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났다. 사실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한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크게 어떤 생각을 해보질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와 아내는 부모로서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빴던 것 같다. 나는 점점 바빠지는 회사 생활에 밀려 일에 치여 살고 있었고, 아내는 재취업 준비로 인해서 거의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던 상황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기억이 날 때마다 어린이집에 대한 고민은 하였다. 하지만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다행히 처음 등원했을 때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잘 적응했다. 선생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조금 울먹였지만 금방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장난감을 가지고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이렇게 잘 적응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첫날, 아내와 나는 아이가 울면서 안타까워할까 걱정했지만, 아이는 의외로 당당하게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다. 아이가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그간 마음 졸이던 모습을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특히, 선생님과 잘 지내는 아이를 보면서 어린이집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왔던 것 같다. 오후 1시 이후에 알림장을 통해서 전달받는 아이의 모습과 사진을 보면서 아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조금 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금요일이 다가왔다. 평소처럼 하원 후에, 아이를 보다가 잠시 물을 마시고 나서, 아이를 보았는데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거실에서 베개에 머리를 박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이상해서 아이를 불렀다. 내 목소리를 듣고 아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로 보더니, 나에게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걸어오는 아이를 지긋이 지켜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아이가 끙끙 대는 것이었다. 순간 아이가 소화를 못한 것은 아닐까 싶어, 아이에게 하인리히법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아이는 계속 끙끙대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급히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아이에게 옷을 입힌 뒤 병원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병원은 문을 닫지 않았었다. 병원에 가서, 아이의 체온을 측정해 보니 38.5도나 되었다. 아뿔싸! 나는 왜 아이의 열을 재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감이 몰려왔다. 그때 아이가 기침도 자주 하는 것이 그제야 눈에 띄기 시작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진찰해 보시니, 아이는 감기에 걸렸다고 진단하시며 약을 처방해 주셨다.
다행히 아이는 약을 먹고 난 이후에, 열이 빠르게 내려갔고, 이전처럼 집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면서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음 날에 외할머니를 처음 뵙기로 한 일정도 취소하였다. 이후에, 아내와 2교대로 밤을 새우면서 혹시 고열이 날지 보았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이후에 완전하게 회복되었다. 한숨 돌리면서 이게 끝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이제 나와 아내의 차례였다. 나와 아내는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리면서 서로를 간호해야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병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렇게 어린이집 등원 기념 병치레의 첫 경험을 보내고 난 뒤, 다시 조용한 한 주가 지나갔다. 그나마 회복된 몸을 추스르고 아이를 등원시켰는데, 어린이집 공지사항 알림이 눈에 띄었다. 바로 노로바이러스에 대한 내용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기우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별일 없기를 바랐었다.
그리고 하원시간이 다가왔다. 아이는 여전히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집에 와서도 잘 놀았다. 그리고 저녁을 잘 먹었다. 그리고 이빨을 닦기 위해서 칫솔을 가지러 부엌에 갔을 때였다. 아이가 부엌으로 오면서 울기 시작하였다. 아이가 부엌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오지 마~"라고 말을 하였는데, 아이가 갑자기 토하기 시작하였다. 아이가 토하는 것을 보고 당황한 나는 아이를 안아주면서 달래주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다시 한번 내 몸에 토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뿔싸, 노로바이러스에 대한 공지사항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바로 병원으로 뛰어갔다. 선생님은 노로바이러스일 수도 있고, 소화불량일 수도 있으나 처방약은 동일하다면서 약을 처방해 주셨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도 때 맞춰서 퇴근을 급히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내가 돌아와 아이를 돌봐주니 나는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이는 아내가 돌아온 후에는 울음을 그치고 조금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아내는 아이에게 따뜻한 물을 먹이고 잠자리에 눕혔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한 번 설사를 하였지만, 그다음부터는 다시 잘 뛰어나기 시작하였다. 아이는 정말 건강하였다. 이게 이렇게 축복처럼 느껴질 줄은 몰랐다. 이제 나와 아내만 안 아프면 되었다. 그렇게 오후쯤 시간이 되었는데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낮잠을 잘못 잤나 싶어 시원한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될까 싶었다.
그래서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모두 먹어봤는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열이 나기 시작하였다. 온도를 재보니 38.5도가 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아내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독감 또는 식중독인가 싶어서 증상을 찾아보다, 최종적으로 노로바이러스도 보았는데... 이런, 적힌 증상이 모두 나와 아내에게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흘 가까이를 끙끙대고 약으로 버티면서 일을 하고 육아를 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아이는 우리가 아픈 동안에도 잘 놀았다는 것이다. 아이가 소화불량이었고, 우리가 노로바이러스를 걸린 것이라, 아이가 노로바이러스에 다시 걸리면 어떡하지 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어린이집 3주가 지나갔고 나와 아내는 4주 차가 되어서야 건강이 회복되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병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최대한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빨리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부모로서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이가 아프면 걱정되고,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왜 부모님이 아이에게 "부디 건강하게 자라만 다오"라고 말하는지 이해가 된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부모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아이가 아프면 걱정되고,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아이를 걱정하면서 사랑이 깊어지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본 영화 중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있는데, 왜 제목에 "그렇게"라는 단어가 포함되었는지 굉장히 갸우뚱했는데, 이번 경험은 나에게 정말 그 이유를 명확히 머릿속에 각인시켜 주었다.