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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 ho Lee May 05. 2024

07. 아이는 매일 밥을 다르게 먹는다.

아이에게 있어 밥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성장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부부는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온 이후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을 어려워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산후조리사님에게 꾸짖음을 듣곤 했다. 그때 하루 꾸준한 영양 섭취가 얼마나 중요한지 들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FM으로 아이의 밥에 대해서는 굉장히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열 달을 품어 낳은 아내는 나보다 더욱 그러했던 것 같았다. 모유 수유도 쉽지 않던 상황에서 백일은 어떻게든 시도해 보겠다면서 아이에게 모유를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누군가 보기에는 고집이라고 보일만큼 억척스럽게 말이다. 평소에 잠이 많은지라 꽤나 피곤한 상황 속에서 아내는 열심히 유축기로 모유를 준비해 두었다가 아이에게 열심히 주곤 했다. 이전에 내가 알던 사람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었는데, 이런 게 모성애인가 싶었다.


이유식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이유식도 직접 만들곤 하였다. 한우 소고기부터 시작해서 아이에게 정말 많은 음식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모든 음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다. 아내도 요리를 다양하게 해보지는 못했기에 책을 사서 공부하면서 요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유식이라는 것도 추,중,후기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눠진다고 한다. 그래서 비싼 책도 여러권 사보면서 아내는 열심히 공부하였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면서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은 대학교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내는 엄마가 되고 있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항상 쫓기듯이 늦은 저녁까지 음식을 만들곤 했다. 저런 체력은 어디서 나오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시간이 흘러, 원재료는 점차 외부에서 수급을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갔다. 아무래도 아내도 이런 삶을 지속할 수는 없닫고 판단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가끔이지만 내가 아침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아침은 전날 저녁즈음에 외부에서 다 준비된 밀키트 형태의 재료를 가지고 적절히 조리를 했다. 조리 후에는 냉장보관 후 아침에 전자레인지 등으로 데워서 먹는 형태로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는 내 재능 바깥이라고 생각하여 잘 해먹지 않던 나도 이렇게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다.


다행히도, 아이는 이런 우리의 노력에 부응해서 굉장히 밥을 잘 먹었다. 이렇게 잘 먹어나 될 정도로 정량 안에서 또래보다 몇 개월은 빠르게 양을 늘려가면서 섭취하였다. 정말 건강 하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팔과 다리도 길게 쑥쑥 자라났고 몸무게도 동시에 빠르게 증가해서 또래 아이들보다 큰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렸을 때 모습이 그대로 간다고 보장하지는 않지만, 이때쯤부터 내 마음에도 뭔가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자라기 시작한 것 같다.


밥도 내가 만들고, 그렇게 만든 밥을 잘 먹어준다 것이 생각보다 이렇게 마음에 기쁨을 줄지 몰랐다. 아마도 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중 밥에 대한 기억은 없어서 더 그러했던 것같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굉장히 일이 많았다. 등산 등 외부활동에 아버지는 나를 꼭 데려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에 대한 기억은 굉장히 적다. 그래서인지 밥을 해주고 아이가 밥을 먹는 경험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이가 이런 모습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아이에 대한 애정을 만드는 데는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어본 경험은 좋은 재료로 쓰이고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아이 양육에 관한 어플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고, 여기서는 통계 등을 통해서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해주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우리 아이는 우량아에 가까웠다. 이런 것을 내가 신경쓰고 볼 줄은 몰랐다. 아이도 밥시간이 되면 무서울 정도로 나에게 달려와 울거나 부엌을 가리키면서 밥을 달라고 했고 정말 돌 전까지는 굉장히 즐거웠던 것 같다. 


아이의 식습관에 대한 괄목할만한 성장은 돌 이후에 이뤄졌고 이때부터 새로운 장이 열렸던 것 같다. 음식을 마냥 받아먹거나 입으로만 반응하던 아이는 이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그중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이 바로 손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분 좋은 손동작은 아니었다. 첫 번째 손동작은 거부의 손동작이었다. 이전에 배가 부를 때는 입으로 거부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손을 저어가며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하였다. 이게 아내한테는 조금 타격이 있었다. 아무래도 본인이 열심히 준비한 음식인데 손으로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동작은 아마 어 지가 한하면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손동작은 이제 음식을 던지는 동작이었다. 이전에 물건을 던지기 시작할 때는, 인과관계를 배울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여 막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말 그대로 물건이었다. 바닥에 던지면 안 되는 것이 아니고서야,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소음이 발생할 때도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윗집, 아랫집에서는 배려를 해주셨다.


하지만 음식은 달랐다. 관찰해 보니, 아이가 음식을 던지는 것은 순전히 재미였던 것 같다. 아이가 매번 던지고 나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내가 관심을 주지 않자 그제야 다시금 먹기 시작하였다. 


처음 이렇게 기대하지 않던 행동에 대해서는 화가 엄청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세 살까지는 혼내지 말고 참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여러 번 마음을 부여잡으면서 참았다. 물론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ChatGPT를 켜고 대화하면서 화를 낸 적은 있었다. 그런데 이 마저도 아이가 따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이는 무서울 정도로 나를 복사하고 본인에게 붙여 넣기하고 있었다. 좋든 나쁘든 아이가 갑자기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따.


최근에는 숟가락을 써서 본인의 입에 밀어 넣기도 시작하였다. 물론 손가락의 미묘한 컨트롤은 어렵기에 음식을 아주 정교하게 담아서 먹지는 못한다지만, 그래도 대근육을 중심으로 발달한다는 것이 보였다. 휴직 이전에 나름 인공지능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다지만, 뭐랄까 아이를 보면서 정말 많이 배운다. 아이의 발달의 세세한 과정을 보면서 기존에 내가 고민하지는 않았던 업무의 디테일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들게 먹이다 보면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지만, 뭐랄까 최근에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도 밥을 잘 먹는 것을 보면 한 편으로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도 비로소 아빠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나 싶다.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애정을 느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 부부 는 아이에게 저녁을 줄 때는 숟가락과 함께 스스로 먹도록 놔둔다. 물론 하이체어 아래로 음식이 떨어져서 매번 구석구석을 청소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는데 이 문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해결방법을 찾은 것같다. 실링랩이라고 보통은 음식 등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실링랩은 한쪽면이 까칠까칠해서 접착이 잘되도록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이용해서 아이의 몸과 하이체어 중간의 비어 있는 사이를 막는 것이다. 아이가 아주 많이 음식을 하이체어 중간에 떨어뜨리지는 않다 보니 실링랩 정도로만 커버해도 음식이 하이체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바닥 정리까지 이전대비 저녁을 먹는 시간이 50%는 줄어든 느낌이다.


이렇게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힘들 줄은 몰랐다. 과거에 대학원 준비를 위해 GRE를 공부하다 아이에 대한 인식도 변화에 관한 논문을 보면서 과거에는 어른의 작은 모습 정도로 아이를 생각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을 읽고 난후 개인적인 회고를 통해 아이가 얼마나 어른과 다른지 무지한 과거에 대해서 비판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꽤 부끄럽다. 지금 나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를 다시 한 번 자각하였다.


첫 호흡을 뱉어낸 그 순간부터 아이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너무나도 굳어져버린 어른의 프레임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자기 계발, 돈, 강점 등의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는 자신의 삶을 지금 개척해나가고 있는데, 아빠인 나마저 어른의 프레임을 갖고 보면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행위는 시간을 뺏는 괴로운 경험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마음 챙김 명상을 활용하고 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을 때는, 내 호흡에 굉장히 집중한다. 그러면 마음이 굉장히 차분해진다. 아이의 모습에 대해서 관찰하는 입장이 되면서 아이의 행동에서 매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가뜩이나 아이가 최근이 이앓이를 하면서 기상시간이 불규칙해지고 이로 인해서 개인적인 삶의 패턴이 흔들리던 차에 이런 접근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매일 두 번, 아침과 저녁,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나도 이렇게 배우고 성장하는 것 같다. 아들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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