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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 ho Lee May 19. 2024

09. 처음 쉬어본 아빠의 불안감

육아휴직에 돌입한 지 벌써 2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반복된 패턴 속에, 어제와 오늘의 구분 없이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는데, 육아휴직 급여를 신청하라는 알람 때문에 이렇게 시간이 지나간 지를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휴직 이후에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가 나와 상관없이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구나 정도의 느낌은 갖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매일 접하던 디테일하고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삶의 패턴 속에서 회사가 차지하는 부분이 사라지니 그런 듯하다.


그럼에도, 내가 리딩하던 서비스 프로덕트에 대한 부분은 장기적인 계획도 꾸준히 고민할 정도로 여전히 애정이 많아 항상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서 지표나 기타 업무 현황에 대해서는 손이 나도 모르게 간다. 하지만 그 외 서비스에 대해서는 정말 관심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관심이 남아 있다면 아마도 함께 일했던 동료 정도에 대한 궁금증뿐인듯하다. 종종 관심 있는 기술 기사가 있으면 적합한 동료에게 여전히 공유해 주고 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는 나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분리가 되어 살아간 지 2개월쯤 되어가고 있다. 항상 일에 대해서 생각하던 습관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궁금했건만 이렇게 시나브로 내 몸의 물기가 마르듯 사라지고 있다.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가 언급한 것처럼 역시 사람을 바꾸려면 만나는 사람과 장소를 바꿔야 하나보다. 이렇게 쉽게 회사와 거리감을 둘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현재 정해진 육아휴직 기한은 9월이다.  복직기한을 9월로 설정할 때는, 연휴를 즈음하여 복직하면 되겠거니 하면서 다소 안일하게 설정하였다. 덧붙여 아내가 취업을 다시 하게 될 경우 맘시터를 구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맘시터가 잘 우리 가족의 생활 속에 안착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 속에 9월로 정하기도 하였다.


막상 9월이라고 할 때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했으나, 아이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정말 시간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날아가고 있고, 이 시간을 뜻깊게 보내야지 했던 생각은 구름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자연스레 마음속 저편에서 조급함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은 아무래도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한 본능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움이 아니었을까?


각설하고, 이런 조급함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로는 집중력의 저하였다. 경영계의 유명한 구루였던 피터 드러커는 지식노동자의 성과는 오롯이 문제해결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며,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로, 집중가능한 연속된 시간의 확보를 언급한 바 있다. 아이와 있다 보면 아이의 관심사는 시시각각 바뀌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아이의 집중력은 평하기에는 매우 짧다


자연스럽게 아이만 바라보고 있던 나 역시 관심사가 아이를 따라, 계속 바뀌게 되고 이는 집중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아이를 위해서 숏츠와 같은 영상을 육아휴직의 시작과 함께 보지 않았는데, 그게 아니어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아이와 처음 놀고 난 뒤에 한동안은 약간 벙벙하게 앉아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계획을 미리 정리해 놓고 아이의 수면시간에 맞춰서 실행하는 형태로 이러한 문제를 기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두 번째로 인간관계가 정리되다 못해 협소해지는 것을 느낀다. 넓고 얕은 인간관계라면 마냥 중요하지는 않지만, 말을 아직 제대로 못 하는 아이와 하루를 내내 보내다 보면 말할 기회가 굉장히 적어지게 된다는 점에 인간관계가 협소해짐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물론 아이에게 말은 하지만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는 않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특히 휴직을 하게 되면 회사에서 오는 대부분의 연락이 끊기게 되면서 그렇게 열심히 진동하던 폰의 알람은 언제 그랬다는 듯이 조용해진다. 정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걸러지게 되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회사를 아예 떠난 것이 아닌 입장으로서는 회사의 사람들과 향후를 위해서 열심히 능동적으로 대화를 지속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 마치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주인공 헥토르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업의 특성으로 인해서 뒤처지지 않을까 불안할 때가 있다. 내가 속한 IT서비스업은 다른 업들도 그렇지만 최근 들어 인공지능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해 그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업에서 이런 속도를 혼자 살 때는 그저 즐거움으로 반기며 공부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든 상황에서는 어느 때보다 효율적인, 그리고 생산적인 방식이 나에게 요구되고 있다. 일을 늘리기보다는 일을 최대한 줄이며 중요한 일에만 집중해서 하지 않는다면 정말 뒤처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지인들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아빠들은 공감한다. 그들은 아무래도 살면서 암묵적으로 가정의 책임감을 느끼고 살아야 했던 사람 들다. 아이를 갖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과거의 선배들도, 아이가 좋아서 아이를 가진 사람들도 모두 이런 책임감으로 인해서 육아휴직을 쓰는 것을 끝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쓰지 못한 경우들이 많았다.


동시에 이렇게 육아휴직을 쓴 나를 격려해 주며, 돌이켜보니 어린 시절 함께 놀아주지 못한 모습을 후회한다고 말해준다. 그렇다 어떻게 보면 이 육아휴직은 나에게 있어 아이라는 더 큰 가치를 선택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커리어를 계발할 수 있는 시간을 담보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이 시간을 정말 잘 써야 하는 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어떻게 이 시간을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첫 번째, 과거의 관점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동료들이 믿어주었기에, 이런 휴직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매번 동료들에게 “단기로는 회사일지언정 장기로는 사람이 먼저다”라고 언급하는 나이기에 내가 더 성장했어야 할 포인트는 어떤 부분들이었는지 고민해보려고 한다. 과거에 가지고 있던 나쁜 습관이나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되면 정리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아이가 돌을 지나고 나니 나의 행동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아이가 나의 잘못된 모습을 답습하기 전에 고치도록 해야겠다.


두 번째, 미래의 관점에서 전체적인 계획을 점검해 보려고 한다. 지금의 계획은 아이가 없던 시점에 세워진 계획이었다. 연초에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삶에서 주요한 가치와 함께 정리를 하는 편이다. 이 계획에는 가족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이제는 아이를 위한 최선의 경제적 지원을 넘어서 정서적으로나 든든한 버팀목으로나 어떤 것을 해주면 좋을지 고민해야겠다. 이 부분이 잡히게 되면 그래도 불투명한 삶에서의 두려움은 그래도 걷히고 어떤 액션이 필요할지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에 뵈었던 분도 그렇고 회사 동료 분은 한 가지 방법으로 아이와 함께 자고 1~2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서 자기의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이런 방식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려고 한다. 아이의 삶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보살펴야 하는 시기이지만, 이로 인해서 나라는 사람마저도 챙기지 못하면 이는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보니 지인들 역시 자신을 바꿔가면서 육아에 대응하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하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삶에 대한 몰입도가 굉장히 높아지고 있다. 내가 흔들리면 아이의 삶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삶의 불확실성을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보다 현재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일을 덜어내고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에센셜리즘부터 시작해서 GTD(Get Things Done)까지 정말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많은 책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보다 일을 덜어내고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 잘 되지는 않았는데 아이 때문에 이런 고민이 조금씩 해소되는 느낌이다. 역시 사람이란 구석에 몰려야지 긴장하고 달려드는 게 아닌가 싶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다. 아이를 가지기로 고민했을 때는, 삶에서 보다 더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이보다 더 큰 애정이 함께 하고 있으니, 다른 방법을 좀 더 탐색하고 고민해 봐야 시기가 도래하였고 아직 진행 중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시기가 나에게 소중하고 잊히지 않을 시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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