를 보고 아내에게 전달해주기도 하였다. 그래야 아이가 밥을 잘 먹고 필요할 경우 식습관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리는 잘 못하기도 하고 재미를 크게 느끼는 분야는 아니기 때문에 아내가 요청할 때문에 이유식을 만드는 편이다. 마치 운전과도 같은 느낌이다. 나는 운전에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가족의 운전은 아내가 책임지고 있다. 요리도 비슷한 관점으로 아내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하지 못한다”와 “했었고, 할 수 있다”는 다르다. 나는 운전을 했었기 때문에 운전을 필요하면 할 수 있다. 요리도 이제 그러한 능력의 범주에 들어갔다. 그렇게 가족 내 역할이 더 긴밀하게 엮이기 시작한 것 같다. 게다가 밀키트가 이렇게 잘 나오는데 요리를 이제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다. 아이 때문에 배워야 하는 기술이 갑자기 많이 늘어난 느낌이다. 어떤 재화를 다듬는 것이 아닌, 인간을 위해 쓰는 기술이다 보니 정말 배워야 하는 게 많다.
그리고 육아기간 중 습득한 지식은 특정 시기에만 쓰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가면 사라질 수 있다. 기록을 하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기록하기 쉽지 않기에 기억으로만 남는 게 대다수의 육아 지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아에 대한 부모님의 고생과 경험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의식적인 배려와 지원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각설하고 앞으로 내가 공부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때로는 내려놓아야 할 많은 지식에 대해서 꾸준히 정리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지금 이렇게 쓰는 아빠의 육아휴직에 관한 글처럼 말이다.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