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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 ho Lee May 26. 2024

10. 이제 잘 시간이야(제발...)

우리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분리수면을 결정하였다. 아무래도 부모의 수면습관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점에는 이 의사결정을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출산 전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아이를 위해 하나하나씩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을 본 지라 아내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집에 온 첫날부터 분리수면을 하였다. 처음에 아내는 아이와 함께 자려고 시도를 하였다. 하지만 이는 아내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이가 조금만 움찔하면 아내가 잠을 깨는 탓에 아내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옆에서 함께 자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민감한 사람을 옆에 두고 사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때는 이성적인 관점으로 정말 아내에게 방문을 열고 자라고 조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성적인 조언이 먹힐만한 상황이 아닌 듯보였다.


다행히도 2주간 집에서 양육을 도와주시기로 한 산후조리사님이 조언을 해주셔서 안방과 아기방의 문을 모두 열어놓은 형태로 아이를 분리수면하기로 아내와 합의를 보았다. 그 시점의 아이는 짧게 자고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였기에 이전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연속된 수면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뭐랄까 이 시기에는 전적으로 아내의 리드 아래 육아를 진행하였다. 당시에 나는 아이에 대한 애정보다는 양육자로서 책임감 정도만 갖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는 육아를 크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집에서 홀로 아이를 재워야 하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나도 아이의 수면패턴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계획적인 삶을 주요시 여기던 나에게 아이의 수면패턴도 비슷하게 계획적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관련된 책이나 유튜브 등을 보면서 학습하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렇게 좀 찾아보니 아이의 수면방법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콘텐츠가 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너무 많아서 힘들 정도였다. 국내외로 다양한 방식이 있었다. 대체로  크게 두 가지의 방식이었다. 아이를 달래가면서 재울 것인지, 아니면 아이가 스스로 피곤함을 느껴 재울 것인지로 두 방식 중 나는 선택해야 했다.


이 지점부터 아내와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길 원치 않았기에 아이를 안아서 재우는 것을 원하였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로 자본 적이 없는 아이가 잠에 이르기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우리 부부의 피로감은 더해져 갔다. 모두가 이 피로감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대안도 없었기에 마냥 버텨야 했던 시간이었다.


이런 상황을 회사에서나 삶에서나 좋아하지 않던 나는 아내가 없을 때 조금씩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기 시작하였다. 바로 울더라도 기다려보면서 아이를 재우는 방법이었다. 실험정신을 갖고 나는 1분부터 시작해서 거진 5분까지 단계적으로 시도해 보면서 아이가 스스로 잘 수 있게 유도해 보았다.


이런 모습을 아내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주제를 놓고 여러 번 대화를 나눈 것 같다. 최종적으로는 5분보다는 조금 짧은 수준만 울리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아이를 재우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다행히 아이는 이런 우리의 고민을 알아주기 시작하였는지 내 품에 안겨서 동요를 불러주면 금세 잠을 자기 시작하였다. 내 생전에 “엄마야 누나야”를 다 외워서 부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 별 것 아닌 일, 아이의 수면에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기뻐할 줄은 몰랐다. 특히 아이의 수면시간으로 하루의 계획이 일그러지면 정말 그 하루가 모두 망가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불쾌함은 꽤 오래갔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누구에게 말할 수 없었다. 대신해 줄 수 없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힘들었다.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힘을 내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는지라, 확실히 생후 백일이 되는 시점 전후로 아이는 이른바 통잠을 자기 시작하였다. 저녁에 깨더라도 스스로 자는 법을 아이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왜 다들 백일의 기적이라고 말하는지 알았다. 자연스레 가정에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잠을 잘 자기 시작하였다. 아이에게 연신 칭찬을 해주면서 나의 기쁨을 표현하였다. 아이는 이제 이런 말도 알아듣기 시작하였는지 한 단계 더 나아가 고도화된(?) 수면습관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바로 눕혀놓으면 알아서 자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부부가 정해놓은 수면시각은 저녁 7시였다. 6시에 밥을 먹고 6시 30분에 씻고 7시에 자는 일정이었다.  이 때는 정말 일정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막힘이 없었다. 7시가 되면 아이를 안아서 침대에 눕히고 인사가 나오면 바로 육아퇴근이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씩 웃고 가만히 있다가 그냥 잤다. 이렇게 잠을 재우는 것이 쉬울 줄이야, 어디 가서 자랑을 해도 될 정도였다. 백일 이후부터는 장모님이 아이를 보러 종종 오시는데 매번 우리에게 이렇게 순한 아이 보기 어렵다며 연신 칭찬을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데 이 정도가 순하다고 할 정도면 도대체 순하지 않은 아이는 어떤 아이인지 너무 궁금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회사 동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알게 되었다. 백일이 지나고 이백일이 넘어도 안 자는 아이는 정말 안 잔다는 것을 말이다. 어떤 아이는 통잠을 자지 않고 여전히 짧게 자고 깨는 것을 반복해서 엄마 아빠가 계속 새벽에 일어나는 삶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 아이는 정말 순한 아이였다. 정말 순한 아이였다.


그렇게 돌까지 아이는 정말 잘 잤다. 하루가 너무 편하였다. 드디어 삶이 안정되는 느낌이었고 계획은 제 궤도에 다시 오르게 되었다. 뭔가 가족이 비로소 내일을 이야기하고, 웃음이 넘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눕혀놓고 지켜보면 이리저리 구르다가 울지 않고 잤다. 마치 자야 할 시간을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돌 즈음 되니 아이는 걷기 시작하였다. 아이가 드디어 혼자 움직인다니 너무 신기하였다. 이족보행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무언가를 공부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고 모든 것은 배웠기 때문에 쉬어진 것일 뿐 처음에는 어려웠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의 수면 습관 역시 이에 발맞추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때 나는 그것을 몰랐다. 이게 굉장히 무서운 변화라는 것을…


아이는 잘 걸었고, 걸음 속도도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이렇게 대근육이 빠르게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하나가 더 발달하였는데, 바로 싫다는 표현이었다. 울음 외에도 손으로 거절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음식을 손으로 밀어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아이를 재우려는 시점에도 다른 행동패턴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아이가 수면을 거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혼자 자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예전과 달리 잘 자라고 말하고 아이를 침대에 눕혀놓고 오면 아이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나를 따라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아주 우렁찬 복식호흡 기반의 울음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아이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나와서 기다려보았다.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유아독존의 마음으로 정말 크게 울어서 이웃에게 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잠깐 울겠거니 했는데 이는 완전히 내 생각일 따름이었다. 아이는 정말 쉬지 않고 울었다. 3~5분 간격으로 나는 다시 들어갔는데 아이는 그때마다 울음을 그쳤다가도 내가 나가면 다시 울었다. 아이는 내일을 위해 체력을 적당히 소비하는 우리와 달리 매 순간 모든 체력을 소모할 각오로 살고 있었다. 즉 오직 울기 위해서 체력을 다 소비하고 있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수건이었다. 아이에게 수건은 애착인형 같은 존재였다. 작은 행주 같은 느낌의 수건이었는데 아이는 그 수건을 입에 물고 잤고, 깨어났을 때는 그 수건을 항상 한 손에 쥐고 신나게 흔들고 다녔다. 그 수건은 만능 치트키 같았다.


다시 집에 평안이 찾아왔다 수건만 주면 기존처럼 혼자 있다가 잠을 자곤 하였다. 그런데 잠깐이었다. 수건을 물고 자지 않고 나를 따라 두 발로 걸어 방밖으로 나왔다. 수건을 너무 오래 물어도 턱 발달이 될 수 있다고 해서 걱정임에도 아이의 수면을 위해서 한 선택이었는데 이 것은 총체적 난국이었다. 수건도 물고 씹어대는데 잠도 자지 않았다.


수면방식에 대해서 고민하는 과정에서 부부싸움이 다시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아이의 백일이 지나고 나서는 한동안 조용했는데 다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우리 부부도 함께 산지 몇 해가 흐른 탓에 나름 성숙하게 아내와 대화해서 이 상황을 해소하곤 했지만, 정말 아이로 인해서 집의 분위기가 좋아지다가도 금세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시점이었다. 나중에 교육 등 더 큰 안건 등이 등장하면 얼마나 더 이런 갈등에 직면하게 될까 생각해 보니 아찔해졌다.


최근 들어서는 아이가 아팠을 때 잠자는 것을 힘들어해서 안고 재웠다. 감기로 막힌 코 때문에 힘들게 자는 아기를 위해서 안고 흔들어주면서 재웠다. 한 2주 정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안아주지 않으면 안 자기 시작하였다.


아니 자는 법을 까먹은 아이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적응하는 것인가? 변화무쌍하게 아이의 수면패턴이 바뀌는데 너무 어려웠다. 점점 수면시간은 뒤로 밀리는데 자유시간은 사라져 버리고 아이만을 사는 사람은 되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처럼 바뀌는 기분이 들어 이때 약간의 우울함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지금도 안아서 재우고 있다. 최근 들어 아이가 피곤함을 느껴서 스스로 자도록 시도하고 있는데 잘되지 않아서 취침시간이 8시 30분에서 9시 이후로 밀리고 있다. 이로 인해서 우리 부부가 고통받고 있다. 자유시간도 자유시간이지만  아이의 수면시간은 성장과 직결되기 때문에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어나는 시간은 동일하거나 이른 시간이고, 중간중간 깨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삶의 에너지를 소진해서 피곤함을 느껴 회복하기 위한 수면이 아닌, 습관에 기반한 수면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된다. 피로가 누적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순간이 정신적으로 어른으로서 성장을 하고 감정을 컨트롤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의 아버지도 처음 태어난 순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로서 애정과 책임감이 크게 느껴졌다고 고백하신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화를 내지도 않고 항상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가셨다고 했다. 실제로 나는 아버지가 화를 낸 기억이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는 없다.


아이는 조금씩 말을 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고, 나의 대화를 알아듣는다. 어떻게 보면 정말 지금부터 아이와 대화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아빠가 되는 것일까? 문득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것도 계획을 세워야 하나 생각이 든다.


육아휴직도 절반 가까이 지난 만큼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이 많은데 참 어렵다. 아빠이면서 회사의 허리인 중간관리자로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공감과 격려가 너무 목마른 시점이다. 나의 아버지도 이렇게 고민이 많았을까? 아버지와 이야기를 다시 해봐야겠다. 이런 시간을 홀로 어떻게 견디고 지나갔는지 공감해 드리고 고생하셨다고 이야기부터 드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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