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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g ho Lee Apr 21. 2024

05. 내 몸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목과 허리 통증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몇 번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좋지 못한 자세로 오래 앉아있다 보니 발생한 질병이었다. 이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다 30대 후반이 되어 두 번이나 연거푸 목과 허리로 고생을 해보니 상황의 심각성이 인지되기 시작하였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10분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작년 아픈 이후부터는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우선그간 설렁설렁 다니던 검도를 꾸준히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년에는 초단으로 승단까지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춘천부터 용산까지 타거나 서울 시내 가까운 지역은 자전거로 이동하는 등 건강에 신경 쓰기 시작하였다. 식단 조절도 하였다.  그 결과  몸무게도 두 자릿수 가까이를 감량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운동하는 데는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운동을 정말 많이 하셨지만, 결혼 이후 건강을 관리하지 못하시면서 허리가 굉장히 안 좋아지셨다. 있다. 이로 인해서 수면의 질도 굉장히 낮아졌다. 어머니가 고생하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고생을 겪고 싶지 않았다. 정말 70세를 넘어서까지 내 두 발로 뛰어다니길 원했다. 그래서 운동은 나에게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운동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운동을 하는 사이, 아내는 홀로 그 시간을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덜하지만, 처음 태어났을 때는 뭐랄까 아직 내 자녀로서의 애정보다는 책임감만이 육아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었다.


꾸준히 해오던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을 믿고, 정말 열심히 아이를 들어주고 놀아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육아휴직이 다가왔다. 출퇴근할 때는 몰랐는데, 돌이 지나고 육아휴직을 할 즈음이 되니 아이가 부쩍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성장은 너무나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지능이 생기고 근육이 발달하기 시작하니, 이는 육아 난이도가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특히나 남자아이는 이 시점에 정말 열심히 걸어 다니고, 뛰어나 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짜증을 낼 때 목소리는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하고, 말로만 듣던 바닥에 누워서 팔다리를 흔드는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덤으로 고개도 축 늘이고 말이다.


어느 날처럼 육아퇴근을 하고 자기 위해 침대에 누었는데, 허리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허리의 통증과 싸워왔기에 이 느낌이 뭔지 알았다. 싸한 그 느낌, 앞으로 겪게 될 고통의 시작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허리의 특정부위가 굉장히 불편하였다. 잠깐 지나가는 통증인가 했는데, 그렇지 앗다. 1주일 가까이 통증이 지속되었다. 통증으로 인해서 점차 가동범위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파스를 그냥 붙여볼까 했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때 핫파스를 처음 써보았는데, 피부가 너무 뜨거워서 이내 내려놓고 찜질로 대체하였다.


아이를 위해서 비행기도 태워주고 아이를 높이 던졌다 받아주기도 하면서 열심히 놀아주는 형태는 점차 더 다이내믹해지는 상황이었는데 통증은 악재였다  이런 유형의 놀이는 아이에게는 기쁨이었지만, 내 허리가 더욱더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이렇게 오래 아픈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등원한 이후 바로 한의원으로 갔다. 한의사 선생님은 내 허리를 보더니 아무리 근육을 많이 만들어도 좋지 않은 자세는 허리를 망가뜨릴 수 있다며 좋은 자세로 허리를 사용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며 치료를 받는 것은 일시적으로 고통을 완화시켜 줄 뿐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말씀 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출산 초, 아내가 겪었던 통증들이 기억났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와 함께 저녁마다 운동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아파트 주위를 몇 바퀴는 도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꾸준히 운동하고 나니, 나중에는 여의도 공원을 돌거나 자전거를 타고 멀리 가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만큼 아내는 굉장히 건강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출산을 하고 나니 많은 부분들이 아내의 건강을 악화시켰다. 물론 원래 손목과 발목이 약하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한 운동을 통해 다치는 일이 많이 줄었다. 그런데 아이를 가지고 난 이후 운동을 하지 못하니 체중은 늘고 움직임은 줄어들면서 점차적으로 건강이 안 좋아졌다. 


출산 이후에는 아이를 계속 들어야 하다 보니 손목이 정말 남아나질 않았다. 손목 보호대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살면서 하루 종일 운동을 매일 매주 한 적이 있던가? 거의 없다. 그런데 매일 매주 쉬지 않고 아이를 들었다 놨다 해야 하니 아내의 손목은 정말 만신창이가 되었다


손목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항상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허리를 숙이거나 목을 숙여야 했다. 이는 거북이목으로의 변형을 야기하였고 저녁마다 나는 아내의 목 뒤쪽에 파스를 붙이는 것이 일이었다.


그렇다고 쉴 수도 없었다. 아이가 울면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아내는 귀신같이 듣고 가서 아이를 돌봤다. 목이나 손목이 나아질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돌 전후로 아이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니 그때부터는 재울 때나 밥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안아야 하는 경우가 그나마 많이 줄어들게 되어 조금은 통증이 가시는 듯했으나, 아직 여전히 목은 통증이 남아 있어 보인다. 그리고 아내가 한창 느끼던 통증은 이제는 나에게로 이동한 것 같다.


육아휴직을 한 이후에는 내가 집안일을 하는 비중이 높아졌고 가끔 쉬고 싶을 때 아내가 운동을 간다고 하는데 이 때는 그때가 무조건 보내주려고 한다. 지금 건강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건강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보다 먼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육아선배들이 대단해 보인다. 다들 평일에는 거의 못 놀아주니 주말에는 하루 종일 놀아준다는데, 나는 걱정부터 앞선다. 얼마나 더 열심히 운동을 해서 대비를 해야 할까나 하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나의 아버지는 8살 전후부터 사내 등산 동호회와 함께 하는 등산에 데리고 가셨다. 설경 뒤 위태로운 등산길도 함께 했었고, 무지막지하게 쏟아 내리는 비 속에서도 함께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경험은 단순히 호기로움으로는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이제는 든다. 게다가 나는 아버지가 아파서 누웠던 적을 단 한 번 적도 없었다.


부모란 아파도 안되고 멈춰도 안되고 쉬어도 안 되는 그런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문득 재작년 아내와 모두 코로나에 걸렸을 때가 기억났다. 코로나 환자를 이송시키기 위해서는 구급차와 개인차량만 허용된다고 해서 내가 차를 몰고 아내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는 바깥 텐트에서 새벽까지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나도 환자였는데 말이다.


문득 아버지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아파도 버티고 30여 년을 버티셨는지 너무 신기하다. 마냥 아이를 낳으면 뭔가 더 경험하고 성숙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새로운 미션을 깨려는 듯 설레했던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 매 순간 느끼는 것 같다.


여하튼, 지금 이 순간 나는 정말 아프면 안 된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운동하고, 저녁에 운동을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큼 이 내 건강은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건강만큼이나 아내의 건강도 최선을 다해서 신경 써야겠다. 20년이 지났을 때, 내 건강을 챙겨줄 이는 아내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참 쉽지 않은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날 리도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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